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를 쓰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쓴 시가 정말 ‘내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문장, 들은 적 있는 비유. 심지어는 내가 쓰기 전에 누군가 이 표현을 이미 쓴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올라온다. 한 번은 내가 쓴 시가 몇 년 전 출간된 다른 시인의 작품과 너무 닮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만든 문장이 결국은 내가 읽고 배운 것들의 재조합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는 기계도 시를 쓴다. 수많은 작품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표현과 표현을 조합해 훌륭한 시를 만든다. 어떤 시는 나보다 더 나 같았고, 어떤 시는 내가 쓴 것보다 더 많이 읽혔다. “이건 누구의 시일까?” 신춘문예 당선작이 화제가 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쓰면 ‘창작’이고 기계가 쓰면 ‘생성’이라 부른다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던 책임과 권리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인간끼리의 저작권 분쟁은 익숙했지만, 이제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경계가 더 낯설게 다가온다. 점점 시를 멀리하게 되었다. 누군가 따라 썼다고 말할까 봐, 혹은 기계가 더 잘 썼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바다 건너 어딘가에 인공지능이 닿지 않은 섬이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도, 전자기기도 없고, 그 섬에서 만들어진 시와 그림, 음악은 단 한 번도 외부로 공개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안에서 태어난 예술은 섬을 벗어나지 않으며, 인공지능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그것을 학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이 진짜 창작이 살아 있는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떠나기로 했다. 전자기기는 모두 두고, 노트 몇 권과 펜만 챙겼다. 배낭은 가볍고 마음은 무거웠다. 선착장에서 표를 끊을 때, 어떤 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 섬에선 사진도, 녹음도 안 됩니다. 기억하고 싶다면, 마음에 새기셔야 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잊히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잊힘 속에서 무언가 진짜가 만들어지길 바랐다.
배가 출발한다. 바다와 사람들은 조용하다. 나는 가끔 노트를 꺼내 짧은 문장을 적는다. 처음 본 문장들이라고 느껴진다. 이 문장들이 언제 사람들에게 읽혀질지, 혹은 영영 읽히지 않을지 알 수 없다.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계가 닿지 않은 섬. 모든 예술이 오직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사람의 눈과 귀를 통해 기억되는 섬이다. 아무것도 복제되지 않는 곳, 그래서 어쩌면 모든 것이 한 번뿐일지도 모른다. 사본이 없는 세상에서는 원본이라는 말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소유’가 아닌 ‘창작’이란 말의 처음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