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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로운 민트초코 Apr 25. 2024

직장인의 N번째 영종도

긴 휴가를 쓰지 못하는 직장인의 아지트

격동의 취준기를 지나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생 땐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해마다 최소 일주일 이상 해외여행을 갔는데, 직장인은 일주일 이상 통으로 휴가를 쓰기 어려웠다. 더구나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한동안 해외여행은 상상할 수 없었다.


첫 직장에선 연차 외 3일의 휴가를 덤으로 쓸 수 있었다. 여름휴가로 사용해도 되고, 쪼개서 연차처럼 쓸 수도 있었다. 2021년 2월에 입사한 나는 그해 8월까지 단 한 번도 휴가를 쓴 적이 없었는데, 3일 중 2일을 여름휴가에 쓰기로 했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시간도 체력도 없으니 멀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 앉아있고 싶었다. 고단하고 돈 없는 사회초년생의 바람은 소박했다. 포털창에 '서울 근교 바다'라고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나오는, 영종도와 그렇게 만났다.


영종도는 공항철도와 버스를 타면 2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었다. 2021년 8월, 어디에 앉아도 오션뷰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젤라또를 주문하고 사회초년생은 생각에 잠겼다.


-출근이 이정도로 끔찍하게 느껴지는 게 정상인가?

-다들 힘들어도 꾹 참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못 견디겠다고 퇴사하면 난 나약한 인간인 걸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호흡곤란을 몇 달이나 겪었음에도 퇴사를 결심하지 못하던 2021년 여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첫 직장에서 나는 괜찮지 않았고, 그렇게 영종도에서 첫 퇴사를 결심했다.


영종도에서의 첫 2박 3일은 아주 여유롭고 행복했다. 하지만, 일반 카페보다 1.5배는 비싼 오션뷰 카페에서 젤라토와 아메리카노를 모두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거겠지. 여기는 비일상. 나의 일상이 있기에 이 순간이 있는 거겠지.



휴가에 다녀온 후 나는 첫 직장에 사직서를 냈고, 공백 없이 이직했다. 2024년 현재, 언제든 때려치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강한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다. "소속 없음" 상태가 두렵지 않고, 남들 다 하는 직장생활도 못하냐 손가락질하는 이들에 메롱을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인.


뭐, 여전히 퇴근과 주말만 바라보며 살고 있긴 하다. 하루하루 버틸만한 날도 있고 버텨야만 하는 날도 있다. 그리고, 짧은 휴가가 주어질 때면 영종도를 찾는다. 혼자 가기도 하고, 조개구이가 먹고 싶을 땐 동거인과 휘리릭 떠나기도 한다. 영종도 호텔은 저렴하지만 청결하진 않다. 오션뷰 카페의 커피는 맛있지 않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한 끼에 몇 만 원은 우습다.


그래도, 직장인은 영종도를 미워할 수 없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비일상이며 퇴사할 힘을 준 곳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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