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더하고 빼자.
이젠 진짜 인생의 반을 산 것 같다. 반기보고서와 하반기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나이대의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바쁠 가능성이 높다. 인생의 중간결산을 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꾸역꾸역 반기 결산과 다음 반기 계획을 세우는 건,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인생도 어떻게든 반기마감을 하고 다음 반기 계획을 해보게 되었다.
상반기 결산 결과는 나만의 보고서로 둘 생각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정신없이 살았다!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정신없던 이유는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쉽게 하반기 계획의 컨셉이 잡힌다. 무언가를 빼는 것이다.
인생은 더하려 할 때 잊는 것들이 생기고, 빼려 할 때 얻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빼다 보면 빼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들이 드러난다.
가끔 아이가 장난감 더미 속에서 그동안 잊고 있던 소중한 장난감을 발견한다. 기쁨의 환호를 지른다.
‘아빠! 이게 여기에 있었어요!’
그건 원래 계속 거기 있었단다. 갖고 싶었지만 덜 소중한 것들이 덮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가끔 아이들의 장난감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곤 한다. 어린 시절 친구가 되어주는 메인 아이템이 생기기엔 너무 관심이 분산되어 보인다. 토이스토리의 ‘우디’ 같은 친구가 생기긴 어려운 환경이다.
나의 인생도 돌이켜보면 소중한 것들이 파묻힌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우디’가 어디 있는지? 있기는 한지조차 잊었다. 이제 덮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빼어야겠다. 뺄 것들을 나열해 봤다.
1. 일을 빼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개인이든 직장이든 모두 다 필요한 것들인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검토하자.
2. 말을 빼자
갈수록 내가 말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말하는 시간에 반비례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말과 생각 이제 그 비율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3. 힘을 빼자
운동을 배울 때, 악기를 배울 때, 글쓰기를 배울 때,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다. 힘을 빼세요. 힘을 빼는 것은 어찌 보면 그 행위가 이젠 익숙한 삶의 조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단계로 가야 한다. 힘은 계속 낼 수는 없기에.
4. 짐을 빼자
최근에 이사를 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버리지 못한 것들 때문에 짐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남이야기는 아닐 거다. 그동안 모아 온 짐들, 일 년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것들의 존재는
5. 살을 빼자
나잇살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살이 찌기 쉽다는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동시에 나이가 들 수록 살이 위험함을 반증한다.
6. 사람을 빼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이젠 새로운 사람보다 기존의 내가 아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중에 하반기에도 지인으로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면 과감히 빼는 것도 필요하다. 스트레스의 8할 이상은 사람으로 인한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나의 사람은 아닐 수 있다. 빼자 이제는.
7. 생각을 빼자
신중함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더하기가 더 익숙하다. 그 유명한 카피처럼 생각이 많으면 용기가 안 난다. 용기가 없으면 하반기 인생을 잘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생각을 더해가기보다 생각을 멈추고, 필요 없는 생각은 빼야 할 때다.
8. 오지랖을 빼자
후배, 지인, 가족, 동료. 많은 인간관계에서 점점 조언을 하는 자리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언은 금물이다. 이제 여기저기 휘저으며 조언이란 이름으로 이런저런 말들을 하던 오지랖을 빼야 한다. 정말 아끼는 후배에게는 말대신 돈을 주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관심과 배려를 다른 형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각각의 항목에 대한 상세페이지를 한 꼭지씩 작성하고자 한다. 하다 보면 내용이 좀 더 붙을 수도 있다.
The second half of a man’s life is made up of nothing but the habits he has acquired during the first half.
- Fyodor Dostoev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