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그런 날이 있다. 계획에도 없던 일 하나가 하루를 온통 차지해 버리는. 그게 오늘 그리고 오늘이었다.
무려 616쪽의 벽돌책을 붙들고 바짝하고 텐션을 올렸다. 3월 치고는 후끈했다가 한파주의보를 날려야 할 만큼 쌀쌀맞게 식은 수은주 사이 이만한 호위무사(?)는 없다.
‘혁명/전쟁 같은 고난이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잘 헤쳐 나갈 능력이 있으며, 이를 극복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은 호기심이었다. 제일 아끼는 공간 in 공간에 나타난 낯선 얼굴을 보고 덥석 쥐었다. 습관처럼 책장을 넘기는데 감사하게도 활자가 깨알보다는 훨씬 크고 도표 정리가 깔끔하다. 몇장 넘기지 않았을 때 '회복'이란 단어에 꽂혀버렸다. 순간 ’큰일 났다‘는 경고를 감지했지만 정성스런 북마크를 믿고 책장을 붙들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차이가 무엇이든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유사성이 차이점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차이점 때문에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유사성을 보지 못한다면 매우 슬픈 일이 될 것이다.’
경제 관련 분석서지만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이해를 돕는다. 쉽지 않지만 알 것 같은 상황들이 텍스트로 전달된다고나 할까.
저자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했다. 다만 반복되는 주기가 20~30년이 아니라, 몇 백년 단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미처 인지하기 힘들 뿐이라고 했다.
‘빅 사이클(Big cyce)’ 6단계 중 4단계 부터는 원래 책주인과 동기화가 됐다. 밑줄과 북마크가 겹친 자리마다 ‘단숨에 소화해 버리고 말겠다‘는 내 욕망이 포개진다.
‘4단계(과잉의 시대)는 '거품 번영 Bubbl prosperity' 단계라고도 부른다. 이 단계는 빚을 내서 재화, 서비스, 투자자산을 구입하는 경우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현금흐름이 악화되어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5단계(재정 악화와 갈등의 심화)에서는 계급 간의 갈등이 어려운 경제 상황과 맞물려 점점 위기 상황을 맞는다.
다음에 나열한 상황이 자주 발생할수록 6단계(내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1) 사치품 소비, 2) 관료주의, 3)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4) 계급투쟁(언론은 자경단처럼 거칠어진다), 5) 희미해진 준법정신(권력이 사법 제도와 경찰력을 정치적인 무기로 사용한다)
내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면 그나마 사정이 조금 좋을 때 탈출해야 한다.
이 단계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는 '강인한 중재자Strong peacemaker'로 국가를 단결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지도자는 드물며 만나기 매우 어렵다.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6단계는 내전과 혁명이다. 내전과 혁명의 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혁명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진행 중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잔인함이 6단계 혁명에서 벌어진다. 엘리트층이나 온건파들은 외국으로 도피하지 않으면 투옥되어 처형된다.
내전과 혁명을 이끄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출신들이 많았다. 이 지도자들은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타인을 이끌고 협력하는 능력으로 거대 조직을 운영했다.
내전을 치르는 데 가장 적합한 지도자는 '따르고 싶은 장군Inspirational generals' 같은 유형의 지도자로서 각계각층의 지지를 얻어 여러 유형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한 지도자다. 전투는 참혹하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냉혹해야 한다.’
데자뷰 같은 표현들에 솜털까지 서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6단계에 진입할 경우, 갈등 상황이 매우 격해지면서 우선 내전을 피하고(온건하게 살고) 해외로 도피하거나 내전에 참여해야(냉혹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두 가지와 비교해서 참혹하거나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지한다. 거기에 이르기 전에 어떻게든 바른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만 선명해졌다.
‘어느 시대나 성공의 공식은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사업을 영위하다가 어느 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라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서 생산 도구를 구입한 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생산 제품을 만들어 내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자본주의는 부와 기회의 격차와 부채 과잉을 초래했고, 이는 불황, 혁명, 전쟁을 일으켜 국내 질서와 세계 질서의 변화를 초래한다.’
그러면 현재가 엔드 게임 상황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이나 시도해 볼 것들도 다양하다.
‘나는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미래에 베팅하는 것은 확률에 베팅하는 것이며, 확률을 포함해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우선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생에서나 시장에서나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에서 참패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산하고, 만족을 지연시키며, 가장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사안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충분히 친절한 의도를 깔아뒀다.
역사적 패턴 이해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분산 투자와 리스크 관리로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할 것을 조언한다. 그리고 지정학적 변화, 글로벌 트랜드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큰 사이클 안에 올려 변화와 상황을 살피다보면 가장 올바른 의견이 승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던 저자의 ‘극단적 개방성’과 실패에서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신념까지 읽을 수 있다.
최근 며칠 지원사업을 준비하는 청년 창업가들과 소통할 일이 늘었다. 차근히 준비한 자료를 보고 “좋은데요. 그런데 왜 이 아이템을 하려고 하는 건가요”하고 조심스레 묻는다.
다양한 답이 돌아온다. 다음은 좀 더 솔직한 생각을 얘기해 달라고 한다. 로컬, 지역을 기반으로 도전을 외치는 청춘들에게 ‘성장’은 몸집을 키우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 것을 한번 더 살피고 원하는, 또 할 수 있는 도전을 하라고 귀띔한다.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에 베팅하는 것(실질 소득 상승 같은)은 거의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맞닥뜨릴 충돌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후퇴를 하거나 끝내 무너지기도 한다. 그만큼 도전에 필요한 적절한 지표를 확보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니 다음까지 보고 차근히 채워봅시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진실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것을 피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 는 저자의 ‘원칙’에 공감하면서 점점 좋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나를 본다.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