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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팝콘 말고 나초 말고 Dec 22. 2020

<설국열차(2013)>,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스포일러 주의

    얼마 전에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봉준호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봉준호의 영화가 지나치게 우화적이라고 한다지만 우리는 그 우화적인 게 특히 좋다는 대강 그런 얘기였다. 그런 작품으로 <괴물>과 <설국열차>를 꼽았는데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설국열차>를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오래 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꼼꼼히 한 번 더 봤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세계관을 가장 우화적으로, 가장 잘 함축한 영화다. <기생충>과 <옥자>, <괴물>에 드러난 계급사회에 대한 시선, 환경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설국열차>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급진적으로 나타난다. 허구의 기차 속 세계를 만들고 오늘날 사회를 자조적으로 투영한 게 좋았다.


    가장 잘 드러나는 건 독재와 전체주의의 허상에 대한 비판이다. 중간 관리자인 메이슨은 계속해서 '성스러운 엔진'과 '윌포드 님'에 대해 찬양한다. 메이슨은 가슴 깊이 윌포드를 존경하는 듯 일장 연설을 펼치지만 촌스러운 스타일과 과장된 몸짓이 오히려 그의 말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듯 하다. 얼핏 무식해보이기까지 하는 메이슨의 말을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음에도, 꼬리칸 사람들은 함부로 반항하지 못한다. 메이슨의 호위들이 가짜 총을 들고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열차는 거짓된 것들로 가득차있다. 메이슨의 틀니부터 장전이 안된 총, 심지어 무한동력인 줄만 알았던 엔진까지 포장된 허상일 뿐이다. 거짓은 공고한 독재와 전체주의를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꼬리칸과 앞 칸의 구분조차 본질적인 게 아니라 윌포드라는 개인이 멋대로 지어낸 것일 뿐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가는 즉시 얼어붙는 추위'와 '엔진이 우리를 살린다'는 개념을 주입시키고 이외의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게 허상이란 걸 아는 순간 사람들은 열차에 머무를 필요가 없으므로, 열차 안의 모든 억압과 주입은 '열차가 굴러가게'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사진 : 네이버 영화

    이런 면에서 '열차'는 맑시즘(Marxism)의 계급사회와 긴밀히 맞닿아있다.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앞칸과 꼬리칸.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꼬리칸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차출해 바이올리니스트로, 수도 기계공으로 착취하는 모습에서 이를 볼 수 있다. 다만 열차가 수많은 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다양한 모습의 중간관리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맑시즘에 대한 비판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오늘날의 세상은 완전한 이분법보다 훨씬 더 복잡하므로. 중간관리자는 도끼를 든 모습으로도, 총을 든 모습으로도 나타나지만 이들도 메이슨처럼 윌포드의 허상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상명하복 구조에 따를 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들에게 연민의 여지는 없다.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으니까. 처음으로 나타나는 학살자인 '도끼부대'가 커다란 물고기의 배를 가르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와인스타인(범죄자놈)이 많은 장면을 잘라내는 와중에도 봉준호 감독이 '내 아버지가 어부였어서 의미가 큰 장면'이라는 구라를 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 '도끼와 횃불 전투'는 혁명이 피로 이루어진다는 맑시즘의 이념처럼 유혈이 낭자한데, 그 시작이 도끼에 묻힌 물고기의 피이다. 전쟁에 나가기 전 동물의 피를 몸에 바르는 전사들처럼, 짐짓 숭고하게 의식을 치르는 게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그로테스크함에 나조차 기가 죽게 된다.


사진 : 네이버 영화

    다시 맑시즘으로 돌아와, 영화 속 열차는 자본주의 구조 그 자체를 상징한다.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처음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할 뿐이다. 혁명가인 커티스는 줄곧 자신이 지도자감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원래 지도자로 세우려고 했던 길리엄이 윌포드와 협력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분노한 채 그는 엔진 앞에 못 박힌 듯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꼬리칸의 사람들도, 믿던 동료도 잃은 채 커티스는 자신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엔진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결국 이 공간에서, 윌포드의 지휘 아래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열차 안의 문이 아닌 밖으로 나가는 문을 보던 남궁민수는 이들이 엔진을 넘어선 세계에서 살 수 있음을 알려준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끝이 계급의 전복이 아니듯, 진정한 혁명은 우리가 갇힌 구조와 틀을 깨부수는 데서 시작한다.


재미있는 건 윌포드조차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We're all prisoners in this train"


윌포드는 엔진칸으로 찾아온 커티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한, 자본가이든 노동자이든,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균형'을 지키느라 피곤하다는 윌포드를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사실 아주 틀린말은 아니라는 거다. 윌포드는 무자비한 독재자임에 틀림없지만, 이 사회에서 의도치 않게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누군가 또한 구조가 만든 피해자니까.


사진 : 네이버 영화

    이런 플롯 못지 않게 좋았던 건 열차 안의 연출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스물 두 칸의 열차를 직접 세트로 만들었다고 했다. 세심하게 다양성을 표현하려 한 게 좋았고 앞칸으로 갈 수록 보이는 광기를 그린 것도 좋았다. 꼬리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 평화로이 머리를 하는 사람들, 마약에 취해 열차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것 같은 사람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니 너무 보물같은 캐스팅이더라. 캡틴 크리스 에반스에 꼬맹이 빌리였던 제이미 벨, 말하면 입 아플 정도의 대배우 틸다 스윈튼과 너무 매력적이었던 앨리슨 필까지. 그리고 한국 캐스팅으로 <괴물>의 송강호와 고아성 배우를 끌어와서 좋았다. 생각해보니 송강호 배우는 <옥자>를 제외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전부 출연한 것 같다. 매 영화마다 다른 눈빛과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냄쿵민수" (왼쪽 사진 : 네이버 영화)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환경 이야기를 해보자.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 때부터 이미 <옥자>에 드러나는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식량 부족과 지구온난화, 육식문제까지. '열차 내 생태계의 밸런스'를 언급하며 중요하지 않은 듯 지나가는 스시 레스토랑, 도축된 고기가 걸려있는 열차 칸 장면은 우리가 오늘날 '평형'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암시하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잡아먹기 위해 사육하는 인간에 대한 환멸일 수도 있고. 그래서 요나가 티미와 살아남아 눈을 처음으로 밟는 장면은 의미가 크다. 열차에서 태어나 이전의 지구를 경험해보지 못한 '신인류'가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는, 우리보다 이 땅을 소중하게 대하리라는 희망이다. 그래서 뻔하지만 가장 상징적인 북극곰이 나타난 것도 좋았다. 이건 여담인데 <설국열차> 크랭크인에 들어가기 전에 고사를 지내는데 여느 촬영장과 다르게 봉준호 감독은 돼지 머리를 귀여운 돼지 이미지로 대체했다. 불필요하게 생명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너무 좋아서 더 팬이 되어버렸다.



    생각이 복잡해져 이 글을 쓰는 데 정말 정말 오래걸렸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걸까, 대단하다, 싶다가도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하고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생각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건 복잡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건 더 어렵다. 어쨌든 좋은 작품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건 도움이 된다. 코로나 덕에(언제 끝나려나..) 이번 학기도 시간이 많을 것 같으니 좋은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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