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꽃같은 평화를 말한 날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이른 4.3행사 참가기

by 고미

종일 꽃 같은 날이었다.


‘평화에 대해 같이 얘기해보자’는 초대로 시작된 하루였다.


가끔 이런 날이 삶의 온도를 덥힌다.


서서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두드린다.


고백하자면 나는 대외활동이 활발한 사람은 아니다.


몇 개의 작은 모임과, 직업 덕에 ‘일로 만난 사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저 맡은 일을 성실히 돌아보는 정도.


며칠 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시작된 일에 생각이 많아졌다.


전 직장을 그만 둔 뒤 옷장에 걸어두기만 했던 재킷을 꺼내 이리 대보고 저리 걸쳐봤다.


“그냥 가”라는 아이의 눈치에도 괜히 한 번 더 거울을 본다.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고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 오후를 기꺼이 내주어도 좋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주여성위원회


4.3 행사 ‘아픔을 너머 평화의 홀씨가 되다’.


기자 시절에는 꽤 부지런히 오갔던 길을 오랜만에 찾았다.


“아,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현기영 <순이삼춘> 중


4.3영상 속 내레이션이 아프게 박힌다.


그날의 말은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라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경고가 울린다.


감사하게도 오늘 내 역할은 ‘평화’에 대해 말하는 일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아침에 받았던 소식이 떠올랐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전미도사비평가협회상 수상과 영화 <내 이름은>의 제작위원 시사회 초대 문자. 그러고 보니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여성-인권-평화에 대한 유네스코의 보편적 기준


기억할 권리 (Right to Memory)


증언할 권리 (Right to Testimony)


폭력의 재발을 막을 책임 (Responsibility to Prevent)과


피해자이면서 생존자였고, 기억을 이어온 사람이었으며,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일으킨 사람들.


그 이름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제주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했다.


평화는 기억에서 시작되고, 기억은 여성의 몸을 통해 이어져 왔다.


그래서 평화는 추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때가 때인지라 각자의 안전을 지킬 가장 작은 권리, ‘한표 행사’의 의미를 어필했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평화는 오래 가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지나며 조금 더 분명해졌다. 평화는


누군가의 말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끝까지 놓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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