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원도심 인사이트 투어 정리
“나는이,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민. 나 사는 걸 보라, 이제 곧 백 살 아이가 게. 세상이 다 엎어져서 내 머리의 세상이 고대로 있질 않아…나고추룩 산 사람도 이신디, 나 고튼 사람도 살암덴 그 사름들신디 강 골 아주라. , 먹엉 죽는 물시민 나신디 가정오랜 허여. 나가 먹엉 대신 죽어준댄 고르라!
나는 있지, 어떻게 생각을 하냐면. 내가 사는 걸 봐, 이제 곧 백 살 아니냐. 세상이 다 엎어져서 내 머리의 그대로 있질 않아…나처럼 산 사람도 있는데, 나 같은 사람도 살았다고 그 사람들에게 가서 말해줘라. 그래서, 먹고 죽는 물이 있으면 나한테 가져오라고 해. 내가 먹고 대신 죽어주겠다고 전해라)” #기억으로 만나는 원도심 사람들 이야기_#무근성 토박이, 아흔여섯 고두연 할머니 인터뷰 기록‘이슬의 뼈’중
오랜 경험이지만, 누군가의 기억은 어떤 내용이든 참 섬세하고 울퉁불퉁하다. 아마도 ‘그 때’라는 시간과 이후 쌓인 경험들이 엉기고 뭉치고 또 풀리면서 만들어낸 무정형의 것들이어서 그렇다. 반듯하게 다져진 것들에도 기억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그보다 더 많은 보통의 기억들은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다양하다. 그 영역에 발을 넣는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한동안 제주시 원도심을 포함한 여러 원도심을 살피다가 요새 좀 뜸해진 것은 ‘시간’이라는 붙들지 못하는 장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그리고, 다시 발 아래 원도심을 두게 된 기회에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나노 단위로 시간을 쪼갰다. 그런 하루하루를 꼬박 10일을 보내고 난 후 몸과 정신 모두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지만 좀 더 채울 수 있는 것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원도심은 요즘 다른 이름, 흐름으로 읽힌다. 과거 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지고 사람과 돈, 자원이 모이면서 힘을 키웠던 ‘옛’도심에서 묵어서 더 깊어진, 또 들 자리의 기회로 바라보는 새로운 담론의 중심에 있다. 이렇게 문장으로 만들어 놓으니 어딘지 거창해 보이지만 사람 살던 곳에 다시 사람이 드는 당연한 이치가 확인되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이런 흐름을 느낀 것은 사실 몇 년 됐다. 원도심을 거점으로 한 크고 작은 일들이 이어지고 사람을 찾아 움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난 경력을 접고 시작한 새로운 일의 거점이 이곳 원도심이라는 점까지 특유의 긍정적인 해석으로 풀었다.
경제 유투버 김영준의 <골목의 전쟁-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골목상권’이라는 최근 몇 년 로컬과 연결해 입에 자주 오르는 키워드가 알고 보면 ‘사람 사는’의 다른 말이란 사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 단지는 새로운 상권을 키워낼 인큐베이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이상에야 브랜드를 형성하고 인지도를 쌓아나갈 수 있는 곳은 결국 주택단지의 골목에 위치한 상권이다. 현재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골목의 주택들은 이런 식으로 상가로 바뀌고 있다. 기본적인 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면,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는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주택들이 상가로 변해갈 것이다. 그것들이 새로운 상권을 만들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 소개된 모든 내용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꽤 있다. 다만 2017년 나온 책에서 오늘을 읽는다는 것은 흥미롭다.
원도심의 중심에 가장 번창했던 원상권이 있는 구조의 제주에서 ‘둘레상권’은 골목상권의 확장형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원상권은 원의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힘, 원심력이 작동하던 공간이다. 이미 경쟁력과 그룹을 이루고 있는 아이템들과 비교해 접근성 보다는 일부 니즈가 있는 아이템들이 모인 선 또는 면을 만든다. ○○거리, ☆☆타운이라는 이름의 상점가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런 결집의 힘은 ‘오래 장사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예를 들어 ‘오래 장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은 강력한 이점이다. 사업 아이템을 잘 고르고 그것의 가치를 소비자들이 높게 평가해 줄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대부분 그때까지 버티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 문제지만, 창업하겠다는 결심에는 이런 부분이 디폴트 값으로 잡혀 있다.
흔히 좋은 아이템, 그리고 나만의 아이디어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다른 요소들인 경우가 많다. 좋은 아이템보다는 그 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시장의 크기라는 말은 현장을 안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원도심 얘기를 하다가 흐름이 바뀐 것은 이런 상황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조짐에서 어느 순간부터 느낌이 된 것들을 둘레상권이라 부르며 즐기게 된 사실을 누리고 또 나누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4월 두 차례의 ‘걸음’얘기를 하기 위한 앞 작업이 꽤나 거창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기획한 ‘차없는거리 축제’와 제주더큰내일센터의 제주 프로젝트 인사이트 투어, 그리고 지인과 소소한 산책으로 원도심 골목을 조곤조곤 누볐다. 어느 길이든 ‘로컬’이 테마였다. 로컬이라고 해서 대단한 무엇을 찾아 의미 부여를 했다기 보다는 원도심이 생겨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변화, 다시 원도심을 찾는 이유 같은 것을 온전히 내 기준으로 전달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오랜 관찰의 결과는 예상보다 더 친밀하게 전해진 모양이다. 질문도 많았지만 그 보다 챙기고 느끼려는 반응들에 흥이 절로 났다.
처음 차없는거리 축제의 코스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칠성로를 중심으로 한 원도심의 매력을 맛보는데 집중했다. 원도심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 안에 있는 어떤 장소이든 머묾이 필요했고, 그렇게 했다. 이동 거리는 최소화하는 대신 원도심 작은 찻집에서 각자 취향대로 차를 고르고 10여분 담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큰내일센터의 제주프로젝트는 달랐다. 전체 참가자 중 제주 출신이 아닌 경우가 35% 정도. 제주시 원도심을 모르는 서귀포 출신도 있고 제주에 살면서도 원도심이 낯선 경우까지 다양한 청년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구색과 시간을 맞췄다. 탑동을 중심으로 한 두 개 팀이 하나는 산지천 방향으로 나른 하나는 무근성을 살폈다.
탑동과 산지천의 고리는 시간의 확장으로 연결했다. 사료만으로는 기원전 5세기, 매립하고 첫 건축물인 탑동해변공연장이 지어진 지 이제 30년 같은 키워드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고 골목 하나를 지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무근성 방면은 주택가에 위치한 골목 상점들의 존재를 직소퍼즐 조각처럼 큰 퍼즐판을 채워가는 느낌으로 더듬었다. ‘나쁜 대기업’이나 ‘착한 시장’같은 전통적인 선악 대결 구조 없이 이전 전통시장과 대형유통매장이 차례로 거쳤던 세대교체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걷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대도로와의 연결과 접근 루트에 따른 확장성 따위를 설명하는데 충분히 시간을 썼다. 물론 다 보여주지는 않았다. 찾아봐야할 이유를 남기는 것이 원도심 인사이트 투어를 진행하는 나만의 시그니처다.
지인과의 세 번째 걸음은 그동안 여기저기 뒤져 걸으면서도 직접 연결해보기는 처음은 길이었다. 목적지를 두고 걸으면 골목은 의외의 지름길이 된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전 투어에서 놓쳤던 동양여관과 탐라여관을 찾았다. 러키비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은 옛 모습의 일부만 남은 상태였다. 원도심의 세월을 탄 까닭이다. 다만 다른 공간들과는 달리 후끈했던 명성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의 변화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 아쉬웠다.
탐라여관은 2개 건물로 나눠 영업을 했다. 상속받은 자식들이 각기 따로 영업을 하게 되면서 탐라여관과 동양여관으로 나뉘었다.
동양여관 103호에는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이 묵었다고 하며 탐라여관에는 1960년대에 공연하러 온 신영균, 박노식 등 연예인이 투숙하기도 했다. ‘나 때는…’도 통하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 동양여관은 건축 당시 일본에서 공수해서 썼다는 목재가 남아 있다. 지금도 여인숙으로 영업을 하고 있지만 2016년 소방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입구를 허물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 탐라여관은 소방도로를 내면서 건물 일부가 잘려 나가 어딘지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이 곳까지 로컬의 힘이 미친다면… 나름 기분 좋은 상상이 걸음을 가볍게 했다. 다음은 또 무엇을 찾게 될까. 그 때까지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