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물방울의 방‘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물방울을 집착에 가까운 정신적 강박으로 그려왔다. 내 모든 꿈, 고통, 불안의 소멸. 어떻게든 이를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김창열의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작가의 창작 여정을 세밀하게 조명하는 한편, 작품 세계에 내재된 근원적인 미의식을 중심으로 물방울 회화의 전개 과정을 탐색하는 깊고 긴 과정이다.
2016년 9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부터 9년여. 공간과 작품을 아껴왔던 터라 많이 망설였지만 못가봤다.
대신 회고전에 다 넣지 못했던 남은 조각들, 한국전쟁 당시 1년 6개월가량 제주에 머문 인연과 평면 회화에 이어 남달리 공을 들였던 입체 작업물과 아카이빙 영상을 담은 제주 전시를 택했다.
덕분에 물방울을 평면에서 떼어내어 투명한 덩어리로 굳혀 놓은 입체 작업 앞에 오래 멈춰 섰다. 조용히 반복되던 그의 작업 기록 영상은 그 시간을 더 길게 만들었다.
미술관 개관을 전후해 있었던 일은 일단 내려둔다.
대신 뭉클한 표정의 노 화백이 개관 인터뷰 때 정제된, 문학적 용어로 한껏 다스린 표현을 쓰셨던 것을 기억한다. 쉽지 않았지만 ‘제주‘하고 툭 떨어뜨린 흔적이 때마다 좋은 위로와 응원이 됐다.
잠깐이라도 쉬고 싶을 때, 코로나팬데믹으로 발이 묶였을 때도 그 곳에서 한참 서성였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도 같은, 비우고 또 비워두는 의식의 파장이 공명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에고'의 신장을 바라고 있으나 나는 에고의 소멸을 지향하며 그 표현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투영함, 고결함 같은 것으로 느껴졌던 물방울이 또르르 돌고 돌아 첫 기획전 제목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김창열 화백은 상흔 세대다. 태어날 때는 나라가 없었고 청년 시절에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꿈을 좇아 찾아간 이국땅에서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해야 했다.
그렇게 다듬어진 물방울은 그저 투명하고 유려한 곡선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을 통과하며 목격한 수많은 죽음, 비통하고 처연했던 현장들, 그 모든 것 앞에서 그는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체류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제주도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작품세계에 일평생 영향을 미쳤다고도 했다.
그는 "제주도는 (내가 존경하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있던 곳이자 이중섭 화백을 여러 번 뵌 곳이다. 프랑스에서 45년을 살았지만 그때의 감동이 계속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계용묵 선생과 교류하며 시도 썼다. 문학동인지 <흑산호>로 데뷔한 글쟁이의 ‘동백꽃’이 그만 툭툭 떨어진다.
그렇게 축적된 삶의 층위는 물방울이라는 단일한 형식 안에서, 회화·조각·문학으로 흩어져 나타났다.
물방울은 고요하다.
멈춰 있으나 흐르고, 비어 있으며, 땅으로 스며들 듯 얇은 침묵을 품는다. '삶의 함축'이란 의미에서 주름살 가득한 얼굴만큼 또렷한 시는 없다. 고해성사를 하듯 토해낸 것들은 무수히 겹치고 포개지다 다시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그 흐름 안에서 사랑하는 것, 해야했던 것들을 놓지 않은 영혼이 빛난다.
몇 번인가 숨을 고르고, 그 침묵의 궤적을 쫓아 더디게 발걸음을 옮기다 전시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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