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끌 것인가, 시선을 만들 것인가

지역력 탐구생활 1 : 지역력에 주목해다

by 고미
지역력은 지방시대, 로컬 경쟁력이 대세라는 사회 기조 아래 깔려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SDGs)의 필수 요건이다.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지만 듣는 순간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그려진다. 지역력은 지역이 원래 가지고 있는 회복력과 지역고유성, 다양성을 아우르는 말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지역소멸 위기를 마주한 일본이 총무성 내에 지역 이주와 교류 활성화, 지역관계인구 확대 시책을 담당하는 지역력 창조그룹이라는 부서를 두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생각할 이유가 된다.
지역력이 중요한 것은 이 것이 지역의 각자가 지닌 독자적인 매력과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키는, 무엇보다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이냐, 어떻게 확인할 수 있냐고 한다면 눈 높이, 가슴 높이를 현재에 맞출 것을 제안한다. 지역력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 인정하고 강화와 연화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힘이 붙는 존재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대동여지도.jpg 대동여지도. 보물850호. 국가유산청


지역에서 사는 ‘힘든’ 일?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자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흥밋거리와 관심을 찾는다’.

지난 2023년 당시 13년차 기자가 쓴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고 며칠을 앓았다. 20여년의 기자 생활을 하며 느꼈던 것들을 함구하고 감내했던 나에 대한 반성과 활자로 세상에 꺼내준 후배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이 엉키면서 나이와 어울리지 않은 방황을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작가는 중앙적 시각에서 본 지역의 현실을 냉정하게 꼬집는다. 어째서 온갖 사건사고나 험한 갈등과 마찰 같은 문제들이 지역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는가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나라 전체 흐름의 90%나 되는 엄청난 현실 속에서 지역이 이름 한 줄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으면 안 됐다. 비극적일수록 언론 노출이 더 많이 됐고 ‘고통의 중개인’이 된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단순히 ‘시선을 끄는데서 멈추는’한계성을 노출하고 말았다.


스크린샷 2025-02-10 155906.png 지난 2월1일 제주시 구좌읍 토끼섬 인근 해상에서 좌초된 애월선적 삼광호(32t·승선원 7명)와 33만선호(29t·채낚기·승선원 8명). 사진=제주지방해양경찰청 제공

‘물 속 사정을 안다’의 의미


지난 1일 제주시 구좌읍 해상에서 어선 좌초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선원 15명 중 11명이 구조됐지만, 나머지 선장과 선원 3명 사망하고, 선원 1명은 아직 실종 상태다.

해경은 사고 이후 계속해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온 나라가 들썩할만한 큰 이슈가 많은 터라 사고 관련 내용은 중앙에서는 단신으로 처리될 정도로 후순위가 됐다.

그리고 다시 눈에 띌 만한 사실 하나가 알려졌다. 구좌읍 토끼섬 인근에서 지역 해녀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실종자 시신을 발견했다. 사고 위치로부터 북서 방향으로 약 800m나 떨어진 곳이었다.

바다 사정을 아는 사람은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한길 아래도 쉽게 내보이지 않는 바다에 전문 잠수부나 수중 수색인력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해녀가 먼저 실종자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짬이라고 부르는 경력과 오래 축적돈 민속 지식이 있어 가능했다.

언론들이 앞다퉈 실종자 수색을 위해 해녀들이 수색팀과 조를 편성해 직접 물에 들어가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썼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유사한 사고들에 해녀들은 기회가 되면 참여했다. 오히려 탐사 장비가 고도화되기 전에는 해녀들의 바다 지식을 적극 활용한 예가 많다.

이번 역시 사고 해역 물길에 밝은 구좌읍 하도리 해녀들이 실종자 시신이 흘러갈 것으로 예상되는 위치를 가늠해 수색 30분 만에 찾아냈다. AI가, 각종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절대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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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5-02-10 161037.png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어려울 때 힘 보탤 줄 아는 마음


해녀, 해녀문화의 가치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물질 경력 45년’은 이번 경우에는 베테랑이지만, 해녀 관련 사고에서는 무리해 바다에서 자맥질을 한 비극적 결과로 해석된다.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해녀와 해녀문화가 중요한 것은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처럼 물길을 알고, 바람을 읽고, 소라나 전복, 해조류들의 서식 환경과 특성을 살피는 실전에서 익힌 지식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움직이는 마음이다.

해녀 사고가 났을 때도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이 해녀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해녀들의 몫이다. 바다에서 변이 생겨 누군가 목숨을 잃으면 길게는 한 달까지 물에 들어가지 않는 사정들을 감안하면 이번 해녀들의 활약은 단순 화제성으로만 다뤄서는 안된다.

이번 미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구조된 선원들이며 수색작업 중 저체온증이 나타난 사람들이 생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해녀 탈의실이 요긴하게 활용됐다. 남성들에게는 내주지 않는, 해녀들의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물품이 있는 공간이 여러 목숨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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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방향을 조금 바꾸는 일


여기서 지역력의 한 조각을 살핀다. ‘제주 해녀’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억척스러울 만큼 강한 생활력, 모성애 같은 위대한 단어 뒤에 숨어있는 이타심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수준으로 내어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 도울 방법을 찾는 본성’의 발견 정도로 보면 좋을 듯하다. 물론 해녀만이 아니라 공동체 단위로 삶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것들이다.

이주 열풍이 뜨거웠던 시절, 유행어처럼 등장했던 ‘배타성’은 제주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부정적이고 또 보다 강하게 나타났었다. 생각해 볼 것은 그 시기 제주로 바람이 뜨거웠고, 중앙에서 주목할만한 자극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이었다는 점, 타 지역들과의 상대 비교는 해보지 않았다는 점, 어느 순간 확증편향 수준으로 수용해 버린 부분들까지 인정해야 한다.

‘네 생각은 그렇고’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내 생각과 맞지 않다고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보는 방향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 기회에 지역력이란 것을 탐구해 보자고 제안한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효용가치나 자원 규모,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도시, 마을의 가능성과 주민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자산을 활용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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