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뒤집어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명관들이 결국 구관이 되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다!
명관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그 시대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변하고, 탁월했던 방식은 낡은 언어가 되며,
유능했던 사람조차 어느 순간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역사 속 명관들은 대부분 이 운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조차 전쟁이 끝나면 자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감했다고 하지요.
그만큼, 시대의 흐름과 개인의 유효기간은 언제나 어긋나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그런 장면을 자주 봅니다.
한때 놀라운 실적과 공격적인 영업으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이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모습.
공장 설립 초기, 직접 기계를 설치하며 밤을 새웠던 개국공신이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는 모습.
그들은 모두, 분명 한 시대의 명관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어쩌면 나름의 명관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
제 생각이 전략이 되고, 그 전략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승진 소식도 들었고,
회사에서 상을 받기로 되어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인정받는 기쁨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왠지 곧 나의 무능이 드러날 순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묘한 두려움도 느낍니다.
모든 것이 ‘시대’라는 우연한 바람을 잘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의 자리와 성과가 온전히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대학원 시절, 유행과 거리가 먼 주제를 연구했던 끈기와 배경지식, 경험, 인맥이 우연히 맞물린 결과가
현재의 성과와 자리를 만들어주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터의 법칙(The Peter Principle)이 떠오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는 지점까지 승진한다.”
조직 안에서 누구나 결국 한계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명관이 구관으로 바뀌는 이유입니다.
한때의 탁월함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인정하면,,
겸허함이 시작됩니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배우며 유지하기엔 세상이 너무 빠릅니다.
시대를 거슬러 구관이 되지 않는 명관은 극소수의 영웅뿐입니다.
명관일 때, 구관이 될 준비를 해야합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누군가에게 용기나 통찰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자리를 지키려는 욕심이 남는 순간,
아름다운 것들은 먼저 사라집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그러려면,
박수를 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면 떠남은 미덕이 아니라,
그저 퇴장일 뿐이지요.
떠남의 시점을 고민하기 전에,
박수를 받을 만큼, 현재를 진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언젠가 올 그 순간을 준비하며 일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전에 먼저 박수는 받아야겠습니다.
명관은 결국 구관이 될 운명입니다.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그 사람의 품격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