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알자

by 글치

“지식의 적은 무지가 아니라, 아는 척하는 착각이다.” – 스티븐 호킹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직무의 차이가 얼마나 큰 오해를 낳는지 자주 경험합니다. 특히 기술팀과 영업팀 사이에는 늘 미묘한 긴장이 존재합니다.


기술 입장에서는 흥미롭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흥미는 없지만 영업 입장에서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일이 있습니다.


때로는 영업이 성급히 가능성을 강조하다가 기술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기술이 지나치게 신중하다가 영업이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기술파트로서 이렇게 불평한 적이 있습니다.

“그걸 왜 그렇게 설명해서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대응하게 만들까?”

영업의 입장에서야 성사시켜야 할 계약이니 최선을 다한 것이겠지만, 기술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고객이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영업 쪽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소극적으로만 대응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서로의 시선에서만 보면 다 옳고, 동시에 다 답답한 셈이지요.


겉으로만 보면 한 회사, 한 목표를 향해 가는 동료들이지만, 막상 각자의 자리에서 보는 풍경은 전혀 다릅니다. 영업은 고객과의 만남 속에서 시장의 압박을 매일같이 체감하고, 기술은 눈앞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무게를 짊어집니다. 결국 서로의 자리를 겪어보지 않고는 그 어려움과 현실을 알 수 없습니다.


가장 위험한 태도는,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것입니다. 이해의 출발점은 언제나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자. 그리고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얼마 전, 좁아진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던 때였습니다. 공사 중이라 통로가 협소했고, 많은 사람들이 밀려 내려가다 보니 흐름은 점점 더뎌졌습니다. 맨 앞에서 무릎이 불편해 보이시는 할머니가 한 발 한 발 힘겹게 내려가고 계셨습니다. 뒤에서는 “왜 이렇게 늦어”라는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순간 답답함을 느꼈지만, 곧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게 되겠지.”


지하철에서 나이 듦의 실체를 간접 체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이에 따라 몸이 정해주는 속도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점점 다른 리듬을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슬프기도 하지만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 대에는 사십 대를 상상할 수 없었고, 사십 대가 된 지금은 칠십, 팔십의 삶을 감히 예단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멀리 있는 풍경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지하철 계단의 그 장면처럼 아주 가까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 상상 속의 중년은 어두웠지만, 실제의 살아가고 있는 중년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합니다. 노년 또한 어둡기만 할리가 없습니다. 다만 준비 없이 맞이한다면, 40대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혼란처럼 약간은 버거울지 모릅니다.


노후 준비란 단지 돈을 마련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미리 알아가고, 이미 그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너무 이질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마치 영업과 기술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할 때 협력이 가능해지는 것처럼, 젊음과 노년 사이에도 서로를 향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직장에서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과 인생에서의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일은 얼핏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그 바탕에는 같은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려 할 때, 비로소 서로 다른 세계가 연결됩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배우며 살아가는 태도. 그것이 직장에서도, 인생에서도 우리를 더 겸손하게, 그리고 조금은 더 지혜롭게 만들어줍니다.


결국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일지 모릅니다. 아는 척하기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 삶을 더 단단하게 지탱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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