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서귀포 관광극장 철거에 부쳐
몇 번이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쓴다.
어제오늘 SNS와 지역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서귀포 관광 극장에 대한 얘기다.
지역의 문화예술사(史)를 상징하는 공간을 또 잃는다는 아픔과 충격이 지역사회를 흔들고 있다. 이전 경험의 트라우마가 트리거가 됐음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 무언가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다. 일종의 반복 오류에서 오는 아쉬움을 기억하기 위해 일단 정리해 보기로 한다.
미국의 철학자 수잔 랭거(Susanne K. Langer.사진)는 자신의 책 <감정과 형식>에서 건축을 ‘특정 장소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여 인간과 환경을 연결하는 행위이며, 장소의 의미를 공간적으로 구현하는 중요한 역할’로 해석했다.
쉽게 풀자면 건축은 그것을 만들어낸 문화의 세계관, 가치,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집단 사회의 문화를 표현하는 상징적 예술이라고 풀이했다.
건축에서 장소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장소의 정체성이란 속성에 가깝다. 건축은 총체적인 환경이 가시화 될 때 비로서 그 존재가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물이 처한 현재 상태보다 장소가 갖는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을 통해 건축을 이해하며, 맥락을 읽음으로써 부여된 질서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장소 자산이자 경관 요소로 건축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단적 공감대(추억과 경험에서 비롯된)와 더불어 지금은 퇴색되고 있는 상징성을 지키는 일은 도시라는 큰 틀을 지탱하는 작업과도 맞물린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의 장소성은 그 건물이 위치한 물리적 환경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활동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형성되는 특성이다. 역사성은 건물이 특정 시대를 거치면서 지니게 된 시간적 의미와 흔적이며, 문화성은 건물이 특정 문화권의 가치, 관습, 미학 등 그 사회의 문화를 담고 있는 정도를 말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건물의 고유 가치를 형성한다.
건물이 지닌 역사성과 문화성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찾기 어렵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단절과 상실이라는 상처는 의미 부여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흉터로 남는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키는가가 도시 경쟁력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부분이 된다.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되면서 제주도도 제주 지역에 퍼져있는 근대건축물을 조사했다. 2003년 제주도에서 발간한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지역 근대문화유산은 총 214곳, 그 중 101곳이 건조물이다. 관청이나 업무 시설을 비롯해 종교, 상․공업, 의료, 주거시설 등 저마다의 쓰임새로 시대를 뒷받침했다.
그 이후에도 근대문화유산을 추가로 지정했다는 보도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보다 더 반향이 컸던 것은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등록문화재 제도 이전인 1995년 8월 제주대학교는 아라캠퍼스 이전 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노후화된 옛 제주대 본관 건물을 철거한다.
용담 캠퍼스 본관 신축은 국립대학 승격 첫해인 1970년 핵심사업으로 추진됐다. 시기적으로도 상징성이 컸지만 무엇보다 건축가 고(故) 김중업(1922~1988)의 대표 작품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미도 묵직했다. 이런 의미들과 달리 건물은 지어진 지 30년도 안 돼 철거됐다.
프랑스 건축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유일한 한국 제자였던 김중업은 스승의 기능주의적 규칙과 방법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섬이라는 제주의 지역적 조건을 배려한 건물을 세상에 내놨다.
네모반듯했던 당시 건축물들과 달리 유연한 선을 살린 건축물은 저절로 랜드마크가 됐지만 제주대가 1980년 2월 아라캠퍼스로 옮겨간 뒤에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서 노후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제주 안팎 건축계를 중심으로 보존 운동이 전개되며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금처럼 온라인을 통한 전파 속도가 빨랐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제주대는 구조안전진단을 근거로 철거에 들어갔다. 1995년 8월의 일이었다. 어딘지 익숙한 흐름이다.
2012년에는 행정도 모르는 사이 구제주의 상징이던 옛 제주시청사가 사라졌다.
옛 제주시청사는 격변의 시기인 1950년대에 지어졌다. 1955년 9월 제주읍이 시로 승격되자 1958년 6월 관덕정 인근 2549㎡부지를 골라 연 면적 1707㎡2층 규모로 지었다.
박진후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시멘트 벽돌을 사용해 지은, 제주에서 몇 안 되는 근대건축물이었다. 1980년 3월 옛 도청사(현 시청)로 옮겨가면서 옛 제주시청사는 개인에게 팔렸다.
제주시는 2011년‘제주목관아 보존·관리 및 활용계획’ 연구에서 시대와 사회를 대표하고 시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공공 건축물이니만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건축학계에서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등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을 펴왔지만 정작 행정은 철거가 시작된 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에 거주 중인 건물주는 관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제주시에 매각 의사를 물었지만, 제주시는 사유 재산 등의 이유로 근대문화유산 목록에 오르지 못한 옛 제주시청사를 매입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먼저 철거 논란을 불렀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도 2013년 3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코레타의 유작(1931∼2011)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는 세계 건축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가설건축물로 지어져 존치 기한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행정 당국이 철거에 나섰다.
43억원을 투입해 2009년 3월, 1279㎡의 2층 규모로 지어진 '카사 델 아구아'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건축 거장의 유작이자 아시아에선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내부까지 공개된 건축물로 건축계를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었다.
다만 중문 컨벤션센터 옆에 짓는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 용도로 만들어진 가설 건축물로 유지기한이 2011년 6월 말로 끝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행정 당국은 카사 델 아구아를 그대로 둘 경우 이번 일이 선례가 돼 앞으로 변칙적, 편법적 건축물에 대해 단속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들어 철거 입장을 고수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에 따라 중문관광단지 해안선 100m 이내에 영구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건축계와 문화예술계 등은 세계적 건축가의 유작을 단순히 불법건축물로 여기고 철거하는 것은 문화유산의 파괴행위라며 존치를 촉구하면서 논란이 컸었다.
2014년에는 제주시 원도심 산지천 인근 고씨 주택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49년 건축된 이 집은 제주의 전통적인 주택 형태를 띠면서도 일본의 건축 기술이 접목된 과도기적 건축물로, 적산가옥과는 다른 ‘한·일 절충’가옥이다.
하지만 고씨 주택은 2014년 원도심 일부를 재정비하는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 과정에서 철거될 뻔했다. 낙후한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이 일대 건물을 매입해 헐고 공원과 광장 등을 조성하는 사업에 휩쓸려 철거되기 직전 주민과 시민단체가 제주도에 철거 반대 의견을 전달하고, 원도심 투어를 진행하면서 보존 운동을 해 지켰다.
2018년에는 1944년 제주극장이란 이름으로 ‘제주 최초’를 장식했던 문화공간이자 영화관인 현대극장이 철거됐다.
1940년대 초 가설극장으로 처음 문을 열었던 당시에는 ‘조일구락부’일본식 영어 표현의 이름을 쓰고 가마니를 깔고 공연을 관람했을 만큼 허술했던 공간은 유랑극단과 악극단에 이어 변사의 설명이 곁들여진 무성영화 시대를 거쳐 1948년 10월 좌석 375석, 입석 100석 등 모두 475석 규모의 ‘제주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2월 이후부터는 영화관으로만 활용되다 1970년대에 이르러 '현대극장' 간판을 달았다.
제주시 원도심(성내) 활성화 운동 등과 함께 현대극장의 역사성이 높이 평가받으면서 제주시가 이를 매입하려고 했었지만, 금액 차이로 성사되지 못했다. 문화·예술 기업도 관심을 가졌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대극장은 2017년 제주도가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았다. 건물주는 이 이유를 들어 제주시에 철거 통보를 했다.
# 이미 알았던 노후 징후...알려졌던 철거 소식
이번 서귀포 관광극장(옛 서귀포 아카데미극장)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지킬 기회를 여러 번 놓친 것이 뼈아프다.
서귀포관광극장은 1963년 서귀읍 최초의 극장으로 문을 열었고, 지역 주민들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사랑받았지만 1999년 폐업 이후 기억에서 잊혀졌었다.
서귀포 관광극장이 수면 위에 올라 주목받았던 일 중 지난 2013년 서귀포시가 문화예술관광도시를 표방하며 추진 중인 '기쁨두배 프로젝트'가 있다.
낙후된 유휴시설을 공공미술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이 곳을 행복 프로젝트 ‘유토피아로’의 거점이자 아트플랫폼으로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10여넌 넘게 방치됐던 사실을 간과하며 좌초 위기를 맞는다. 2009년 지붕 일부가 무너졌을 만큼 노후된 것도 모자라 기본적인 수도·전기 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오래된 건물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급하게 보수 작업을 진행하며 버텼다. 2023년 12월 서귀포시가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며 활성화를 시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서귀포 관광극장이 철거될지 모른다는 얘기는 이미 올 상반기 지역사회에 전파됐었다.
붕괴 위험이 계속 제기되던 가운데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관광극장 건물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용역에서 최하위 등급인 E등급 판정을 받았다.
철거 결정에 앞서 지난 6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 단체를 대상으로 현장 설명회를 개최했고, 지난 9월 9일에는 정방동주민센터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어 정밀안전진단 결과와 철거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2025년 9월 중으로 안전 확보를 위해 야외공연장의 벽체를 먼저 철거하고, 본 건물은 2026년에 철거한다는 계획도 공개됐다.
그래서 아프다. 옛 제주대 본관과 카사 델 아구아도 원래 설계도를 이용해 복원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 장소를 떠나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던져진다.
옛 제주시청사나 현대극장은 그런 시도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하나는 주차장으로 다른 하나는 다른 쓸모를 기다리고 있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 곳에서 나온 파편들을 모아 다시 쌓자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우연처럼 보이는 같은 전철을 반복하는 오류를 우리는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적어도, 최소한 같은 말이 계속 쏟라져 나오는 것이 힘들 정도다.
이대로라면 언젠가처럼 책임을 물으며 탄식하는 ‘나’를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번만은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방법을 제대로, 온전히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