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Italian doctor -1

퇴사 후 라오스로 떠났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팍세까지 12시간 슬리핑버스를 타고, 3시간 미니벤을 타고, 또 30분 보트를 타고 라오스 남부 돈콘에 왔다. 돈콘은 한국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곳이다.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찾는 곳이고, 휴가를 길게 내기 어려운 한국 사람들이 오기엔 교통이 불편하다. 나 역시 라오스는 세 번째 방문이지만 돈콘까지 온 건 처음이었다.

돈콘에서 둘째 날, 종일 자전거를 타다 허기가 몰려와 식당에서 볶음밥을 주문했다. 라오스에서 볶음밥을 주문하면 정말 산더미처럼 많은 양을 준다. 주문한 지 15분 정도 지났을까, 이걸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수저를 들었다. 오후 2시, 식사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라 손님은 나뿐이었다. 강변에 자리 잡고 책을 읽으며 맥주를 곁들여 접시를 비워갔다.

3분의 1 정도 접시를 비웠을 때 흰 나시티에 반바지를 입은 노인이 식당에 들어왔다. 메콩강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많았는데, 그는 나와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누가 봐도 '말 걸지 마시오, 굉장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 인간이었다.


내 옆 테이블에 자리 잡은 그는 볶음면과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여행자들의 필수 질문, 1) 어디에서 왔는지, 2) 이곳은 처음인지, 3) 그동안 어떤 나라와 지역을 여행했는지 등을 물었다.


말을 걸어오는 그가 반갑지 않았다. 12시간 슬리핑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여행자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창가 쪽에서 잘래? 바깥쪽에서 잘래?' '나는 상관없어, 너는 어디가 좋아?' 이런 얘기를 제외하곤, 30분 이상의 깊이 있는 대화는 지양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는 게 피로하기도 하고, 여행 목적은 견문 넓히기가 아닌 온전한 휴식이었다.

(*TMI : 여행 전 한국계 미국인과 소개팅을 했다. 내가 얼마나 영어를 못하고 자신 없는지, 한국어가 얼마나 편한 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책을 읽는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틈을 비집고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갔는지 아직도 미스터리 하다. 대화가 시작되려면, 양쪽 모두 기꺼이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한쪽만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상대가 대화할 기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거나, 포기하거나, 혹은 대화할 상태가 되도록 세팅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스스로 이어폰을 빼고 책을 덮게 했다.


>>2부 (아마) 있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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