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 샤우나 샤피로
책을 처음 읽을 때 '마음 챙김 = 명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명상은 마음 챙김의 한 가지 방법일 뿐, 마음 챙김은 그 범위가 훨씬 넓고 심오하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저 내 생각을 관찰하고 알아채는 것, 그리고 자비와 호기심의 마음으로 모든 감정과 감각을 수용하는 것. 이게 어떻게 내 삶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냐고? 그건 마음 챙김을 꾸준히 수련함으로써 나 자신을 더 깊게 알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목격자 상태로 전환하는 것은 상황을 명확하게 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선택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이 능력은 우리가 배우고 성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p.158)
예로부터 '나 자신을 알라'라는 금언이 강조되어 왔다. 이 문장을 나도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어렴풋한 느낌을 잡게 되었다. '나를 알라'라는 건 내가 어떤 것을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서 효율이 나고 어떤 감정을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만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저 일주일 정도 가만히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며 내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훨씬 이해가 잘 될 것이다.
마음 챙김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이 시대의 필수 덕목이 되었다. 학교에서 마음 챙김을 가르쳐야 할 정도다. 무언가를 얻거나 성취했을 때의 즐거움보다 훨씬 삶의 만족과 행복을 주는 것은 주어진 과업에 '몰입'을 할 때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쉬운 길을 택한다. 그러다 보니 더욱 몰입 근력은 약해지고 얻기 쉽고 자극은 큰 행동(SNS, 유튜브, 마약 등)에 의지하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점수나 등수로 서열을 매기는 교육, 입시와 취업 시스템은 과업을 즐기는 머릿속 몰입회로를 태워버린다. 결과중심적 사고방식에 오랫동안 노출된 채로 성인이 되면 돈이나 쾌락을 주는 활동 외에 무언가에 열중하는 일을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경향마저 생긴다. 여기에 마음속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더해지면 순수한 몰입에서 만족을 찾기보다는 직위나 재산 등 외적인 것만 좇게 된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p.141)
마음 근력이 약해지면 자제력과 판단력도 낮아지고, 매우 자극적이지만 짧게 얻을 수 있는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더욱 나 자신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유튜브 쇼츠, 틱톡 같은 영상을 탐닉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것을 내재 역량으로 잘 다스리는 게 아니라 결국 쉬운 해결책인 단 것에 의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심신체계 전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명상의 핵심은 시종일관 노출되던 좋지 않은 자극을 줄이고, 그 해로운 자극에 노출되어 있을 시간 대신에 바로 그 순간을 느끼는 것이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p.46)
결국 행하면 알게 된다. 우리의 뇌는 무엇이든 실천할수록 강화된다. 나도 지금 떨쳐내고 싶은 나쁜 습관과 감정들에 힘들어하고 있다. 중독된 행동도 꽤 많이 있다. 이것들을 계속 생각하고 떠올리고 행동할수록 계속해서 강화된다는 것을 알았다. 답은 생각의 진입점에서 다른 생각으로 방향을 틀어 더 이상 강화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의 진입점에서 내가 드는 생각, 감정, 감각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마음 챙김이 도움을 준다.
삶을 더욱 풍성하게 살고 싶고 목표를 이루며 살며,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고 싶다면 마음 챙김 수련을 추천한다. 언뜻 보기에 불교의 한 수행방법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실제 불교의 수행 방법에서 많이 가져오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 인으로서 마음 챙김을 꾸준히 수련할 생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훨씬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게 될 테니. 그저 행복한 삶을 위해 수행할 뿐이다.
우리는 난관을 통제할 순 없지만, 그 난관을 어떻게 인지하고 대응할지 선택할 수 있다. 명상 지도자인 사치다난다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파도를 막을 순 없지만, 파도 타는 법을 배울 순 있다."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