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여전히 '그게 뭐냐'고 묻는가

지역력 탐구생활 어업유산 활용 어촌 활력 제고방안과 과제 포럼

by 고미

낯선 공기 속에서 마주한 오래된 질문


몇 년 만에 다시 찾는 도시의 공기는 낯설면서도 오래된 기억 사이로 스며드는 듯했다.

지난 서울 출장 ‘지연’이 남긴 불안감 때문에 서둘러 길을 나섰고, 뜻밖에 일찍 도착한 경북 경산시 대구한의대 삼성캠퍼스는 조용히 펼쳐진 산과 함께 나를 맞았다.

어쩌면 다시 올 일은 없을지도 모를 이곳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잠시 숨을 고른다. 오늘 하루가 어떤 생각을 다시 열어젖힐지, 천천히 마음을 고른다.

KMI가 마련한 어업유산 세션, 어업유산을 활용한 어촌 활력 제고 방안과 과제. 제주해녀의 국가중요어업유산-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세계식량기구 중요농(어)업유산 등재를 지지했던 경험은 등재 이전․이후의 변화, 활용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불렀다. 다양한 사례를 연구하며 기대했던 가능성은 정작 현장에서 크게 꽃피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자리도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분위기는 의외로 단단했고, 오래된 질문에 새롭게 답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면죄부가 된 유산, 박제된 보존의 한계


2015년 제주해녀어업을 시작으로, 이제 우리나라 국가중요어업유산은 16개나 된다. 하지만 누군가 “그중 몇 개나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그게 뭐냐”라는 반문이다. 유산 종목은 계속 쌓이는데, 현실은 묘하게 비어 있는 방향으로 기운다.

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말도 때때로 너무 쉽게 발화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 환경의 변화, 고령화라는 구조적 파도 속에서 오래 축적된 어업은 점점 제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박제해 둘 수도 없고, 예산이라는 얇은 끈에 매달아 보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결국 질문은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생각은 다시 현실로 내려앉아 ‘왜’를 묻고, ‘어떻게’를 묻는다.


‘제주해녀’라는 이름이 짊어진 부채감


자리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제주해녀는 사정이 낫지 않느냐는 말은, 마치 가장 먼저 무너지는 담벼락 아래서 옆집 안부를 묻는 것처럼 위태롭게 들렸다. 제주해녀라는 이름이 다른 어업유산의 부진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쓰이는 순간, 나는 내가 가진 애정의 무게만큼 지독한 부채감을 느꼈다.

제주해녀는 그 수가 줄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젊은 그룹의 진입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사실과 현금성 지원의 한계, 연대 시도, 홍보와 활용 한계 같은 이야기를 살살 풀었다.

‘자생가능성’을 전제로 한 사후 관리 성과지표(KPI)의 재설계와 지역기반가치창업 관점의 접근, 그러니까 전통적인 조업 방식과 전승 시스템을 하나의 가치 있는 생산 방식으로 재인식하고, 그 가치를 시장과 공공 영역에서 정당하게 평가받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접근도 제안했다.

유산은 결과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방식’이다

FAO가 사용하는 ‘어업 시스템(Fishery System)’이라는 개념은 조업 행위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해양 생태 환경, 공동체의 문화와 규범, 그리고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보전해야 할 대상이 ‘시스템’이라면, 정책 역시 개별 장비나 시설 지원을 넘어, 공동체의 규범과 전승 구조를 이해하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더 이어갈 수 있을까


오늘 이어진 논의를 되돌아보면 결론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어업유산의 본질은 기술이나 생태 관리, 공동체 규범처럼 ‘살아 움직이는 체계’ 속에 있다. 등재 이후에는 너무 쉽게 잊히는 그 가치들. ‘보존’이라는 말이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하는 듯하지만, 유산의 본질은 보존이 아니라 지속성, 다시 말해 그 행위 자체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느냐에 있다.

유산은 결과가 아니라 ‘방식’이다. 그 방식을 어떻게 확장하고 활용하느냐가 유산의 미래를 결정한다.

토론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서로 못다 한 말을 이어가다 “다음에 다시 만나 더 이야기하자”로 마무리했다. 아마도 유산에 관한 고민이란 원래 하나의 결론으로 닫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대화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갈 대화의 조각 하나가 첫눈처럼, 조용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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