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싱 스트리트를 세 번째로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땐 왜인지 통 집중을 못하고 끝까지 보지도 못했다. 두 번째엔 덜컹대는 지하철에서 끊으면서 봤는데도 너무 감명을 받았다. 그러고서 얼마 전에 <방구석 1열> 존 카니 편과 넷플릭스 드라마 <The Politician>의 루시 보인턴을 보고 세 번째 감상을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절반 정도를 침대에서 반쯤 누워 보고 나머지 절반을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 봤는데, 사람들 사이에 서서 울뻔했다. 내 주요 울음 포인트는 1) 'Drive it like you stole it'을 부르는 무도회 상상 씬과 2) 라피나와 코너가 같이 떠나는 장면이었다.
라피나는 영화에서 'happy sad'에 대해 말한다. 행복하지만 슬픈 것, 그게 사랑이라고 한다. 처음에 코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후 'Drive it like you stole it' 씬에서는 'happy sad'를 온몸으로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코너가 몇 안되는 엑스트라들과 강당에서 애써 뮤직비디오를 찍는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가 행복하게 춤을 추는 장면이 슬펐다. 상상 속은 능숙하게 50년대 포크 댄스를 추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벡스터 선생이 덤블링을 하는가 하면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춤을 추고, 라피나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나타나 코너를 바라본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완벽히 반대된다. 촬영을 위해 온 엑스트라들은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본 적도 없고, 50년대 포크 댄스를 흉내내는 몸짓이 엉성하기만 하다. 엄마와 아빠는 예정대로 이혼할 거고 라피나는 오지 않는다.
즐겁고 활기찬 무도회가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은 끝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릴 물거품이지만 너무 행복한 꿈. 이 넘치는 행복은 곧 끝날 것만 같아서, 사실은 끝날 수 밖에 없어서, 코너의 말처럼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이 장면은 뮤지컬 영화의 귀엽고 신나는 클리셰로만 보기엔 너무 슬프다.
"Drive it like you stole it" 이라는 구절은 처음엔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아마 내 번역에 큰 오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훔친 것처럼 달려,라니 대체 무슨 소리지, 했다. 사실 이건 인생에 큰 영감을 주는 말이다. 라피나가 뮤직비디오를 찍다가 실제로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다. 왜 그랬냐는 코너의 물음에 라피나는 "You can never do anything by half, Cosmo"라고 답한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반동을 주는 말이다. 어떤 것도 절반만 할 순 없어, 뭐든 온 몸을 던져서 하는 거야.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앞만 보고 달려. 영화 <싱 스트리트>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에는 슬픔이나 소외와 함께 열정이 있다. 거의 맹목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달리는 사람은 섹시하다. 나는 그런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본 적이 있나. 내 눈에 생기가 돌고 반짝임이 있던 때는 언제였을까. 라피나의 저 대사는 내가 무기력하고 안일해질 때마다 자극을 준다. 그래서 무모해 보이는 도피를 할 때 폭풍 속에서도 둘의 웃음은 아름다웠다.
<싱 스트리트>는 보고 나면 소년 영화의 분위기 속에 은은히 깔린 슬픔이 기억에 남는다. 덤덤하게 어두우면서 여린 분위기가 좋다. 물론 노래도 좋다. 올드 브릿팝같은 밴드 세션이 딱 취향이다. 맨날 토끼 쓰담쓰담하는 음악 천재 에이먼도, 한량같이 굴다가 명언만 던지는 형 브랜든도. 또 한 번 보면서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