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돌담에서 성수 벽돌까지: 지역성을 만드는 태도

지역력 탐구생활 : 로컬_로컬 크리에이터_로컬 크리에이터 경제

by 고미

사람 사는, 사람 살리는. 현장에서 보는 ‘사는 공간‘에는 법칙이 있다. 차근차근. 또 차곡차곡.


처음부터 금을 그어놓고 여기는, 저기는 해도 무방하지만 반듯하니 정돈된 이면에 인간미라는 것이 떨어진다.


대신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들은 서로 옆을 내주거나 어깨를 빌려주며 기댈 이유를 만든다. 여기서 기댄다는 말은 의지가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지한다는 의미에 좀 더 가깝다.



’제주 돌담’과 ‘성수의 붉은 벽돌‘은 그 서사의 결은 다르지만 가만히 차곡과 차근의 법칙을 따른다.


흙이 귀해 쌓은 밭담과 공동체의 요철 역할을 한 돌담, 해녀들의 숨터를 지키던 불턱 같은 제주의 ’돌‘담은 허투루 쓰이지 않으며 지역을 지켰다.


밭담이었던 것이 4.3당시 방어 목적의 성벽으로 옮겨졌다가 비극을 지나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 제자리를 찾아갔던 것처럼 돌담은 상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품으며 다시 삶의 경계가 됐다.


모난 것을 다스리는 대신 자리를 만들어 맞추며 은근한 곡선을 만들던 것이 이젠 전통과 정책으로만 남았지만 계속 이어질 채비를 하고 있다.

성수의 붉은 벽돌은 쌓이고 채워지며 지역이라는 정체성이 됐다. 건축 재료라기 보다 지역의 ‘태도’에 가깝다.


새로운 세대가 들어올 때도, 기존의 장인이 물러날 때도 모두가 조용하고 느린 방식으로 움직였다. 먼저 거리를 지켰던 수제화 장인은 천천히 자리를 비워주었고, 창업자는 그 시간을 존중하며 조용히 입주해 새로운 결을 덧입혔다.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의 긴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흔한, 숨가쁘게 속도를 내는 방식 대신 서로 밀어내지 않고 격하게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스며들며 결을 잇는 쪽을 택했다.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은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지만 지역성을 대표하는 존재감으로 사람 살 동력이 되고 있음을 주목하려 한다.


‘그저 좋아보이니까‘나 ‘일단 되는 걸 봤으니’ 또는 ‘그럴싸하게 합만 맞춘‘보다 오래 깊고 긴 호흡으로 오늘에 이르렀음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새삼스럽지 않은게 이미 시작했고,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리터분한 이론 일색의 수업으로 인기는 없었지만 종종 ‘어른의 말‘을 던지시던 교수님이 계셨다. 그 말들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하나가 ’그러니 대안은?“이다.


무작정 이렇다 저렇다 지적하고 비난하고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을 이러한 방식으로 고민해 달라‘고 더 낮은, 현장에 가까운 의견을 찾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씀으로 기억한다.



때가 때인지라 여기저기 주판알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주판-계산기-컴퓨터 프로그램을 넘어 AI까지 섭렵해야 하는, 사는 게 꽤 복잡다양한 대상들을 상대하기에 그 태도가 ‘계산’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차근차근' 살아온 궤적이 없고 '차곡차곡' 쌓아온 진심이 없으면, 짧은 시간 안에 신의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고 자격 운운하며 뭔가 할 듯 하는 것으로는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 판은 보통 알고 있는 ‘일반의 그것‘과 다르다는 걸 안다. 허나 세상은 매일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각도 끊임없이 변한다. 부디 곁에 결이 있는 사람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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