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본인이 사회생활을 잘해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 세월을 버텨내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할 만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잘해오신 것인지, 아니면 단지 오래 견뎌낸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확신을 볼 때마다, 저 역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저도 사회성이 좋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 신입 시절을 돌이켜보면, “저래 가지고 사회생활 하겠냐”는 말을 직접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맡은 개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정 전체가 영향을 받는데도 저는 이슈를 제때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혼자서만 고민하다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팀장님께 말씀드렸고, 당연히 크게 혼이 났습니다. 또 영업팀 부장님께는 업무적인 말투로 요청만 전달하다 보니, 원활한 소통은커녕 괜히 기분만 상하게 만들었던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떠올리면, 제 사회성이 뛰어났다고 말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점점 사회성이 좋아졌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노력이 아니라 다른 분들의 배려 덕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동료들이 제 부족함을 맞춰주고 감싸주었기에, 마치 제가 원만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저는 스스로 빛나는 줄 알았지만, 어쩌면 단지 타인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무시하기 어려운 위치’에 서게 되자, 저절로 따라오는 존중과 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사회성 덕분이 아니라, 자리와 연차가 만들어낸 착시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그것을 “내가 사회생활을 잘해왔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착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뒤늦게야 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성을 다룬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성찰했습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여전히 사회성은 별로이지만 사회성이 좋아졌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은 저의 성찰이 아니라, 단순히 시간과 위치가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사회성은 제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타인의 마음속에서 드러나는 흔적, 관계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만족감 역시 착각 속에서는 자라지 않습니다. 단지 나만의 만족일 수도 있습니다.
일터에서의 행복은 본인의 사회성이 좋다는 자기 확신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의 사회성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관계를 가꾸려는 작은 노력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사회성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속에 남겨진 흔적으로만 증명됩니다.
“칼 융은 ‘타인에게서 거슬리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 거울’이라 했습니다. 어쩌면 직장에서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착각은, 나의 사회성을 성찰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거울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