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 제주 포도뮤지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전
고 이양지 소설가(1955~1992).
어떤 이유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전시장을 나오면서 30여년 전 요절한 작가와 그녀가 남긴 ‘해녀’를 떠올렸다. 해녀 취재를 하면서, 그리고 지난해 애플TV+에서 방영한 드라마 <파친코: Pachinko>로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도 기억했던 이름이었다. 이번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고 이양지 소설가는 재일제주인 2세다.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도 서쪽 야마나시현 작은 마을에 정착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조센진'이라는 사실을 큰 흉처럼 느꼈던 경험과 귀화 후 경계인으로 살았던 삶 등을 글로 녹여냈다. 1989년 <유희>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양지는 1992년 5월22일 급성심근염으로 사망했다. 등단 10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3년 후였다.
지난해 열린 그녀의 추모 모임에서 첫 수필집인 <언어의 지팡이>이 세상에 나왔다. 그녀가 쓴 시, 수기, 소설가 오바 미나코와의 대담, 이양지의 동생 이영의 ‘언니 이양지에 대해’가 실렸다. 소설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삶과 생각을 압축했다.
수필집에 담긴 ‘나는 조선인’은 스무 살에 쓴 수기다. 이양지의 부모는 10대 때 일본으로 건너와 궂은일을 하며 자식을 키웠다. 전철역 앞 벤치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먹고살 만해진 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했다. 이혼 이야기가 툭하면 나왔다. 이양지는 명랑하고 사교적인 어린이였다. 하지만 집 안의 냉랭한 분위기에 늘 위축된 기분이 들었다. 이양지의 부모는 부부싸움을 할 때 아주 가끔 한국어를 썼을 뿐, 한국인이란 사실을 감춰왔다. 이양지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교 시절에 미국 유학 시험을 보려고 호적등본을 떼고 나서였다. 그 때의 감정을 그녀는 “내내 숨기자 숨기자는 의식과 아니야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젓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고 썼다.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한국 역사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가야금과 한국무용을 배우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둔다. 대한해협 한·일을 오가며 쉴 새 없이 글을 썼지만 ‘위화감’의 무게는 갈수록 커졌다.
‘이상과는 다른 우리나라, 실제 생활의 어려움, 그 당혹스러움에 벌벌 떠는 나의 연약함’은 작가적 감성에서 우러난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재일한국인의 경계적 위치, 혹은 이중적 타자의 위치를 문학작품을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묘파하고 있는 작가로 평가받던 그녀는 관찰자이자 경험자로 디아스포라의 양면을 ‘불우성’이란 단어로 끌어낸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애매한 경계에 있음도 모자라 ‘여성’이라는 약자의 굴레까지 씌워진 비자발적 억압과 강요된 좌절, 각인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엎드리면 코가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도,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서로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상황을 경험한다.
소설은 다소 무겁고 어렵다. 소설 속 ‘해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는 다르면서도 같다.
소설 속 그녀는 주문처럼 들려오던 ‘물속으로 들어가라’라는 신음소리에 쫓기듯 욕조에 머리를 가라앉힌다. ‘제주도의 바위 표면에 와 부딪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고향 제주 바다로 형상화된 '물속'은 재생과 정화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기원을 드러내는 공간을 의미한다.
동명 소설집에 수록된 <나비타령>에서 주인공은 상처 투성이인 가족사의 혼돈 속에 가야금으로 마음을 달랜다. 모국의 소리를 따라, 일본에서 찾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유학을 결정하지만 그 한국에서 다시 차별을 당한다. 일본에서도 이방인이지만 한국에서도 이방인이다.
디아스포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제주였다. 그 제주에, 그 단어를 키워드로 한 전시라니. 몇 번인가 일정을 잡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연장 전시 소식에 두 손을 꼭 잡았고 움직였다. 제주 포도뮤지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YET, WITH LOVE)’다.
이주자들과 소수자들이 겪는 디아스포라(Diaspora) 아픔과 소외에 공감하고, 이러한 소외와 고독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
경계의 사람들과 더불어 다양한 층위의 소수자가 처한 소외와 어려움에 공감하고, 진정한 공존과 포용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택한 다양한 장치가 숨을 쉬듯 움직였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끊임없는 이동과 정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이유로 살 곳을 찾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사람들은 생존이나 안전을 위해, 혹은 자유와 경쟁력을 얻기 위해 익숙함에서 ‘낯선’으로 이동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따위는 없는, 그거 불안하고 막연한 것들을 향한다.
출신, 국적, 비자, 체류, 허가와 같은 개념을 언제부터 썼을까. 보호라는 명분을 꺼내기는 했지만 뾰족하게 날을 세워 경계를 나누는 일은 결국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 짓고 누군가를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는 제로섬 상황을 가속화한다.
제주해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출가 또는 출향의 어감이 늘 무겁고 끝이 흔들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대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멸시와 차별, 그리고 폭력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선택이었다. 남았어도, 또 다시 돌아왔어도 ‘금전’이란 무기를 장착하고도 밀려났고, 흔들렸던 기억이 아직 흥건하다.
전시는 ‘우리가 만든 약속과 믿음이 혹시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또 몇 번이고 묵직한 동통을 경험한다. ‘우리가 택한 것과 택한 적 없었던 것들로 우리가 된 것’이란 노래가사가 귀에 박힌다.
시간은 이제는 사라진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로 향한다.
오사카 이쿠노구 일부 지역의 지명이었다. 이카이노는 일본 최대의 조선인 밀집지역을 가리키는 대명사였다. 일본인에게 이카이노는 조선인을 연상시키는 기피 지역이자 차별의 공간이었다.
자이니치 시인 김시종은 이카이노를 ‘보이지 않는 동네’라고 노래했다. “없어도 있는 동네/ 그대로 고스란히/ 사라져버린 동네/ 전차는 애써 먼발치서 달리고/ 화장터만은 잽싸게/ 눌러앉은 동네/ 누구나 다 알지만/ 지도엔 없고/ 지도에 없으니까/ 일본이 아니고/ 일본이 아니니까/ 사라져도 상관없고/ 아무래도 좋으니/ 마음이 편하다네.”
그리고 지금 피할 수 없어서 지독하게 아팠던 느낌들이 다시 돋는다.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왜 인지 모를 논쟁 속에서 어느 노 문객이 쓴 일갈이 툭하고 옆구리를 찔렀다.
‘그토록 오매불망/나 돌아가리라 했건만//막상 와본 한국은/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나, 지금 당장 보내주게/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게/나,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그곳도 연해주에 머물다가/함부로 강제이주 되어 끌려와 살던/남의 나라 낯선 땅이지만//나, 거기로 돌아가려네…“
지났다고 생각한 것은 아직 현재형이다. 흉터만 남았다 여겼는데 순간 피가 흐른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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