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강아지는 범 자체를 모른다.

모르는 자의 용감함

by 글치

하룻강아지의 용기

하룻강아지는 범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범이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더 용감합니다.

무모함과 용기의 경계는 어쩌면 ‘모름’입니다.

처음 팀장 제의가 왔을 때, 사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큰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수락했습니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감당해야 할 책임도 컸습니다. 나의 업무만 잘하는 것을 넘어서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팀장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미리 알았다면, 아마 쉽게 수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네, 조금 더 알아보고요.”

하지만 그 ‘조금 더’가 쌓일수록

호랑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결국 두려움 또한 함께 자라납니다.


모를 때는 한 발 내딛던 사람이,

알게 되면 머뭇거리기 시작합니다.

지식은 때로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많이 알수록 더 안전하다고 믿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모를 용기가 필요합니다.

더 알면 더 망설이게 되고,

더 따지면 더 늦어집니다.


‘과적합(Overfitt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데이터를 너무 완벽히 맞추려다

새로운 상황에는 전혀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결정을 더 잘하려고 끝없이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결국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용기는 완벽히 알지 못한 채로도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은 계획이 되기도 합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예측하려는 마음보다,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보려는 용기가 더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완벽한 준비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듯,

때로는 불완전한 시작이 가장 값진 배움이 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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