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보라1 #2
예수를 바라보라 2번째 모임이다. 집어들어 읽어라로 유명한 어거스틴의 예시가 나온다.
우리는 쾌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없다. 어거스틴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원했다. 그러나 동시에 쾌락도 간절히 원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내면에서 얼마나 깊은 갈등과 싸움이 벌어졌는가.
“오, 주님! 제 영혼을 거스르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에서 저를 돌이키소서! 그것들이 얼마나 더러운지요! 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저것들이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마침내 치열한 싸움이 끝나고 나자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소나기처럼 두 눈에서 쏟아졌다. 어거스틴은 전나무 아래 땅 바닥에 무너졌다. 그리고 쓰러진 채 울부짖었다.
“오 주님,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제가 말해야 합니까? 내일, 내일입니까? 왜 오늘은 안 됩니까? 주님, 왜 오늘은 안 됩니까? 왜 제 더러운 인생이 이 시간에도 끝날 수 없단 말입니까?”
그 순간 어거스틴은 한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마치 소년의 음성 같기도 하고 소녀의 음성 같기도 했다. 그 음성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집어 들어라. 그리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그 소리에 어거스틴은 즉시 손에 들고 있던 경전을 펼쳤다. 그리고 펼쳐진 성경의 첫 장부터 잠잠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다음의 말씀이 쓰여 있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그 말씀을 읽었을 때 어거스틴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아니, 더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즉시 빛이 내 마음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모든 의심의 어둠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거스틴은 눈은 쾌락에서 돌이켰고 그 후로는 영원히 오직 예수님께만 고정되었다.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 종종 찾아온다. 말씀의 빛이 내 안에 비춰질 때, 말할 수 없는 은혜로 나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내가 바라보던 세상 것들이 덧없어 보이기 시작한다. 회사에서의 야망과 성취욕 또한 말씀의 빛 아래에서는 가장 작은 욕망의 하나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탐심은 영적 간음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피조물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것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서 달콤한 맛을 음미하기 시작할 때 세상은 점점 쓴 맛을 내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 달콤한 맛을 느낄수록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더 쓴맛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죄로 물든 명예에 대해 이 세상에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어떤 사람이 무수히 많은 사람의 입에서 내뿜는 입김에 이리저리 날리며 하늘을 떠도는 깃털을 좇아 달린다고 해보자. 과연 그가 그 깃털을 붙잡을 수 있을까? 설사 그가 붙잡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낱 깃털에 불과하다. 바로 이생의 자랑, 영예, 헛된 영광이 그것과 같다. 그런 것은 얻기는 어렵지만 일단 손에 얻고 나면 몇 사람의 입김에도 금세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지닌 안 좋은 점 가운데 최악의 것은 그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은 영적 간음이라 한다. 가정에서 부부의 모습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이미 주님께서 주신 아내를 두고, 가정 밖의 여인을 마음에 품는 것이 간음이다.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간음은 성립된다. 탐심이 그와 같은 파급력을 갖고 있다. 주신 것에 자족하지 않고, 끝없이 뻗어가는 욕망은 결국 우리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달콤함을 느끼자. 세상에서 쓴 맛이 찾아 올지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