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꼭 해야 하나요?

워라벨과 바꾼 야근의 추억

by 글치

‘오늘 야근해!’

첫 직장에서 처음 야근한 날이 생각난다. 입사하고 꽤 시간이 흘러서의 일이었다. 야근의 이유는 내일까지 결론을 내보라는 상사의 요구가 시작이었지만 그 이전에 나의 호기심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스마트폰 1세대에 속할 수 있는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품회사이고 스마트폰을 만드는 대기업은 1만 회가 보증되는 내구성을 요청했다. 우리 제품은 3000회 근처에서 파손이 되고 있었고, 경쟁사인 일본 업체는 1만 회를 보증하고 있었다. 게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담당하는 팀에서는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모두 시도해본 상황이었다. 정말 이것저것 다해봐도 안되니까 마지막 카드로 나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뭔가 해보고 싶었다.

당시는 이제 막 엔지니어의 길을 시작하던 때였다. 나를 입사토록 해준 내가 가진 기술은 아직 현장에서 외면되고 있었다. 이전에 누군가 시도해봤지만 신통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히스토리를 뜯어보니, 그 시도는 무의미할 만큼 엉터리였다. 나는 그 사이 많은 부분을 보완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무도 찾지 않는 기술이었고, 그만큼 뭔가 보여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번도 실제적인 적용을 해보지 않았기에 야근의 이유는 묵직하지만 자신감이 넘치진 않았다. 자신감 부족은 경험치 부족을 기반했다. 그런 나에게 첫 번째 기회가 오긴 온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배움이 있는 삶

이 기회를 나는 배움의 기회로 생각했다. 실전에 적용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 이미 머릿속에는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다. 현장에서는 ‘그런 제품은 안될 거 같은데요’라는 피드백이 나올 것만 같은 설계안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모든 아이디어를 다 테스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한 개수는 생각나지 않지만 3-40개 정도였고, 테스트가 끝날 무렵 버스가 끊긴 시간이 되었다. 나의 워라벨이 무너진 첫 번째 날이었다.

학교를 떠나 직장에 와서도 당연히 배워야 하고 많은 부분을 다시 배우게 되지만, 중요한 배움의 방법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추천하고 싶다. 무엇을 바꿔야 문제가 해결될지 고민하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시간은 불행하게도 퇴근시간에 끊었다가 내일 다시 출근해서 이어가기엔 어려울 때가 많다. 저녁이 있는 삶과 배움이 있는 삶 중에 선택해야 하는 때가 종종 온다. 게다가 남이 한 고민은 내 것이 되기 어렵다.

첫 기회가 찾아온 순간, 나는 야근을 선택했다. 실제적으로는 상사의 권유이긴 했지만 스트레스받진 않았다. 당시 나는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다음날 기존보다 내구성이 좋은 모델을 두세 가지 제안드렸고, 하나의 모델이 시제품이 되어서 테스트를 하게 되었다. 결과는 5000회 수명! 결국 대기업 납품은 무산되었지만 5000회에 만족하는 다른 기업에 납품할 수 있게 되었다. 상사들은 만족해했고, 그 후로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문제 거리들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유용성이 인정되었고 얼마 안 가서 표준 프로세스가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그 후로도 종종 유사한 상황으로 인해 야근을 하게 되었다.


매일의 워라벨 vs 인생의 워라벨

요즘의 나의 삶에서 워라벨은 매우 중요하다. 저녁이 없는 삶이 되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나의 아이들, 배우자의 삶까지 균형이 흔들리게 된다. 육아에 있어서도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의 워라벨이 소중하다.

나이를 포함한 환경의 변화는 워라벨의 중요도를 달리 하게 만든다. 일을 배워가는 초기에는 아무래도 젊은 나이일 경우가 많을 것이고 이 때는 배움의 중요성이 워라벨보다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고 일의 종류도 변화해 가는 시점이 되면, 개인적인 환경도 변화가 생길 확률이 높고 매일매일의 워라벨이 더 중요해진다. 은퇴시기가 되면 워라벨에서 워크의 비율이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워크와 라이프의 벨런스는 전 인생을 걸쳐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 초년일 때 워라벨 중심의 삶을 살다가 좋은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를 목격하곤 한다. 지금 나의 벨런스는 언젠가 투자한 ‘워크>라이프’의 시간이 준 경험치 덕분임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많은 부분 공짜로 알려 줄 수 있지만 ‘고민의 시간’은 본인의 몫이라는 것은 알았으면 한다. 고민해보지 않고 카피한 경험은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결국 워라벨은 중요하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하루의 워라벨이 중요할지 한 달의 워라벨이 중요할지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는 인생의 워라벨이 중요할지 선택해야 한다. 무작정 매일매일의 워라벨을 챙기는 것은 그렇게 지혜롭진 않을 것이다. 직업군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의 숙련을 위한 과정이 대부분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그런 기회를 주고자 하는 선의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마음껏 권할 수는 없다. 웬만해선 그런 ‘꼰대’의 역할을 담당하고 싶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루의 워라벨을 투자해서
인생의 워라벨을 얻을지도…


이전 10화안 해본 사람이 아는 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