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

by 글치

이제 우물가는 사라졌습니다.

우물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물을 뜨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정수기의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물가의 수고를 떠올리기 어렵고, 그 노고를 체감하기도 힘듭니다.


물은 누룽지와 함께 숭늉의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누룽지를 만들려면 밥이 필요하고, 밥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합니다. 쌀을 씻는 데에도 물은 적지 않게 들어갑니다. 결국 물 공급은 숭늉 프로젝트의 첫 단계이자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 됩니다. 이처럼 노동력이 많이 드는 첫 작업은 대개 막내가 맡게 마련입니다.


숭늉이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칩니다. 물을 긷고, 쌀을 씻고, 밥물의 양을 맞추고, 불을 피우고, 뜸을 들이고, 밥이 완성된 뒤 누룽지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 물을 부어 끓입니다. 이런 순서를 따라야 숭늉이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단계에서 “숭늉을 찾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태도이며, 과정을 무시하는 언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을 긷는 막내에게는 그 수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힘든 과정들이 어떤 목표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야 지칠 때에도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과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과 대답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또 인생의 여정을 걸으면서도 늘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일에 매몰되어 결국이 무엇인지 잊는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그럴 때 극심한 피로감과 의지력의 소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 번아웃이나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숭늉의 맛을 보지 못합니다. 물만 열심히 길어오다 지쳐 멈춰버리게 되고, 안 좋은 기억만 남습니다.

“숭늉이요? 힘들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관심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이지요.


끝내 포기하지 않고 숭늉을 맛본 사람은 이제 식혜에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완성된 성취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지루한 초기 작업과 허드렛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경험의 축적이 다음 도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우물가에서부터 숭늉에 대한 기대감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길러진 물은 분명히 다릅니다.

조직의 시니어라면 주니어들에게 숭늉을 상기시켜 주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물가에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자, 우리는 숭늉을 만드는 중입니다. 구수한 향을 상상해 봅시다.”


적어도 이렇게 말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닥치고 물이나 떠“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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