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낡은 뒷골목에 마음을 뺏길까

지역력탐구생활 : 구마 겐고 <도쿄 토크>와 삶권

by 고미

[‘작은‘은 낭만이 아니다] [회복 탄력성] [면 위를 걷다] [구마 겐고_도쿄 토크]

책을 읽으며 몇번인가 숨을 고르고 창밖과 주위를 살폈다.

문장이 어렵거나 복잡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다기보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옆에서 편하게 듣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보다는 잘 들은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대담 형식의 인터뷰라는 구조 덕분에 구마 겐고는 자신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보고, 실패하고, 망설이고, 여전히 고민 중인 생각들을 굳이 정리하지 않은 채 내어놓는다.

그 솔직함 덕분에 이 책은 건축 이론서라기보다 한 사람의 사유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책으로 묶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말들이 흩어지지 않고 남았다는 사실이.

구마의 이야기는 늘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도시는 왜 변하지 않는가.

인간도 그렇지만, 도시는 순조로울 때 변하지 않는다.

관성에 젖어 있고, 법과 소유, 제도와 비용이라는 구조에 단단히 묶여 있다.

조금만 바꾸려 해도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도시는 늘 버텨 왔고, 대개는 끔찍한 일을 겪은 뒤에야 겨우 변한다.


20세기 도쿄는 그런 도시였다.

초고층 사옥과 타워 맨션, 효율과 위생, 소유와 안정의 논리로 구축된 도시.

성장은 있었지만, 그 성장의 이면에서 관계는 사라졌고도시는 점점 획일화됐다.


구마는 이 시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그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동일본 대지진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도시는 더 이상 ‘계속 커질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말한다.

‘작은 도쿄에 미래가 있다’


이 말은 어떤 선언 같은 것이 아니라 오래 도시를 바라본 사람이 혼잣말처럼 내뱉은, 결론에 가깝다.

그 결론은 하나의 건물이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을 요구한다.


구마가 얘기에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점’, 그리고 ‘면’이었다.

상징적인 랜드마크, 사진이 되는 건축은 점이다.

하지만 도시는 점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멈추고, 머무는 생활의 연속이 쌓여서 면이 된다.

그는 “점만으로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미학적 주장이라기보다 경험에서 나온 진단처럼 들린다.

점-선-면의 확장은 로컬 영역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앵커의 기능이나 역할, 지금은 그보다 해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면’을 이루는 새로운 관점의 삶권이 지역의 호흡에 맞게 다스려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맞물리는 것이 흥미로웠다.

구마의 관심은, 내 생각이지만 골목에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존재감이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전 인터뷰나 관련 자료들을 떠올려보면 그의 말 속에는 도쿄의 裏通り(뒷골목), 路地(로지), 요코초 같은 공간들이 꾸준히 반복되어 등장한다.


그는 그런 장소들을 ‘마음이 편해지는 스케일’,

‘주민의 리빙 같은 공간’, ‘공공과 사유가 자연스럽게 얽히는 도시의 최소 단위’라고 불러왔다.

특히 도쿄의 뒷골목에 대해서는 보호해야 할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더 넓혀야 할 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도쿄 토크』에서 그가 해석한 ‘점이 아닌 면’이라는 표현을 읽으며, 특정한 형태로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사람의 생활과 감각이 겹겹이 쌓여가는 공간을 떠올렸다.


요코초, 판자집, 목조 상점가, 1층 공간. 이 공간들은 대체로 세련되지 않고, 어디 하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구마는 그 서투름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엉망진창이다’,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서투름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완성도를 조금 낮추고, 질서를 느슨하게 풀고,

잡음과 불균형을 남겨두는 태도에서 틈새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사람이 들어올 자리, 예상하지 못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폐품의 힘이다.

구마가 말하는 골목과 요코초, 판자집을 떠올리면 새 재료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개 오래된 것들이다.

한때는 쓰임을 다했을 법한 목재, 긁히고 휘어진 부재,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자재들이 쓸모없음 또는 쓸데없음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는 이런 폐품을 ‘어쩔 수 없이 남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선택된 재료로 다룬다.

폐품에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은 공간을 단숨에 생활 쪽으로 끌어당긴다.

완벽하게 마감된 새 재료보다 폐품이 훨씬 빠르게 사람의 몸과 감각을 받아들이는 이유다.

폐품은 서투름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서투름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폐품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고, 언제든 고쳐지고, 덧대어지고, 다시 쓰일 수 있다.

구마가 말하는 ‘작은 나무의 시스템’은 이런 폐품의 논리와 닮아 있다.

작고, 균질함 없이, 다음 변화를 미리 허락하는 구조다.


생각해보면 골목이 골목답게 느껴지는 이유도 어쩌면 이 폐품의 밀도 때문일지 모른다.

새것만으로 채워진 골목은 어딘가 전시장 같고,

조용한 골목은 영 골목 같지 않다.

긁히고, 덜 맞고, 조금은 엉성한 것들이 남아 있을 때 비로소 골목은 살아 있는 표정을 갖는다.


이 서투름은 ‘작은 나무의 시스템’이라는 말로 다시 한 번 분명해진다.

구마는 일본 도시의 원형을 가늘고 짧은 소경목으로 이루어진 목조 구조에서 찾는다.

불균질하고 유연한 구조,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 도시의 특성, 목조의 한계(화재 취약성)마저 숨기지 않는다.

도시를 보는 그의 태도는 여기서 더 단단해진다. 에도 시대의 도시는 수차례 불타고도 놀라운 속도로 다시 세워졌다. 완벽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어진 도시였다.


‘작은 도쿄’는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효율과 완결성 대신 회복 가능성과 관계, 작고 느슨하지만, 그래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구마가 ‘지역성’ 대신 ‘지모도(地元)’라는 말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행정구역이 아니라 태어나고, 살고,생활이 실제로 걸려 있는 반경,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거리, 어쩌면 내가 ‘삶권’이라 부르는 공간감과 비슷하다.


지역은 개념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라는 말은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어느해 대전의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서남북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채 단체 버스 창밖으로 “이야—”만 반복하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서투른 태도가 기억을 부르는 단초였다.

이해하려 들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그저 낯선 얼굴로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얘기나 평가를 각인한채 살폈다면 이렇게 오래 기억할 리가 없다.


그날 만난 공간들은 하나같이 완성된 사례가 아니었다.

각각 다른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과정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점이다.

아직 손대지 못한 공간을 두고“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태도, 잘 꾸며진 결과보다

지금의 고민을 그대로 내어놓는 시간이 다음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골목’은 묘한 끌림이 있다.

차에 우선순위를 준 다듬어진 것들은 대체로 금방 사라지고,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도시와 농촌 사이, 사람이 살던—혹은 아직 사는—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길들에서, 나는 오래 걸어온 편이다. 올레에서 체득한 감각들이 알게 모르게 부딪히며, 골목은 제주의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중요한 것은 그 소리가 한 번에 정리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잘 쌓인 합창도, 처음부터 완성된 교향곡도 아니다.

처음엔 잘 안 보이던 것들이 어느 날 누군가의 손에 들춰지고, 그때야 뒤늦게 “역시 좋네, 좋구나.”가 따라붙는다.


살던 곳, 사는 것에 대한 미련이 곡선을 지키는 곳도 본다.

덧대고 고치고 다시 쓰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곳도 있다. 그 어색하지 않음이, 오히려 힘이 된다.

새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표정이 거기서 나온다.


『도쿄 토크』에서 읽은 말들은 개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이어졌다.

점이 아니라 면, 완성보다 과정, 서투름이 남아 있는 상태들 안에서 골목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왈그락달그락 소리가 있었고, 누군가는 지쳐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골목 같았다.


“이렇게 좋은 실험을 하고 난 다음, 그 다음은 어떻게?”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혔던 이유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건 성과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왜 이 골목을 움직이려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답은 딱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답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서투른 상태로, 느슨하게, 함께.


책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방향을 남긴다. 그리고 독자를 자기 도시의 ‘골목’으로 데려간다.

점으로 보이던 도시가 어느 순간 면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이미 우리는 그 면 위를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닫게 한다.


‘골목’을 다시 보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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