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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Aug 13. 2023

바다가 있어 우리는 "살아있다"

그냥 제주 살아요-Patagonia Ocean Day_in JEJU

파타고니아 제작 ‘Fish people’ 갈무라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업주의 홈페이지 메시지.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주주″이기에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Patagonia 홈페이지 갈무리
"우리의 고객은 삶을 돈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며, 삶을 깊이 있고 단순하게 만들기를 원하고, 공격적인 광고보다 믿을 수 있는 친구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우리는 신뢰를 돈으로 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얻기를 원한다. 우리에게 최고의 자원은 입소문을 통한 추천이나 우리의 활동에 대한 언론의 호의적인 칼럼이다."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_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중>


예약 신청을 하고 ‘참가 확정’ 문자를 받기까지 꼬박 일주일. 파타고니아 코리아가 기획한 ‘Patagonia Ocean Day in Jeju’를 살펴보고 싶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처음은 '해녀'라는 단어에 끌렸음을 고백한다. 그무엇보다 ‘현재-사람’과 ‘다음-환경’에 주목하는 파타고니아가 왜 해녀를 주목했는지, 과연 해녀의 무엇을 보았고, 또 무엇으로 소통하는지를 살피고 싶었다.

며칠 무리하게 움직인데다 부랴부랴 차로 1시간 넘게 달려가느라 행사를 기다리는 동안 눈이 감실감실. 1년이면 한 두 번 마실까 말까 한 탄산음료를 홀짝이며 버텼다.

예약 참가자들에게만 주는 플로깅 키드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아이들 틈에 서서(어른도 있었다) 씨글라스 열쇠고리 만들기 패키지도 받았다. 그렇게 점점 해가 저물고 선선한 기운이 발목을 간질거릴 즈음 행사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비양도 해녀 어머니들의 밝은 표정에 눈가에 주름살 하나를 추가했다.

오늘 행사에 소개된 영상은 모두 3편. 이중 2편은 이미 봤고, 해녀 관련 강의에 종종 활용하던 것이고, 나머지 1편(러닝타임이 무려 48분이 넘는)은 초면이었다.

사전 소개만 봐서는 ‘제주 해녀’를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 공동체라는 점에서 골랐구나 생각했지만 풀어가는 과정은 달랐다.

한때 현역으로는 가장 나이가 어린, 마라도 김재연 해녀의 스토리나 파타고니아 앰배서더이자 세계적인 프리다이버인 키미 위너가 제주 해녀에게서 찾은 삶의 지혜는 분명 특별했다.

파타고니아 제작 ‘Daughter of the Sea‘

평범하지만, 모두가 희망하는 도시 근로자의 삶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던 30대 여성이 바다에 몸을 던지면서 해방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끼는 과정(Daughter of the Sea), ‘엄마’를 선택하는 것으로 꿈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을 해녀 공동체의 강인함과 특유의 회복력으로 풀어내는 것(Lessons from Jeju)들이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심장을 아프게 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바다에 자신을 맡겨버리면 어떨까 했던 생각은 어머니와 고모의 지지를 통해 서서히 사라졌다.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데..." 지금껏 '최연소 해녀'였던 불편한 타이틀이나 '6대째 해녀를 한다'는 무게감을 덜어낸 표정은 밝았다. 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당당하게 바다를 향해 선 '다음 세대'해녀의 모습이 고왔다.

세상 가장 성스러운 '엄마'가 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를 묻는 것은 아픈 일이다.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프리다이버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일 수 없다. 심지어 "남성들은 아빠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바다로 나오는데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고 씁쓸하게 던지는 목소리가 아프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손짓으로 서로를 알게된 해녀와 프리다이버의 결론은 '엄마'다. 그저 해녀를 옆에서 보고 배웠던 것이 전부는 아니었을리라. 영상을 위해 인위적으로 뭔가 연출했다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 해녀를 알면 장면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함께 바다에서 작업을 하며, 목숨을 의지할 수 있는 신뢰 관계를 쌓고, 힘들게 작업한 해산물을 나눠 먹으며 경험이라는 이름의 지혜를 나눈 다음 얻은 것들이다.


파타고니아 제작 ‘Lessons from Jeju‘

그리고 이것으로 어떻게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Fishpeople (바다를 품은 사람들)’에 닿으며 몇 개의 밑줄로 정리됐다.

호주와 타이티, 미국 하와이‧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에서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잠수를 배운 프리다이버와 스피어 피싱 전문가, 파도 전문 사진작가, 바디 서퍼, 장거리 바다수영 선수로 살고 있는 여섯 명의 이야기는 ‘바다’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그냥 바다가 아니다. 평온함과 자유의 공간이다. "살아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다.

한계를 뛰어넘기 보다 한계라 부르는 것들을 확대하는 것으로 얻는다. 자연에 순응하고 그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것들이 쌓이며 그대로 삶이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무리한 경쟁은 피하고, ‘어깨 너머’ 배운 것을 전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더이상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서핑 천재는 자신에게 보드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일부러 크게 비웃는다.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광산 마을에서 태어나 광부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이가 부상을 입고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전 재산을 털어 카메라와 방수 케이스를 산다. '미친 짓'이란 걸 알았지만 그래야 했다.

어떻게든 아버지를 닮고 싶다고 좀더 길게, 더 길게 숨을 참던 딸은 바다속고요 안에서 '수영하는 법을 기억해 내'라는 아버지의 주문을 떠올린다.

‘이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벽 앞에 무너지는 대신 등을 대고 서서 다른 방향을 보고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치유하고 티 내지 않고 가만히 응원한다. 바다와 해양생태계에서 배운 지혜다.

** 파타고니아 피시피플 공식 홈페이지 https://www.patagonia.com/fishpeople.html


별다른 설명 없이, 어떻게 보면 조금은 불친절한 영상이지만 현장에서 호흡을 맞춘 사람들의 반응은 ‘꿈틀꿈틀’했다. ‘그래서 해녀를 알겠는가’를 물으면 제주 바다에서 해산물을 잡는, 잠수를 잘 하는 여성의 이야기와 낯선 사투리, 만국 공통의 사랑을 얘기할지 모르겠다.

다만 ‘바다가 있어서’ 살아있고, 이렇게 다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공감을 샀을 거라 믿는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속깊은 작업이, 우리가 져야 할 책임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해야 한다.

행사 참가자들이 받은 플로깅 키트를, 누군가는 의미 있게 쓸 것이다. 그리고 그 여운이 담긴 무언가에 비용을 지불하거나 주변의 공감을 유도하지 않을까.

더 해야 할 뭔가가 생각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17년을 꽉 채우고 다시 1년을 쌓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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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와 운이 닿는_무언가가_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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