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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Nov 21. 2019

모기 앞에 겸손해지는 인간

모기 - 티모시 C. 와인가드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이 설립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매년 인간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간 동물을 밝히는 연례 보고서를 발표한다.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은 어떤 동물일까? 이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답은 ‘모기’다. 2000년 이후 매년 모기에 의해 발생하는 사망자 수는 평균 200만 명을 웃돈다. 2015년에만 72만 명을 죽였다고 한다. 1위가 인간이라고 생각했는가? 인간은 47만 5천 명으로 2위에 그쳤다. 3위는 뱀(5만), 4위는 개와 모래 파리(각각 2만 5천)이고 겉보기에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것 같은 악어나 상어 늑대는 다 합쳐봐야 1000명이 안 된다.  지구상의 동물들이 죽이는 인간의 수를 모두 합해도 모기가 죽이는 인간 수에 터무니없이 못 미친다.



 모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원인이다. 통계적 외삽법에 따르면 모기로 인한 사망자 가수 오늘날까지 살아던 모든 인류의 절반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된다.(p.5)



 여름이면 항상 출현하는 모기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고? 사실 모기가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모기가 옮기는 유해하고 고도로 진화된 질병이 사람을 죽인다. 말라리아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고 황열, 뎅기, 지카 바이러스 등 총 열다섯 가지 혹은 그 이상이 있다. 대부분은 치사율이 높지 않고 고열과 근육통을 유발할 뿐이지만 전염률이 매우 높다. 그중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황열’ 바이러스다. 이 황열로 여전히 매년 3만 명에서 5만 명가량 목숨을 잃고 그중 95 퍼센트가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재밌는 이야기로,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플라잉 더치맨의 실제 모델 얘기가 나온다(물론 영화 얘기는 아니고 실제 플라잉 더치맨 호). 영화에서는 유령 선원들이 타고 다니는 해적선으로 묘사가 되었는데, 실제로도 희망봉 근해에 유령선이 출몰한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실제 상황에 근거한 얘기일 수 있다. 모기 때문에. 


‘플라잉 더치맨’과 같은 재미있는 유령선 이야기들도 사실은 실제 상황에 근거한 이야기이다. 승선한 선원 모두가 황열로 쓰러진 탓에 선박 혼자 바다 위를 몇 개월씩 떠돌아다녔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을 견인한 사람들을 맞이한 건 죽음의 악취와 해골들의 덜거덕 거리는 소리뿐이고, 선원들을 죽인 범인은 단서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을 것이다.(p.37)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모기와 모기 매개 질병(말라리아와 황열)은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기는 매년 여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고, 모기로 인해 병에 걸렸다는 얘기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밖에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기 매개 질병은 인류 역사와 거의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모기로 인해 역사의 큰 줄기가 몇 번이나 바뀌게 된다.


 모기가 역사를 바꾼 첫 사건은 '알렉산더 대왕’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로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렉산드로스는 유럽 전역을 지배할 힘과 능력, 지혜를 가진 왕으로 그 일을 해냈다. 하지만 역사 책에는 나오지 않는 모기 매개 질병으로 인해 그리스의 군사들은 힘을 잃었고, 안렉산드로스 조차 그 질병에 무릎을 꿇고 결국 목숨을 빼앗기고 만다. 이후 그리스는 차츰 쇠퇴하기 시작하고 로마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전 세계를 정복할 것 같던 대왕조차 손톱보다 작은 모기에게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이 기록들을 보면 알렉산드로스가 첫 증상을 보였을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12일이 걸렸다는 점이 일관적이고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유해한 늪지대를 건너 바빌로니아에 입성한 시점, 증상을 보인 시점과 발열 주기 그리고 죽음에 이른 시점까지 모든 것이 열대열 말라리아를 가리킨다. 전설적인 알렌산드로스 대왕은 그렇게 기원전 323년 6월 11일,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작은 모기 때문에 32세의 나이로 단명했다.(p.118)


 이것은 모기가 역사의 흐름에 끼어든 첫 사건일 뿐 결코 쉬지 않는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에도 모기가 있었고, 십자군 전쟁의 성패를 좌지우지한 것도 모기였고, 칭기즈 칸에게도 모기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 전쟁에만 모기가 손을 뻗었겠는가. 아프리카가 정복자들에게 쉽게 땅을 넘기게 된 것은 모기의 역할이 컸다. 어느 정도 내성이 있었던 유럽 정복자들과 달리,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기 매개 질병과 접해보지도 않았고 따라서 항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콜럼버스 일당이 데리고 온 모기(정확히는 배에 숨어 들어온)들에게 무참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책과 같은 분량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만 요약하겠다. 그럼에도 모기가 우리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있다. 식민지 전쟁부터 미국의 남북 전쟁까지 모기는 쉬지 않고 역사를 움직였다. 





 이렇게 큰 흐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사실 모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모기가 역사를 주도한 것은 아니다. 그럴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모기는 모기 나름의 생존을 위해 각 개체가 본능에 따라 살아움직였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어떤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우연과 우연히 만나 큰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인간이 지구 문명을 주도해왔다고 철저하게 착각하지만 작은 모기의 영향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모기를 보며 인간은 역사 속의 ‘겸손’을 배우게 된다





 논외로, 이 책은 나에게 너무 읽기 힘든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굵직한 사건의 주요 키워드를 ‘들어만’봤을 뿐 정확한 사건의 흐름과 배경을 몰랐다. 각 챕터마다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부터 나라 이름과 용어가 모두 나에게는 생소했다. 비단 이 책만은 아니다. 그 유명하다는 ‘사피엔스’도 읽기 버거웠다. 역사 책은 배경지식이 쌓이기 전까지는 이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한 권을 다 읽는데 2주 넘게 걸렸으니 말 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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