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 보루, 서점에 가자

지역력 탐구생활 : ‘정주(定住)’할 시간을 주는 일

by 고미

#서점을 지켜라


올해 고단샤의 광고를 처음 봤을 때,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분명 서점입니다.”

그 문장은 시대를 향한 거창한 선언이라기보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어떤 믿음을 확인해주는 조용한 손짓 같았다.

AI 혁명이 일상이 된 지금, 세상은 ‘필요한 것’조차 자동으로 분류해 준다. 가장 빠른 답, 최적의 경로, 요약된 론. 하지만 이 광고는 효율의 언어를 비켜 서서, 아주 느린 장소 하나를 가리킨다. 서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


다시 읽어볼수록, ‘서점에 가자’는 메시지는 단순한 독서 캠페인이 아니었다. 나는 이 문장이 ‘지역 소멸’이라는 우리 시대의 가장 서늘한 키워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붕괴는 대개 경제지표가 아니라 일상에서 먼저 온다. 동네의 서점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버스 노선이 사라지고, 병원이 사라지고—마지막으로 ‘마을’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

서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가게 하나가 문을 닫는 일이 아니다. 그 지역이 문화적 호흡을 멈추고, 사람이 머물러야 할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경고다.


#‘작동하지 않는’문제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그 미래를 겪고 있다. 인구 감소는 도시 구조를 재편했고, 늘어가는 빈집(공가)들은 마을이 소멸의 문턱을 넘었음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숫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서 보면 그것은 ‘작동하지 않게 되는’ 문제다. 인구가 줄면 이동이 줄고, 이동이 줄면 관계가 끊기며, 관계가 끊긴 곳에서 소비는 증발한다. 이 악순환이 지역 소멸의 가장 잔인한 문법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엉뚱한 처방부터 꺼내 들게 된다.

예상대로 축제를 열고, 유명인을 부르고, 관광객을 유치해 순간적인 북적임을 만든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링거 주사일 뿐, 밥이 될 수는 없다. 지역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뜨거운 ‘이벤트’가 아니라 차가운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일상의 뿌리’다.


# 시간을 견디고 나누는 일


오랫동안 지역의 변화를 기록하고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지역을 살린다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결국 누군가가 그곳에 ‘정주(定住)’할 시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정주란 단순히 주소지를 두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고 삶을 나누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은 정주를 위한 가장 상징적인 장치다. 서점은 느리다. 효율도 낮다. 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 덕분에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한다. 머무는 시간은 관계를 낳고, 관계는 반복을 만들며, 그 반복된 일상이 쌓여 비로소 ‘살아도 되는 이유’가 된다.


한 비평가는 글쓰기를 두고 ‘대상을 열정적으로 재서술(re-description)하는 행위’라고 했다. 지역을 살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남이 규정한 ‘관광지’나 ‘소멸 위기 지역’이라는 설명 대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삶을 재서술할 때 지역은 생명력을 얻는다.

빈집을 고쳐 책방을 만들고, 공방을 열고, 부엌을 공유하는 일은 단순한 공간 재생이 아니다.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고, 멈춰버린 일상의 서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 뿌리 깊은 ‘생존의 순환’


지역이 살아남는 데에는, 사실 대단한 비결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세 가지 리듬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관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이동이 아니라 반복적인 이동이 있어야 하고, 프로그램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얼굴이 남는 관계가 싹터야 하며, 소비가 욕망의 해소가 아니라 지역 경제를 돌게 하는 생존의 순환이 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뿌리 내릴 기회’가 필요하다. 주거, 일, 돌봄 같은 기반 위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느슨한 연대가 가능할 때 사람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지역은 그저 버티는 곳이 아니라, 다시 살아보고 싶어지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점에 가자


다시, 서점이라는 비유로 돌아온다.

서점은 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지만, 동시에 회복의 가장 강력한 징후가 되기도 한다. 동네에 서점이 살아 있다는 것은, 그곳에 머물러도 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대화를 나눌 이웃이 있고, 혼자서도 견딜 수 있는 고요함이 있으며, 내일 다시 올 이유가 있다는 증거다.

고단샤 광고가 말하는 ‘서점에 가자’는 문장은, 그래서 내게 이렇게 다시 들린다. “관계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장소로 가자.”

그 시작이 어떤 곳에서는 작고 낡은 동네 서점일 수 있다. 미래를 지키는 일은 그렇게 작고 느린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서점’에 가자.


#다시 뿌리 내릴 #책 #관계 #정주할 시간 #언론인_26년 #모이는 힘 #서점에 가자




- 2026년 1월 1일 일본 최대의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게재한 전면 광고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분명 서점이다.〉

2026년 1월 1일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분명 서점이다.

서점에 오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고, 10,000k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며,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는 대화를 반복한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그 자세 속에서 사람과 사람은 연결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갈등과 분열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시대에,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서점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