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녀로 살고, 그렇게 해녀가 됐다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현을생 개인전 <나의 어머니, 제주해녀>

by 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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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이 세상을 다녀가는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언젠가는 그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마저 사라진다. 그 그림자와 이미지만 남아 구름처럼 흘러간다. 견고한 사각형에 갇혀 살 일이 아니고 오각형으로서 자유자재의 구멍을 뚫어놓고 살 일이다.
#한승원 #이 세상을 다녀간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_중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아버지로 잘 알려지기도 한 한승원 작가는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목선(木船)>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현재까지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향 바다를 배경으로 여순사건과 6․25전쟁, 군부정권, 5․18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비극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갯가 사람들의 삶을 다루어왔다. 한강 작가의 글 수업이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의 소설에서 비롯됐음을 가늠할 수 있는 장치들은 사실 많다. 그것이 한강 작가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어서 큰 아들까지 세자녀 중 두 명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문인 가족이란 프레임에서 접근하면 안될 것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 맞춰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승원 작가는 “소감을 제대로 들으려면 잘못 찾아왔다. 나는 껍질이다. 알맹이를 찾아가야 제대로 이야기를 듣는다”며 “사실주의 소설을 쓸 때…지금 그 강이의 문체가, 문장이 ‘아주 딱 알맞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그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연륜과 경험, 시선에서 우러나는 글 맛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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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아가는 것과 늙어가는 것에 대하여


한승원 작가의 글 중에 ‘낡아가는’ 것과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마침 우연처럼 주변의 누군가는 내가 종종 그 구분을 하고 의미를 찾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싶은 통찰을 글로 옮기는 작가의 굳은살 가득한 텍스트와 견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 바다와 그 안에서 삶을 가꾸고 채우는 해녀들을 말하며 두 단어를 구분하곤 했다.

“그래서 그게 뭐…”하고 묻는다면 그냥 그 안에서 깨닫는 것들의 차이라고 말할 뿐이다. 적어도 해녀를 얘기할 때는 그렇다.

한승원 작가가 이전에 썼던 글까지 소환하면서 그러니 낡아가는 것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활력을 줘야 한다고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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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을생 작가의 <나의 어머니, 제주해녀>전을 품고 나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전시는 올해 일흔이라는 나이를 기념해 기획됐다고 했다. 제주 섬이라는 생활 터전에서 삶을 일구고 지키며 살아온 것들을 흑백사진으로 기록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주해녀를 담은 수 천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작업해 54점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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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절과 시절,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


1980․90년대 제주해녀의 일상을 담은 흑백 앵글 속에는 낯선 듯 하면서도 낯익은 것들이 가만히 눈을 맞춘다.

고무옷이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초지만 그것도 일본까지 바깥물질을 다녀온 몇몇의 특권 같은 거였다. 전시장에는 물소중이를 입은 모습과 고무옷 작업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시대교체를 연출한다.

그 안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은 ‘공동체’의 의미다. 물질을 나갈 때도, 마치고 돌아와서도 흩어지지 않고 모여 그들의 삶을 서로 위로하고 응원한다.

공무원으로, 그리고 한창 일을 할 20․30대 무렵 찍은 사진들은 다부지거나 치열하거나 억척스러운 그 것보다는 오히려 담백하고 현실적이다.

구덕에 챙겨온 지들켜로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둘 이상 모이면 손을 보태거나 편하게 웃는다.

오랜 잠수 작업에서 얻은 두통이며 이런저런 통증을 뇌선이라고 부르는 중독성 강한 진통제로 누르는 모습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물질을 할 때면 반나절 이상 주린 배로 기다려야 했던 아기를 위해 고단한 몸을 움직여 단단해진 가슴을 문지르고 젖을 물리는 모습만큼 숭고한 장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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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그랬던, 덤덤한 흑백 기록


그렇게 해녀로 살고, 그렇게 해녀가 된다. 그 때는 그랬었다.

그래서 힘들고 고단했었냐고 한다면 한승원 작가가 그랬듯 자유자재의 구멍을 뚫어놓고 바람처럼 길을 내고 파도를 타며 그렇게 살았다.

그 삶을 배우며 사진을 찍었던 작가는 전시 소개글에 “바다와 물을 오가며 그들만의 울음과 혼을 가슴 속에 묻었던 위대한 제주해녀들의 정신에는 '은퇴'란 단어가 없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 말이 의미심장하다.

공직을 마치고 이제 10년이다. 일찍 가장이 돼 동생들을 키우면서 매일 바다에 몸을 던졌던 해녀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했음을 안다. 그 시절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았던 것들에 사각 프레임을 맞추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이번까지 여섯 번의 개인전 중 이번까지 네 번이 제주 여성의 삶이다.

앞서 1987년과 1989년, 1992년 제주여인 시리즈를 주제로 3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여성이 본 여성, 딸 그리고 후배의 시선으로 본 어머니(할머니)와 선배의 모습과 그들에 대한 애정, 관심 같은 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들린다. 같은 마음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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