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맺힌 것이 많아 다 어찌 하누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문창배 작가 개인전 ‘섬、 움트다’

by 고미

#그림이 주는 힘


가끔 그림을 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언젠가 강요배 화백의 ‘코발트’를 보다가 주체 못할 떨림과 손끝까지 아렸던 일이 있었다. 주저앉듯 한참을 작품 앞을 떠나지 못하고 몸살이 났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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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 : ‘경산 코발트광산 사건’은 지난 1950년 6·25 전쟁 기간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을 말한다. 10월 항쟁 이후 코발트광산에서 일어난 학살로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10·19 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과 함께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코발트광산’은 코발트라는 블루 빛깔의 광물 때문에 붙여졌다. 학살, 희생과 연계되는 ‘코발트’는 저항, 진실, 아픔 등을 환기한다. 광불이 발하는 우울하면서도 깊은 침잠의 이미지가 전시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이응노 화백의 동방견문록 시리즈는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부터 마냥 설레서 발바닥이 둥둥 떠 있는 기분에 취하곤 한다. 마치 작가의 눈을 통해 자유롭지 못했던 삶의 아쉬움과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을 공유한 때문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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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전시장에 가는 이유


한동안 전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문화부 기자일 때는 일이라고 일부러 다니기도 했다. 문화부가 아닐 때는 마음 누일 곳을 찾아 움직였다.

새로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현실에 휘둘리며 감성이라는 것을 잊어버릴까 싶어 시간을 쪼개보았다.

그것이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혹시 내 눈이, 내 표현이, 내 느낌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까 싶어 조심스러워졌다. 그보다는 솔직히, 바빴다. 그래서 놓친 기회가 얼마나 되는지 이제는 세는 것조차 지칠 정도가 됐다.

그랬던 참이었다.

한 작품을 보고 울컥하고 눈물 먼저 맺혔던 것은.

문창배 작가의 ‘섬. 움트다’에서 만난 ‘맺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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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꽃이란


문창배 작가는 극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하고 있는 제주 출신의 중견작가다.

세상 가장 얇은 붓으로 점과 선을 쌓고 올려 사진 수준의 생생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메스를 이용해 긁어내는 방식으로 파도와 흩뿌려지는 바닷물의 생생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구멍 숭숭 뚫린, 어느 것 하나같은 것이 없는 제주 돌을 모티브로 신화 그 이전까지 파고들기도 했다.

그런 그가 꽃이라니. 우연처럼 작업실에서 본 적은 있지만 꽃을 밖으로 꺼낸 적이 없던 작가가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연분홍 꽃잎을 내민 순간,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살구꽃이라고 했다. 매화가 눈을 뚫고 존재감을 알리고 난 뒤를 잇는. 화려한 벚꽃의 군무에 밀리기까지 치열하게 움트고 잠깐 눈맞춤에 만족하는 그들을 앞으로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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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그리고 ‘나’의 이야기


이전 낙엽이 시간의 흐름을 대신하는 장치로 사용됐다면 이번 살구꽃은 어딘지 단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마치‘나’를 대신하는 것처럼 흔들림 없이 꼿꼿하다.

그 색감에, 봄까지 탔으니 교태를 부려도 괜찮을 것 같은 시공간에서 ‘맺음’을 살피는 시선이 느껴진다. 순간 가볍게 부풀어 올라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은근한 분홍의 온도가 처연하게 식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하나. 꽃잎이 떨어져 이제 열매를 향해가는 시간 빗방울까지 엉킨 어느 순간은, 그만 아팠다.

작가로, 동 시대를 사는 가장이자 어른으로 힘든 일들이 있었고, 넘어서 다시 서기까지의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3년만에 제주에서 여는 개인전을 더 신경 써 봤어야 했다. 그래서 ‘왜’를 한 번 더 물었어야 했다.

2년의 시간을 들여 작업한 작품들에서 이전 섬이라 부르던 것들의 존재감은 어딘지 희석됐고 그 자리에 새로운 무엇인가가 움튼다. ‘다시’의 메시지가 그렇게 맺혀있어서 아마 그래서 아프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다음 전시가 언제인지 묻지 못했지만, 그 다음이 있다면 꼭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고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풀려는 맺힘인지, 새로운 무언가를 위한 맺힘인지 직접 느끼고 해석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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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문창배 작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학과와 동대학원 서양화학과 졸업하고 서울, 경기, 파리, 중국 등에서 32회의 개인전, 400여 회의 초대전 및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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