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바람 멈춘 자리, 우리가 불러야할 ‘이름‘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4.3 첫 장편 <내 이름은>1

by 고미

잊어야 살았던 제주가 있었다.

힘 앞에서 무기력했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하루 또 하루를 겨우 건너던 시간이 있었다.

그 섬에서는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잊는 일이 삶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제주가 있다.

힘과 견제 속에서도 묻어두었던 이름을 꺼내 다시 하나씩 불러보려는 사람들이, 산다.

아픔을 다시 꺼내는 일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기로 선택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그 두 개의 제주를 보았다.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잊어야 했던 섬과,

살아가기 위해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하는 섬.


그 사이에는 시간만이 아니라 선택이 놓여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슬쩍 ‘‘보리밭 장면을 찍을 때

바람이 멈춰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흘려들어도 괜찮을 말이었지만 보리밭이 나올 때마다, 숨을 멈췄다.

왜 그때 바람이 멈췄는지 알 것 같아서다.


제주에서 바람은 멈추는 것이 아니다.

늘 지나가고, 늘 스치고, 늘 남긴다. 오죽하면 바람이 주인인 섬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 정적은 이상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예감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

바람은 멈춘 것이 아니라, 숨을 죽인 것이었다.

소리 없이 밀려오는 통곡 앞에서, 바람조차 그저 지나가지 못했을 터다. 그 소리를 대신 삼키고 들킬까 몸을 웅크린 그 때의 어린 소녀가 됐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무언가를 크게 말하지 않는다.

지나가듯 제주의 안쪽을 건드린다.

그 안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것들이 있다.


불리지 못한 이름, 묻어두고 살아야 했던 시간 그리고 잊어야만 했던 기억.

그래서였나. 영화를 보는 내내 위령제 굿판이 떠올랐다.

심방이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부르고, 이제 맺힌 것을 풀어내라 위로하고 “훠어이 가라” 하고

보내는 그 장면이 살풀이 수건처럼 춤을 췄다.


영화 〈내 이름은〉은 그와 닮아 있었다.

다만 아직 끝나지 않은 굿이었다.

죽은 이의 위패를 이름으로 걸고 산다는 건 모르고도, 또 알아도 힘든 일이다.


제주4.3의 이름은

부르기 시작했지만 아직 다 불리지 않았고,

풀어내기 시작했지만 아직 다 풀리지 않았고,

보내려 했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었다.


보리밭의 바람이 멈춰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곳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러닝타임 동안 제주4·3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지며 상처투성이로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에 집중한다.

여기서의 삶은 살아간다기보다 살아져야 하는 시간에 가깝다.

버텨야 했고, 견뎌야 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밀어내듯 살아온 시간이 꾹꾹 통점을 골라 누룬다.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꺼내면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감각이 남는다.

그 모든 과정의 끝은 결국 ‘나’에게 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누가 대신 견뎌줄 수도 없다.

그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 기억을 끌어안는 일은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치유를 말하면서도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누가 희생되었는가를 넘어서,

그 사람은 어떤 이름으로 살아야 했는가.

누가 그 이름을 지웠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를.


스크린은 과거를 보여주지만 그 안의 시선은 지금을 향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제주에 서 있는가를 묻는다.

바람이 멈춘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를 듣고 싶어 한다.


제주의 표정 속에서는 이 비극을 지나 정의를 이야기해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모두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 치밀하게 배치된 복선이다.

내 이름은…

그 문장은 여전히 누군가의 입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끝에 흐르는 조금 다른 시간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름이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들이 천천히,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이어진다.

1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크린 위를 지나가는 1만 명의 이름들이다.

그 이름들은 배우도 아니고, 등장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이 영화에서 가장 묵직하고, 가장 현실적인 이름들이 된다.


누군가는 지워졌고,

누군가는 끝내 불리지 못했고,

누군가는

평생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갔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는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그 위에 올린다.


그 장면은

단순한 엔딩 크레딧이 아니라 이름을 대신 부르는 시간으로 짧은 매듭을 짓는다.

지워졌던 이름들과, 이제 막 불리기 시작한 이름들이 같은 화면 위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겹쳐진다.


그 순간

이름은 기억하는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누군가가 끝까지 불러줄 때 비로소 남는다는 사실이 남는다.

그리고 그 호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 질문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강 작가는 제주4.3을 쓰면서 <작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은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살아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4.3 48주기 추모식에서도 한 목소리로 작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잊지 않겠다는 것.

끝내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

삶의 자리에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이 겹쳐진다.


영화 〈내 이름은〉은 그 사이에 서 있다.

기억과 책임, 이름과 존재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함께 서 있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나저나

당분간은 이 계절의 보리밭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그곳에 서면 괜히 한 번 발을 멈추게 될 것이고, 이유 없이 오래 바라보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무언가 지나간 자리가 느껴지고,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의 이름이 조용히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지나쳐 왔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한 지역의 역사로만 두고,

한 시절의 비극으로만 묶어두고,

그렇게 우리의 삶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두려 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 거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제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현대사라는 이름의 굴곡진 길을 지나, 결국 한 시대의 문제가 아닌 한 인간의 문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살아남는다는 것, 이름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

그건

그 때 제주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겪어온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번쯤은 조용히 앉아끝까지 바라봐야 하는 이야기로 남는다.


내 이름은…

그 문장을 누군가 대신 채워줄 수는 없다.

다만, 그 이름이 여전히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오늘을 살기 때문에 한 번쯤은 마주해야 할 이야기로 남는다.


영화 <내이름은>(감독 정지영 주연 염혜란)은 오는 4월 15일 전국 개봉한다. 우리가 끝내 알아야 할 ‘오늘‘로 꼭 마주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