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영화 Past Lives와 A
영화 Past Lives의 해성과 나영은 나란히 걷고 있었으나, 끝내 시선의 방향을 확인하지 못한 채 멈춰 선다.
그 적막한 장면 위로 A가 들려준 고백이 겹쳐졌다.
어쩌면 그 문장들은 내게 던지는 질문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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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남의 시작
A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결이 어긋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화는 끊기지 않았으나 그 안을 채우던 온기는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특별했던 자리가 일상의 풍경 뒤로 밀려나는 것을 느끼면서도, A는 애써 모른 척했다.
뒤늦게 꺼낸 서운함에는 지독한 미안함이 따라붙었다.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과 분명히 말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그대로 흘려보낸 이가 결국 자신이라는 자각.
“내가 나쁩니까”라고 묻는 듯한 A의 눈빛에는
서운함보다 무거운 것이 조용히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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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오해
문득 영화 속 대사가 떠올랐다.
“당신이 내가 이해 못 하는 말로 꿈꾸는 게, 당신 마음속에 내가 가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그 말은 이상하게도 지금 내가 느낀 감정과 닮아 있었다.
우리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그저 기댈 수 있었던 마음의 방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익숙한 거리감이 주는 안도감에 기대어 그 감정의 이름을 조금 앞서 붙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믿었던 순간들조차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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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못한 “괜찮다”는 말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조차 이 시차를 증명하는 듯했다.
오전 예약 시간에 늦을까 봐 서둘러 움직였다. 계속 통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조바심 내며 도착해보니 상황은 우연한 방문으로 시간이 나뉘어 늦지 않은 상태였다.
잠깐 안심했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예약자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면서 ‘내 탓인가‘로 어긋난 타이밍을 해석했다.
서로 괜찮다고 말했고 겉으로는 문제없이 지나가는 듯했지만, 그 말은 어딘가에 제대로 닿지 못한 채 흘러가 버렸다.
괜찮다는 말과 괜찮지 않은 상태 사이에서 어색하게 남아 있는 공기.
그 이물감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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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온도
관계는 감정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전제,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려는 과정 위에서, 유지된다.
그 과정이 비워질 때, 사람은 뒤늦게 속도와 온도의 차이를 알아차린다.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깊어지지도 않는 상태, 그 사이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조금 늦게 알게 되는 순간은 얼마나 쓸쓸한가.
상대는 여전히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기에, A는 이 감정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더 방황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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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시차
요즘의 봄이 그렇다.
어느 곳은 이미 꽃을 떨구었고 어느 곳은 아직 봉오리조차 맺지 못했다.
한 계절 안에서도 각자의 시차가 존재하듯 사람의 마음도 저마다의 속도로 흐른다.
A에게 말했다.
서둘러 마음을 정리하려 애쓰지 말고,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먼저 인정해 보라고.
그리고 어디까지가 함께 갈 수 있는 범위인지 차분히 가늠해 보라고.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정직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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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남는 뒷모습
나란히 걸었으나 끝내 같은 방향이 아니었던 사람들, 인연이라 쓰고 ‘만약에‘라고 읽게 되는 순간들.
그 장면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어긋남이 너무도 조용히 남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의지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 시차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대로 두었던 시간.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문득 누군가에게 미안한 사람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맺어지지 못한 채 흩어진 공기가 봄밤의 냉기처럼 쉽게 가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