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력 탐구 생활 : 지역기반창업 마인드셋
‘지역기반’ 창업 마인드셋. 결국은 버티는 힘을 얘기하는, 버텨야 하는 시간이다. 솔직히 "누가 누굴 가르쳐?" 할 수도 있다. 취업이 어려우니, 직장이 ‘나’를 책임지지 않으니 열심히 일한 대가와 하고 싶은 일의 접점을 찾아—그렇게 믿으며—창업을 선택한 이들 앞에 정답은 없다.
이성적인 일과 현실은 오래된 연인들처럼 ’알 것만‘ 같다. 참 묘한 느낌이다. 오래 서로를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물론 부부로 의견일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 친구처럼, 동료처럼 든든한 배경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다면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현실에서 ’이상적’인 걸 하는 건 상상 이상의 노력과 투자, 희생을 동반한다. 이 모든 걸 손에 쥐려고 하면 분명 어딘가에서 어깃장이 난다. 그러지 않고 ‘운이 좋았어요’ 할 수 있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 일은 세상과 맺는 방식
그러니 묻는다. 그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월급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맺는 방식이다. 단지 월급 통장을 채우려 퇴근 시간만 기다리거나, 누군가 사주거나 이용해 줄지 모를 것들에 매달리기에는 우리의 삶이 아깝다.
’시즌‘이라고 부르는 시기에 이런저런 일이 참 많다. 다정한 힘을 장착하고 듣고, 묻는다. 현장에서 경험을 챙기고 뭔가 할 방향을 찾은 이도, 새로운 도전 앞에 기대와 설렘을 감추지 않는 이도 있다.
안타깝지만 어설픈 준비와 얇은 설계, 헛멋을 장착하고 눈앞과 지원 규모에 몸을 던지는 경우도 적잖다. 이 경우는 약속이나 한 듯 잘 듣지 않는다.
관찰자이자 조력자로, 마주한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앞서 '왜'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데 항상 더 큰 애를 쓴다. 그들이 눈을 반짝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바로 그때가 내 '일'이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너의 ‘왜’는 무엇인가: 열정 대신 가치를
강의 자료 준비를 하면서 몇 번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너의 ‘왜’는, 너의 방향은 무엇인가."
가능한 무게를 줄이라는 규칙을 깨고 책 하나를 챙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스 고딘의 <의미의 시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는다는 건 기억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이를 살아온 나를 다시 만나는 일과 같다. 같은 문장을 다르게 살피는 나를 흠칫하고 챙긴다.
언젠가의 나는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수합하고, 자료들 안 또는 뒤에 깔려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걸 즐겼다. 그래서 좀 더 쉽게 ‘이렇게 하세요’를 던졌다. 지금은 같은 상황에서 시간을 들여 듣고 ’왜‘를 구한다.
왜 바뀌었는가. 책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열정을 따르는 것은 사치다. 열정은 변덕스러운 자석이다. 그러나 가치를 따르는 것은 의무다. 가치는 지속적 의미를 선사한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았다고나 할까.
- 차갑게 꿰매는 일: 지휘자의 마음으로
‘모두의 창업’ 시대. 창업이 직업이 된 듯한 즈음에 언젠가 유행했던 '모두의 마블' 게임처럼 ‘일단 주사위 던져‘를 외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미 6개월여 교육과 1단계 선발 과정을 거친, 남다른 간절함을 다진 이들에게는 더 그렇다.
좋은 생각이라고 등 두드리고, 입술이 반짝이는 그럴싸한 사례를 꺼낼 일이 아니다. 완충자본과 리스크맵, 생존기간(Runway) 같은 차갑고 냉정한 단어들을 바늘처럼 휘둘러 꿰매는 공정에 공을 들였다. 마치 지휘자처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소리 내지 않는다. 그는 다른 이들을 강력하게 만드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힘을 얻는다." _벤 잰더 Ben Zander, 보스턴 필하모닉
- 불쑥 대표가 된 이들의 존엄을 지키며
불쑥 대표라는 이름의 노동자가 된 이들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노동자는 임금 인상보다 그들 개개인이 느끼는 최후의 존엄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회사에서 인격적 요소가 사라질 때 사람들은 존엄을 빼앗긴다. 존엄하지 않다는 건 결국 자신의 헌신이 무가치하게 평가받는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회사는 타사와의 경쟁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강의를 마치고 혼자 숨을 고르며, 어쩌면 누군가 대신 혼자 눈을 반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반짝이는 눈을 봤다고 혼자 위안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란다. 속도는 달라도, 방향은 달라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제각각의 결승선을 통과하는 과정이 되기를. 누가 먼저가 아니라 누가 버티느냐가 중요한 시대에,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이 오래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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