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 제한 속도가 필요해.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문제는 생긴다.

by 글치


운전하다 보면 짜증이 난다.

회사로 가는 길이 멀지는 않다. 그런데 상습 정체 구간이 많아서 짜증이 날 때가 종종 있다. 이동량 통계를 보니 연중무휴로 새벽 3시를 제외하고는 막힌다는 길을 지나야 만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수월할 때가 있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올리게 되는데 이때 평소에 인지하지 못하던 과속단속 카메라를 발견하게 된다. 단속에 걸릴 만한 속도로 지나간 적이 없으니 내비게이션에서 말을 해줘도 인지를 못한 것 같다. 어떤 곳은 새로 생긴 카메라도 있기도 하고, 여하튼 카메라는 속도를 줄이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게 짜증 나지만 줄이는 게 규칙이니 따른다.


출퇴근에 지쳐 있다가 오래간만에 여행을 떠났다.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피곤함 속에 짜증이 난 것은 이번에는 추월차로에서 시속 100km 이하로 주행을 하는 운전자들이다. 고속도로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운전은 인내를 배우는 좋은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운전을 잘한다는 건, 어찌 보면 속도를 잘 지키는 것이 기본이자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속도, 최저속도, 적정속도



언어생활의 제한 속도?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속도라는 개념이 언어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 같다. 언어도 과속하게 되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또 상식적으로 지켜 줘야 하는 속도, 즉 말하는 타이밍이란 게 있다. 늦어 버리면, 주위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거나, 의미가 작아져 버리는 그런 말들이 있다.


1. 언어의 과속 방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언어의 과속은 대부분 감정적인 격양과 함께 발생한다. 너무 화나서 그냥 ‘바로’ 내뱉은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가서 부딪친다. 마음속에서 최고속도를 넘은 채 달려 나오고 있는 말을 그대로 입에 담는 순간 사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말들


‘당신 겨우 이 정도야?’

‘그러는 너는 잘하냐?’

‘넌 뭐가 되려고 그러니?’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를 주는 과속 운전과 같다.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나는 브레이크는 입술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 머리는 잘 작동을 하지 않는다. 과열된 엔진 같이 열을 뿜고 있을 뿐이다. 입술 브레이크는 생각보단 기계적으로 작동이 된다. 그냥 닫는 것이다. just close it. 브레이크가 고장 나듯, 입술도 잘 작동이 안 될 때는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미안. 잠시 뒤에 다시 얘기하자’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일단 집을 나와 걷는 다고 한다. 화가 식을 때까지. 화가 식으면 다시 돌아오면서, 마음을 추스른다. 일종의 과속 단속 카메라 같은 역할이다. 반 강제적으로 과속의 언어에 브레이크를 밟게 만드는 역할. 아내와 의견 다툼이 생길 때 이 방법을 써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 마음속의 말들이 감속되어 있었고, 내용도 ‘이해 못해서, 미안해요’로 바뀌어 있었다. 바로 내뱉었다면 말이 아닌 칼이 되었을지 모르는 단어들이 정상화되고, 머리의 RPM도 정상 수치가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도 과속이 종종 일어난다.

중간 관리자 이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잘 듣지 않고 말해버리는 때가 많아지고 있다.

경청이 갈수록 어렵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은 것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나는 내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또 언어 사고 발생이다. 그리고 나는 ‘꼰대’ 인증을 하게 된다. 운전에서도 직진 우선의 원칙이 있듯이 하던 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기다려 줘야 하는데, 이미 마음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말이 달려 나오기 시작한다. 아는 게 많아지고, 경험이란 게 쌓일 수록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이, 더 급하게 나오는 것 같다.


‘아 그럴 때는 말이야…’

‘그건 아니지…’

'몰라서 그래.'


누구든지 본론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못 기다려 주고 준비된 ‘내 말’ 이 급하게 나가는 순간, 또 사고 발생이다. 경험이 많다 보니 라는 것은 사실 핑계다. 경험만큼 겸손이 쌓이지 못했다는 ‘증명’이다. 게다가 ‘경험이 지금도 통하는가?’라는 검증도 안된 해법 제시라면 그냥 경력 자랑이 돼버리고 만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나마 들어줄 만한 경험일 수도 있다. 빨리 고치지 않으면, 그 마저도 유통기한이 지나서 상한 라떼가 되지 않을까 싶다.




2. 언어의 최저 속도를 준수하자.

늦춰서는 안 되는 말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되는 말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말
고마운 것을 고맙다고 말하는 일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


너무 늦어 버리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함께 하는 조직에 손해를 주기도 한다. 최저속도를 지키지 않는 것은 운전할 때와 비슷 한 맘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큰 문제없이 잘 가고 있어, 문제 있으면 네가 알아서 피해서 가세요.'

덕분에 뒤에 밀려 있는 많은 차들이 답답함과 짜증을 느끼고 있지만, 나는 내 속도로 간다! 뭐 그런 마음?


내가 굳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필요 있나? 별로 그런 거 같지도 않은데….

뭐 이 정도는 다 하는 건데 ‘고맙다고’ 말할 필요가 있나? 나 때는 더한 것도 시키면 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걸 모르면, 왜 같이 살아? 당연히 알겠지….


일종의 소시오패스 같은 건 아닌가 싶은 생각들일지도 모르겠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어려운 나의 마음은 왜 그럴까? 고맙다는 말을 잘 못 들어 보고 자라온 사회 초년생 시절 때문인가?

팀원에게 업무를 부탁하고 나서 '고마워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어색했다. 곧바로 엄지척의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겨우겨우 최저 속도를 지킨 것 같다.



언어의 과속



이전 11화야근 꼭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