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하고, 잘 듣기

by 글치
A를 전달 했는데
A로 알아듣게 했다면
그는 능력자다


나는 정말 A를 전달하고 싶다.

직장에서는 내 의견을 전달할 일이 많다. 그리고 갈수록 많아진다. 내 의견이 잘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갈수록 어렵다. 누구의 잘못일까?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 탓을 하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 탓을 하니 둘 다 잘못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소통의 어려움을 오랜 기간 느끼며 한 가지 분명한 것을 발견했다.

A를 전달하고 싶다면, A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전하고 싶은 내용은 듣는 사람이 갖고 있는 언어 체계에 맞는 단어들로 재구성되야한다. 사람에 따라 A를 A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뉘앙스 차이까지 전달하고 싶다면, 듣는 사람의 언어가 더 중요하다. 동의 이음어라고 할까? 같은 뜻이지만 다르게 표현되는 단어가 존재한다. A를 전달하고 싶다면, 그가 A라고 생각하는 말을 사용해 줘야 한다.


‘최 대리님, 제품 형상 중에 취약한 부분이 잘 표현되도록 보고서를 작성해주세요.’

‘네. 잘 표현해보겠습니다.’

나는 잘 표현될 수 있는 수치적인 정보들을 넣어서 보고서가 작성되기를 바랐다. 최 대리가 생각한 ‘잘 표현된’ 보고서는 제품의 어느 쪽 단면도를 어떤 색감으로 표현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수치적인 정보들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 대리님, 보고서에 정보가 너무 빈약한데요?’

‘정보보다는 취약한 부분을 잘 표현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누가 잘못했는가? 는 것은 두 사람의 업무적인 히스토리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가 더 있어야 판단이 되겠지만. 잘잘못에 대한 평가보다 더 큰 유익이 있었다. 나는 최대리의 ‘표현’이라는 단어는 약간은 예술적 이미지와 연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보고서에서의 표현이란 단어는 색감이나 배치가 아닌 정보와 더 연관 지어 생각되는 편이다.


‘최 대리님, 제품 형상 중에 취약한 부분이 잘 표현될만한 수치 정보들을 삽입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주세요.’


이렇게 말했다면, 내가 기대한 소통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기대한 것과 다른 소통이 일어나는 이유는 나의 언어와 너의 언어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많은 동의 이음어를 안다는 것과 같다.


‘알아서 알아들어야지’

나의 선배들에게 많이 듣던 말이다. 알다와 알다가 겹쳐 있는 이 표현은 ‘너는 왜 모르냐’는 것을 강조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소통으로 고통을 주는 기술. 알지 못하는데 알아듣기란 불가능하다. 알려주는 게 먼저다.


알아도 못 알아듣는다.

아는 게 많은 사람들끼리도 문제는 생긴다. 알아온 과정과 아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 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끝나지 않는 맴돌이 회의가 발생한다. 그곳에서는 높은 확률로 거의 같은 이야기를 다른 표현으로 하는 두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가 가장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단어나 표현이 같으면 오히려 희망이 있다.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은 소통을 해내기가 어렵다. 제삼자가 정리해줘야 끝날 확률이 높다.

‘들어보니까, 두 분 같은 이야기 하시는 거네요.’


소통은 기술보다는 이해와 배려의 영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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