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효능감, 그리고 사람, 초록손

지역력 탐구생활 : 로컬 창업, 로컬 생태계를 만드는 힘

by 고미

#나의 초록력을 고백하다


살다보면 뜻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게 더 많다

특히 내 경우는 온전히 키운 식물이 손에 꼽을 정도다. 물을 너무 잘 챙겨줬던 동백나무는 나무 의사들의 손을 거쳐 안정된 공간에서 숨을 돌리고 있다.

산세베리아과인 식물이라 번식력도 좋고 물이 적어도 오래 견디는 편이라는, NASA 추천하는 공기정화 식물인 스투키 마저 옆을 내주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늘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이 부러웠다. #안녕_화분 #또르르


# 로컬이라는 숲을 보다


로컬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어떤 동네에는 이상하게도 새로운 가게가 금세 자리를 잡는다.

카페가 생기면 옆에 작은 공방이 들어오고, 그 옆에 지역 농산물을 쓰는 식당이 생긴다.

사람들이 모이고, 돈이 돌고, 이야기들이 쌓인다.


어떤 지역은 수억을 들여 공간을 만들고, 팝업스토어를 열고, 홍보 예산을 쏟아부어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채로 시간이 지나간다. 개업 리본이 아직 멀쩡한 가게들까지 하나둘 문을 닫고, 화려했던 공간은 전시용 쇼룸이 되어버린다.


차이는 분명하다.

자본의 크기, 행정의 스케일, 아니면 입지 편차 같은 것이 작동했다는 빤한 이야기 말고 애써 보지 않는 다른 것들에서 만들어진 차이다.


전통적 정책은 인풋(input, 투입) 중심이다. 공간을 제공한다거나 임대료, 제품 개발비, 홍보비 같은 것을 지원해 특정 기간 내 결과 달성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창업 생태계는, 특히 로컬은 아웃컴(outcome, 지속성)으로 평가된다.

정착률과 협업, 매출 유지, 재창업, 지역 고용 증가 같은 것을 오래 공들여 살핀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보이지 않는 자본’, 즉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숲의 생명체들이 적당한 거리와 공생을 선택하는 것과 닮았다. 이 것을 이해하지 않은, 숫자 실적에 집중한 기준들이 로컬이라는 숲의 자생력을 무너뜨리는 걸 자주 본다.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동백이’라 불렀던 나무는 볕 잘 드는 곳을 골라 햇빛 마사지도 시켜줬고 비실비실할 무렵에는 영양제도 챙겼다. 그것이 화를 불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영양제 처방 때문에 정작 나무가 물을 먹지 않아 일종의 속마름 현상이 나타났다. 물을 줬는데도 제대로 먹지 못해 말라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두면 알아서도 잘 큰다는 스투키 역시 그 말을 너무 믿고 뒀던 탓에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건조됐다.

누구나 한 번은 해봤다는 베란다 텃밭 채소 키우기도 해봤다. 몇 번 알찬 수확을 거두기는 했지만 토마토가 웃자라 가는 팔다리로 정글(?)을 이루지 않으면 서로 머리를 내밀지 못할 정도의 촘촘히 심은 탓에 싹만 틔웠던 배추도 있었다.

# 토양을 일구는 일, 돌보는 마음


이런 과정들에서 분명 배운 것이 있다.

숲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나무의 개수가 아니라, 나무가 살아남는 토양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토양을 돌보는 사람의 존재다.


그들을 이 구역의 ‘초록손(Green Thumb)’이라 지칭해본다.

‘초록손’은 나무를 잘 키우는 사람에게 붙이는 별명이다. 똑같은 씨앗을 줘도 어떤 사람 손에서는 싹이 트고, 어떤 사람 손에서는 건강한 씨앗도 맥을 못춘다.


로컬 창업도 그렇다.

같은 예산, 같은 공간, 같은 메뉴얼을 줘도 어떤 지역에서는 사업과 무관하게 살아남고, 어떤 지역에서는 사업 종료와 함께 사라진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창업가만을 주목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의 존재를 간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창업자를 연결해주고, 갈등을 조율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실패해도 떠나지 않게 붙잡아 주는 사람.


말하자면 지역 생태계의 정원사, 숲의 뿌리를 이어주는 균사 같은 ‘초록손’들이다.

숲을 만들 때는 수종을 다양하게 하고 많은 묘목을 들여오는 것보다 묘목이 살아남는 비율과 적응력을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 숲은 사람이 만든다


창업자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자본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 주고 지역의 손을 연결해 주고 필요한 기술과 파트너를 붙여 주어야 한다.

제도나 조례, 지침 같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정책은 돈을 줬다고 말하지만, 창업자는 누가 나를 기억해 줬는가로 성장한다.


보조금이 많다고 숲이 되는 건 아니다.

너무 많은 물은 뿌리를 썩게 하고, 너무 적은 물은 주변 생태계와 경쟁을 만든다.

지역마다 필요한 지원은 다르다.

어떤 곳은 공간이 필요하고, 어떤 곳은 브랜딩이 필요하고. 어떤 곳은 시장 연결이 필요하고, 어떤 곳은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초록손은 이 차이를 안다.

그래서 행정이나 정책이 놓치는 결을 메운다.

숲에 같은 물을 줘도 같은 속도로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균질한 지원이 아니라, 지역의 결을 읽는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


숲은 매뉴얼로 자라지 않는다. 사람의 손길과 관심에서 자란다. 창업씬에서 종종 쓰는 단어들도 있다. 정착률, 매출, 일자리, 협업, 브랜드는 숲의 그늘, 수분, 바람, 연결 역할을 하는 동물이나 곤충이다.

창업도 그렇다. 균질한 지원이 아닌 맞춤형 지원이 적재적소에서 작동해야 한다. 초록손은 지역별 ‘맞춤형 솔루션’을 만든다.

같은 액셀러레이팅이 아니라 Localization, Go-to-Market, Growth Hacking이 지역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 선순환, 살고 싶은 이유

자본의 지역 선순환은 숲의 ‘자연 번식’과 같다

숲이 완성된 곳에는 어느 순간 사람이 더 심지 않아도 나무가 늘어난다.

바람이 씨앗을 옮기고 새가 열매를 떨어뜨리고 비가 흙을 적시며 모자란 물을 채워준다.


로컬 생태계도 같은 순간이 온다.

지역 가게에서 번 돈이 다시 지역 인건비로, 지역 농산물로, 지역 협업으로 돌아가면 자본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대신 살고 싶은 이유가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정책이 없어도 계속 살아남는다. 숲이 스스로 숲을 만드는 단계니까.


공간은 지을 수 있고, 사업은 만들 수 있고, 홍보는 살 수 있지만, 사람을 키우는 일은 돈으로 되지 않는다. 사업이 끝나도 창업가들이 떠나지 않는 지역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남아있었다.


로컬의 미래는 예산의 크기도, 도시의 스케일도, 화려한 건물도 아니다.

그 지역의 창업자들을 기억하고, 붙잡고, 연결하고, 실패해도 품어주는 ‘초록손’에서 시작된다.


로컬을 기반으로한 벤처 스튜디오 모델 정착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특정 수종의 숲이나 잘 클 나무를 말하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햇볕과 물, 양분을 나누고 다른 종의 그늘이 되거나 지지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자양분을 만들어낼 장치에 집중했다.

오랜 고민과 현장 고민이 어우러지며 첫 모임 같지 않은 캐미를 만들어냈다. 그만 가슴이 뜨거워진다.


로컬 벤처 생태계의 핵심 성공요인은 자본 투입이 아니라, 창업자의 정착률을 높이고 지역 자본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초록손’—즉 커뮤니티 빌더의 존재다. 그들이 있을 때 비로소 지역은 정책 없이도 스스로 확장되는 숲이 된다.



정책은 숲 전체를 설계하려 하지 말고, 초록손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찾고, 믿고, 지켜주어야 한다.

초록손이 살아 있는 지역은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반드시 숲이 된다.

정책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숲. 그게 로컬이 가진 가장 오래된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