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메쉬커피 제주 탑동 1주년을 축하하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다.
"지금은 너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오징어 게임'같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은밀히 믿고 있다.
진짜 세상은 다르다고,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김영하 #김영하의 인생 사용법 #단 한 번의 삶_중
두근. 정말 오랜만에 두근하는 소식이었다. 꼬박 1년 전 이웃이 된 #메쉬커피_의 제주 탑동 1주년은. 지난해 제주에 문을 열 때만 하더라도 바다 건너 멀리, 여기 원도심하고는 한참 다른 힙한, 어딘가 남다른 포스가 느껴지는 이웃을 멀리서 봤다.
물론 얼굴에 ‘내 구역이야’하는 배짱 비슷한 것을 장착하고, 커피 좀 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을 채워 첫 만남이란 걸 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뭐랄까 대학에 들어가 처음 미팅이란 것을 할 때의 느낌 비슷했다.
그렇게 4개의 계절을 같이 보냈다. 그 특별함이 ‘1년’이라는 단어를 뭉클하게 만든다.
탑동 1주년을 기념하는 파티를 한다는 소식을 분명 미리 들었지만 정작 오늘이 그날이란 걸 하얗게 잊어버렸다. 바빴다는 것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안함 따위가 턱턱 소리를 내며 쌓였다. 그래서 오후 아예 작정을 하고 ‘왔어요’하고 문턱을 넘었다. 즐거운 것은 ‘이제는 아는 사람’의 라포가 입꼬리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는 사실이다.
무료 커피와 무료 맥주를 고르면서 표정 관리는 내려놨다. 이번에는 할 일을 잊는다. 옛 버릇이 조용히 작동한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로 시작하는 속마음 토크.
“탑동 살이 1년, 처음 탑동에 왔을 때와 지금 탑동은 어떻게 달라졌어요?”
슬쩍 손바닥보다 작은 미니진을 건넨다. 혹시 몰라 준비했다는 100개 한정판 미니북에는 ‘그래서 제주 원도심 이곳 탑동에서, 너무 시막해지지 않고 좋은 커피를 내리며 오래오래 재미있게 사는’바람이 불었다.
메쉬커피는 올해 꽉 채워 10년차다. 2015년 서울 성수동 서울숲에서 시작한 로스터리 커피바는 나름의 골목 문화를 만들며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취향과 가치를 잘 표현한 맛있는 커피로 사람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목표를 지키고 있다. 커피 생산자부터 최종 소비자까지 모두가 행복한 지속가능한 커피를 생산하고 서로를 연결하겠다는 구상은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를 통해 구현됐다.
몇 번인가 ‘응?’하는 반응을 불렀던 맥주와 함께하는 이벤트는 제주가 아닌 서울 성수 골목에서 만들어진 문화다.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골목 사람들과 골목을 찾은 사람들이 맥주와 각자 꺼낸 안주를 나누며 한참을 웃고 떠드는, ‘어떤 오후’ 가 사람을 불렀다. 그런데 제주는 그런 것과는 다른 골목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메쉬커피 탑동 1년’이 찾은 것들 중 하나다.
제주의 골목은 뭐랄까 훨씬 정겨운 느낌이다. 눈이 마주치고 어느 정도 친밀해지면 “밥은 먹었냐. 먹고 가라”로 이어진다. 일부러 일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차이이자 특징이다.
미니진에도 그런 느낌이 짧게 정리됐다.
q. 서울과 차이가 있나요?
서울은 도시의 골목을 닮아있는데 제주는 좀 더 자연 중심이예요. 그래서인지 커피를 즐기는 방식과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도시적 외로움 때문일까요? 서울에서도 우리 동네 서울숲은 생각보다 대화로 풀어가며 관계를 맺는 일이 자연스러웠어요.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만남에도 적극적이고요. 제주 탑동은 외형적으로는 도시의 모습이지만 찾아주시는 사람들은 익숙함을 더 선호하며 커피와 바리스타보다 함께 온 사람들의 관계성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았어요. 뭐 생각해보면 서울숲의 몇 해는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오래오래 함께 어울려 살다 보면 커피를 즐기는 분위기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낯선 느낌이다. 익숙함은 그 익숙함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것을 넘어서면 식구보다 가까워지지만 그러지 못하면 겉돌게 된다. 지역 사람들은 잘 못느끼지만 익숙함이 지역 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기도 한다.
메쉬커피의 표현을 빌리자면 ‘파편적’인 느낌이 매력적이지만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다음 질문.
q. 일년의 경험은 어땠나요.
살아온 환경이 달라 문화가 다를 때 사람은 쉽게 어려움에 빠진다는 것을 배웠어요.
제주에 메쉬커피가 자리를 잡으려면 오래 걸릴 일이라고 머리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다르게 움직였죠. 삶의 여유가 몸에 배기엔 서울은 너무 빠르고 바쁘고 정신없으니, 여유롭고 평화롭기를 바라던 제 계획과 다르게 성공의 시간을 당기려고 스스로 스트레스에 빠지더라고요. 서울과 제주 사이에서 길을 잃고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헤매다 일 년이 다가오는 지금 100%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두 공간에 적응하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할 자신이 생겼어요. 서울과 제주, 저와 메쉬커피에겐 놀고 먹고 살아가는 삶의 공간입니다.
그 사이 제주 메쉬커피는 처음 메뉴에 올렸던 ‘제주 스페셜’을 모두 내렸다. 제주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있지만 제주에서‘만’에 힘을 싣지 않는다. ‘익숙함’을 좋아하는 제주의 스타일에 맞춘 결정이다.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도 즐겁지만 메쉬는 골목에서,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 하기를 원해요. 제주 한정 메뉴는 관광객은 찾지만 동네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계속해 고르죠. 관광객 10명에게 제주 한정 메뉴를 파는 것보다 동네 사람들이 일주일에 5일 정도 들른다면 훨씬 좋은 거 아닌가요?”
처음 제주 진출을 했을 때는 바쁘고 치열한 서울을 벗어나 여유로운 제주에서 지금껏 살아온 틀을 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평화로운 제주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메쉬커피의 경계를 확장할 계획을 세웠었다. 지금도 그런가를 다시 물었다.
서울에서는 그 곳의 방식으로, 제주는 또 제주 스타일에 맞춰서. 고집스럽게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에 목표를 맞추는 따로 또 같이의 메쉬의 이야기가 소복하다.
서울의 메쉬가 동네 복덕방 같은 느낌이라면, 제주 메쉬는 폭낭처럼 탑동의 어느 작은 골목에서 역할을 한다. 메쉬의 커피 철학과 닮았다.
메쉬의 커피는 재료가 잘 드러나는 새로운 취향과 자유롭고 다이나믹한 서울과 평화로운 제주의 분위기를 담아낸다. 일상적인 커피에 다시 즐거울 것, 즐길 것-신선하고 깔끔하며, 산뜻하고 밝은 뉘앙스의 산미와 자연스러운 단맛-을 얹는다. 무겁지 않으니 허용되고, 굳이 특별할 필요가 없어 편안해진다.
q제주 탑동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요?
탑동에 있는 메쉬커피까지 오셨으면 핸드브루 커피를 꼭 드셨으면 좋겠어요. 제주의 물로 내린 섬세함이 잘 표현되는 커피가 제 기준에서 최고였거든요. 커피가 맛있으려면 음식과 마찬가지로 일단 물이 좋아야해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물이 있는 곳, 커피의 수도라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커피를 마시는 느낌과 비슷해요. 핸드브루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마시고 원도심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며 탑동 여기저기를 걸어다니시길 추천합니다. 흑돼지, 회, 고기국수 그리고 뻬어난 자연, 제주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지만 탑동 원도심은 코앞의 바다와 멀리 보이는 한라산, 오랜 역사가 살아있는 삶의 터전과 문화 유산들, 새로운 실험까지 다양한 문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라 원석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대중 교통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제주에서 도보 여행자가 걸어서 다닐만한 곳이기도 하고요.
김영하 작가의 <단 한번의 삶>에 나온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의 의미를 메쉬에서 찾았다. 이런 이웃이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