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 돌아온 음악, ‘테우’의 첫 항해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앙상블 테우 창단 연주회

by 고미

어떤 공연은 음악보다 먼저 이야기로 기억된다.

제주 전통 배의 이름을 가진 클래식 앙상블 ‘테우’의 창단 공연이 그랬다.

바다를 건너 돌아온 젊은 연주자들이 고향에서 첫 항해를 시작한 밤이었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제주다운과 돌아온의 설명을 들르며 무심히 바다와 도전을 떠올렸던 기억이 났다.


테우는 제주의 삶을 지탱하던 전통 배의 이름이다.

이런저런 자원이 흔치 않았던 섬에서 나무를 이어 다른 배는 쓸모 보다도 역할에 더 튼 의미가 부여됐다. 바다 위에 몸을 띄우고 삶을 이어가던 작은 배, 태우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는 용기와 생업의 상징이었다.


이번에 창단한 앙상블의 연주자들은 모두 제주 출신이다.

음악을 더 깊이 배우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를 건넜고, 그곳에서 수련을 마친 뒤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솔리스트로서도 충분한 역량을 가진 젊은 연주자들이 호흡을 맞췄으니 그 기운은 단단하고 단정했다.


창단 공연의 레퍼토리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1번과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1번이었다.


멘델스존의 작품은 젊은 연주자들이 스스로를 검등하기 위해 무대에 실내악 중 하나다.

작곡가의 30대 열정을 수놓은 악보는 빠른 호흡과 민첩한 앙상블, 그리고 피아노의 화려한 패시지를 동시에 요구한다.

이 곡에서 세 악기는 서로 경쟁하듯 대화를 이어가며 음악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이날 연주에서도 그 에너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긴 호흡을 유지했고, 음악은 생각보다 단단한 균형 속에서 이른 봄 밤을 흔들었다.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에 이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멘델스존이 젊음의 속도와 빛이라면, 브람스는 깊이와 무게에 가깝다. 처음 작곡한 곡을 30년이 지나 다시 매만지며 더해진 감성은 지나치기 보다 한 음 한 음에 중력을 얹어 힘을 더했다.

선율은 길어지고 호흡은 느려지면서 음악의 중심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창단 공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네명의 연주자는 이미 오래 함께 합을 맞춰온 팀처럼 자연스러운 균형을 만들어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앙상블이 초연한 창작곡 〈해녀, 바다의 푸른 빛〉.


이 곡에는 개인적인 인연이 하나 있다.


예전 언론사에 있을 때 창작곡 공모전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연주자가 조심스럽게 작곡이라는 영역에 첫발을 내디뎠다. 앙상블 테우의 리더 박수홍 피아니스트다.

어린 나이에 제주를 떠난 탓에 낯설었던 해녀를 연구하고 전통악기 구성까지 모든 첫 경험을 모아 곡을 만들었다. 우연히 또 만날 사람의 알고리즘이 작동했던 좋은 기억이다. 그것이 어림잡아 5년여가 됐다.


연주자에게 작곡은 늘 다른 세계다.

악보를 읽는 사람에서, 악보를 쓰는 사람으로 건너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작은 건너감이 시간이 흘러 이날의 음악으로 이어졌다.


역시 공모전을 통해 찾은 고영숙 시인의 시를 악보에 옮긴 〈해녀, 바다의 푸른 빛〉은 제목 그대로 제주 그리고 바다, 해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파도처럼 스르륵 밀려와 포말로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원곡은 국악풍으로 경쾌한 느낌이 톡톡 터지는 느낌이라면 현악 편곡은 현 특유의 부드러운 연결이 마치 해녀가 바다에 닿아 자유로움을 느끼고, 물 속에서 자유로워지며, 긴 숨비소리로 살아있음을 알리는 과정이 한 폭 그림처럼 그려진다.


제주의 바다는 늘 곁에 있지만, 그 바다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너무 직접적이면 풍경이 되고, 너무 추상적이면 장소의 감각이 사라진다. 그 안의 사람, 삶을 녹이는 일이 쉬울리 없다.



그 사이에서 이 곡은 제주 바다의 리듬을 담담하게 끌어내 또 한 번 두 손을 꼭 모아쥐게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문득 ‘테우’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테우는 먼 바다로 나가는 큰 배가 아니다.

다만 바다 위에 자신을 띄우고, 사람을 태워 다시 돌아오는 작은 배다.


섬 밖에 나가 자신을 가다듬은 젊은 연주자들이 제주라는 항구에 다시 모여 자신들의 음악을 띄우는 순간.

그날의 공연은 창단 공연이라기보다 한 척의 배가 처음 바다에 나가는 장면에 가까웠다.

앵콜 무대 ‘서시’의 짧은 여운은 오히려 그들을 지켜볼 이유가 됐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