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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Apr 30. 2019

선행의 습관

자리가 사람을 보여준다

나는 유시민을 좋아한다. 


 그의 사상이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그의 합리적인 면이 좋다. 더군다나 말도 잘한다. 유시민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꽤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유시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시민은 충분히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이고 그런 영향력이 있지만, 그것을 다 누리지 않고 모든 행동과 말을 합리적이고 납득이 가능하게 하기 때문 아닐까. ‘아무래도' 기득권이 되면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현실적으로(나쁘게 말하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런데 유시민은, 자기 능력과 영향력이면 정부에서 높은 자리 꿰찰 만도 한데, 그러지 않고 본인이 옳고 합리적이라 판단되는 길을 택한다. 나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 


 예전 정치인 시절, 지금보다 훨씬 사납고 좋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유시민을 알던,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유시민을 유촉새, 쥐시민이라며 싫어한다. 그때의 토론 영상을 보신 분이 있다면 알겠지만 정말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누구든 공격한다. 말도 조리 있게 잘하니 얼마나 얄미웠겠는가. 지금의 그 모습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싸가지 없는 모습보다는 차분하고 논리적인 모습만 보니 좋아할 수밖에. 


 오늘 말하려는 것은 유시민 찬양이 아니라, 며칠 전 유시민이 예능에서 했던 말이 인상 깊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전원책 변호사님하고 토론할 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제가 반박을 했죠. 저는 ‘자리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라고 생각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어떤 자리에 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에요. 그 자리에 가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면이 보이는 것뿐이에요. 


 예전에 정치하면서 싸울 때는, 정서적으로 되게 분했어요. 너무 분하고 저걸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분하면 풀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과 더 싸웠죠. 그게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되더라구요. 여의도는 전쟁터예요. 


 전쟁터에 간 군인은 정서가 전쟁에 맞게 변화돼야 그걸 견딜 수 있어요. 그러다 전투를 끝내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면 내가 너무 사나워 보이죠. 빨리 제대하고 싶죠. 


 전쟁터에서는 매우 사나운 표정을 하고, 적을 하나라도 더 죽이기 위해서 치열하게 총을 쏘던 사람이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밭 갈고, 쟁기 챙기고, 애들 키우고, 이러면 또 거기에 맞는 정서로 가야죠. 


 제가 변한 게 아니고요.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여러 모습들 중에서 그때는 그런 게 나타나고 이때는 이런 게 나타나고 이런 거죠.” 

(대화의 희열 중)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모두 악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내 위신, 사회적 위치, 주변인들의 시선 때문에 그리고 처벌이 두려워서, 사회적 배제가 두려워서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할 뿐이지. 요즘 뉴스를 보면, 아니 예전부터 늘 그래왔다. 정치인들, 연예인들, 지도자들, 힘을 가진 사람들의 갑질과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보게 된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드는 나쁜 짓을 해댄다. 정치인, 연예인, 지도자들이 특히 나쁜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그렇게 나쁜 성향을 가지고 있어야만 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걸까? 사실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런 요인도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의 뇌는 테스토스테론이 범벅되어 '자리가 주는 힘'에 중독된다고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힘 있는 자리에 앉으면 나쁜 본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 ‘자리'에 있으면 나쁜 짓을 해도 어느 정도 괜찮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쁜 짓, 갑질을 해도 사람들이 함부로 대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땅콩 조현아에게 그저 진상 손님을 대하는 매뉴얼대로 행동했으면 그 승무원은 직장에 짤리지 않았을까. 성폭행을 당한 사람이 보복과 평생 성폭행을 당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달릴지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쉽게 신고할 수 있을까. 위디스크 회장이 직원을 폭행하고 욕할 때 참지 않았다면, 자존심을 지키려고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각오를 쉽게 할 수 있었을까. 방관하던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쉽게 주변 분위기에 동조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뉴스를 보며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달랐을까’를 매번 생각하게 된다. 내 안에도 악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이 본성을 군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꼴랑 21-22살 정도 되는 애들끼리 모여있으면서, 거기서 ‘계급’이라는 것 때문에 한 달 차이로도 주종 관계로 변한다. 병장이라고, 고작 몇 개월 먼저 입대했다고 내 허드렛일을 후임에게 시킬 이유는 없는데도 그게 편하니까,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시키게 된다. 더 나아가면 가혹행위까지 시키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내가 복무했던 2011년 즈음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라고 앞서 말한 사람들과 뭐가 다를까. 괴롭힘의 정도가 소소했다? 내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괴롭힘의 정도도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힘 있는 자리에 있더라도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인류 문명은 망했어야 한다. 영향력이 있으면서 사적으로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공익을 위해 능력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많았디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고 점점 발전해 올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행동이라 칭찬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칭찬하겠다. 이 당연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정말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편이 멋있어 보여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그럼 어떻게 힘을 가졌을 때 그 힘을 악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그런 높은 자리에 안 올라가 봐서.. 하지만 추론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지금부터 작은 배려, 작은 선행을 습관화 시켜야 한다. 지금 당장은 내 영향력이 작아서 ‘나 하나쯤이야 어때’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부터 주변 사람, 특히 나보다 힘이 없는 사람, 상대적으로 ‘을’인 사람에게 배려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우리가 힘을 가졌을 때 언제 ‘노룩 패스’를 하게 될지 모른다(노룩 패스를 모르는 분들은 ‘김무성 노룩패스’를 유튜브에 쳐보시길). 


 지금 이등병, 일병을 괴롭히는 게 뭐 큰일이라고, 후배에게 싫은 일, 귀찮은 일 강요하는 게 뭐 대단한 나쁜 일 한 거라고, 식당 직원에게 함부로 하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쁜 일이냐고 생각하며 악의 습관을 점차 쌓아가고 있다면,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됐을 때, 선생님이 됐을 때, 과장/부장/차장이 됐을 때, 내가 욕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나를 보게 되지 않을까? 갑질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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