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난 드럼이 치고 싶은 직장인이다.

직힐드레 01

by 글치

난 드럼을 치고 싶었다.

드럼을 쳐보긴 했다. 흔히 말하는 ‘야매’로 독학을 통한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테크니컬 하거나 조금만 속도가 빨라도 따라갈 수 없었다. 약간만 복잡한 ‘필인을 하려고 할 때도 바로 한계가 드러났다. 좋아하는 노래를 ‘커버해보고 싶어도 이런 한계를 갖고는 흉내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몇 곡을 겨우 겨우 연습해서 공연 아닌 공연을 해본 적이 있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밴드에 있는 후배들에게 빌붙어 한곡 정도 해볼 수 있도록 왕창 배려를 받았을 뿐이다. 연주 내내 일정하지 않은 속도와 흐트러지는 리듬에 쉽지 않았을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가 되어서 인가, 점점 드럼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서랍 속에는 매끈한 드럼 스틱이 언젠가 손에 쥐어지길 바라면서 잠자고 있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밴드의 일원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연주가 막 잘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연주할 때의 그 즐거움과 황홀함이 느껴졌다. 꿈을 깨고 일어나서도 손맛이 느껴지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것을 맛본 듯한 가공된 기억이었다. 예전에 연주를 하거나 연습하며 찍어둔 동영상 몇 개가 스마트폰 앨범에 남아 있었다. 애들에게 한번 보여줬다. 그런데 의외로 애들보다 아내의 리액션이 더 컸다. 실제 영상 속의 연주를 하던 당시에는 별말 없었던 것 같은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와서 ‘보기 좋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추진력 갑인 아내는 드럼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국민이 잘 아는 그 ‘X 근‘에서 시간과 거리가 적당해 보이는 드럼 레슨 학원을 찾아냈다. 그리고 시범 강의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밀려 들어간 시범 강의에서 강사분은 일단 칭찬을 폭격하셨다. 잘하실 것 같다. 일단 파워가 있어서 좋다. 쭈뼛쭈뼛 치면 자신 없어 보인다. 파워 있게 치는 게 좋은 거다. 자세만 좀 고치면 금방 배울 거다. 등등.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제를 하고 있었다. 일사천리로 수업 시간까지 잡아 버렸다.

‘스틱은 직접 준비해 오셔야 해요’

‘네, 스틱은 집에 있습니다.;

잠자던 스틱이 생각났다. 이제 그놈을 깨워 줄 때가 된 것인가?


레슨 시간은 퇴근 후이다. 피곤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 거 없어도 퇴근 후에는 피곤하고, 집안일 거들고, 아이들과 좀 시간 보내고 잠시 있으면 이제 자야 할 시간인 게 직장인의 삶인데, 과연 그 사이에 드럼레슨이라는 것을 삽입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미 수강료를 결제했다. 이제 죽었다 깨나도 한 달은 일단 나가야 한다.

신기한 건 바로 다음날부터 나는 음악 앱에서 커버하고 싶은 곡을 즐겨찾기에 저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첫 수업을 듣는 날은 회사를 갈 때도 일부러 후드티를 입고 갔다. 내가 생각하는 드러머의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열정적으로 드럼을 치는 모습이 어렸을 때 어디서부터 인지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가방에는 스틱을 챙겼다. 마치 마법 지팡이를 갖고 다니는 호그와트 학생들처럼 뭔가 아이템을 장착하고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 그리고 퇴근을 했다.

그렇게 첫 번째 레슨시간이 다가왔다.





‘필인 : 드럼 연주 시 필요에 의해 일정 박자 동안 일종의 드럼 솔로 비슷한 연주로 채우는 방법

‘커버 : 유명한 노래를 똑같이 따라 연주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