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워서’, 달에 갔다

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8: ‘파친코’, 움직이게 하는 힘

by 고미

이번엔 ‘파친코’다. ‘오징어게임’이 몰고 온 K-콘텐츠 열풍에 ‘글로벌 성공’이라는 날개가 연이어 달린다. 예상대로 ‘파친코’가 K드라마냐, 아니냐 하는 논쟁에 과연 에미상은 받을지, 왜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K-기업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과 지적 등등이 꼬리를 문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작가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드라마라고 하기는 힘들다. 이 더 중요한 것은 미국자본, 글로벌 OTT가 1000억원을 투자해 한국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시장성의 얘기다.

조심스럽게 정리를 해보자면 콘텐츠 마니아들을 크게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를 본 사람과 아직 보지 못한 사람, 이렇게 나뉜다. 아이폰을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애플은 앱스토어, 아이튠스 등 자사 특유의 폐쇄적인 소프트웨어 정책을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애플TV+에 그대로 적용해 한국 시장에 출시했다. 애플 기기(하드웨어)를 가진 사람만이 애플TV+(소프트웨어)의 구독자이자 시청자가 될 자격을 얻는다. 애플의 리그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런저런 절차 비슷한 것들에 몇 번을 궁시렁거린 뒤에야 입소문이 자자한 콘텐츠와 눈을 맞출 수 있다. 이 정도면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앞서 ‘기생충’과 ‘킹덤’ ‘오징어 게임’이 한국적 정서가 세계 시장에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민자와 경계인에 대한 접근은 ‘미나리’로 이미 한 차례 실험을 마친 아이템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시장을 포기하고,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낯선 ‘자이니치’, 자막 위 자막이 필요할 만큼 다양한 언어가 등장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1000억원을 배팅한 이유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28d1254b-c436-41f1-a297-ef101aa154ed.jpg '파친코' 미국 시사회 티켓

하나. 무엇을 봤을까

'파친코' 미국 시사회 티켓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무궁화다. 티켓이 담긴 종이 봉투 앞면엔 수묵화 같은 느낌의 단아한 무궁화 그려져 있었고, 봉투 안에는 무궁화씨가 들어있었다.

한국도 아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글로벌 시사회에서 외국 관객들에게 무궁화 씨앗을 나눠준 것은 출연한 배우도, 한류 팬도 아닌 애플이었다.

무궁화 향만 밴 것이 아니라 홍보 과정에서 한복이나 김치 같은 한국의 것을 드러내 알리고 있다.

그것부터 이미 상품(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구까지 건드린다. 오픈런까지 하게 하는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언박싱 만으로도 가슴 뛰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활용한 셈이다.


47380_85761_520.jpg Apple TV+ 웹드라마 《파친코》 중 한 장면 ⓒApple TV+ 제공

둘. 뿌린 만큼 거둔다?

타임 등에 따르면 '파친코'의 회당 제작비는 영국 왕실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1000만 달러·122억 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할리우드에서 한국 역사를 주제로 1000억대의 대작 드라마를 내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4년 전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당시는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뿐 아니라 아시아 배우들이 주연을 맡고도 흥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도 모를 때였다.

더구나 일본이라는 중요한 콘텐츠 시장을 소외시키는 시도는 과감하다기 보다 모험에 가까웠다. 일본은 애플 전체 매출에서 7% 정도를 차지하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 점유율이 45%에 달하는 등 알짜배기 시장이다. 1억2000명의 시장을 포기한 매우 이례적인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흥행성적을 위해 모든 이를 끌어안으려는 콘텐츠 기획의 관성을 깼다.

THMVK67F5RGUNLIJKYYTHB2HEU.jpg 제주 출신 고한수(이민호·오른쪽)가 아버지(정웅인)의 대화는 제주어로 진행된다. ⓒApple TV+ 제공

셋. 왜 ‘파친코’인가.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자이니치)와 아직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그 후손들의 삶을 다룬다. 1910년대부터 1980년대를 오가는 대서사시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아야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영역이다.

원작이 이미 베스트셀러로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장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번 경험했다. 헐리우드 하면 습관처럼 따라 붙는 ‘블록버스터’와도 거리가 있다. 캐스팅은 모두 오디션을 통해 진행한 것도 흥미롭다. 제작비는 어마어마했지만 톱스타 프리미엄이나 티켓 파워 같은 걸 별로 의식하지 않은 캐스팅 과정도 흥미롭다.

철저히 작품 중심으로 유·무명을 따지지 않고 오디션을 통해 캐릭터에 걸맞는 연기자를 섬세하게 배치하는 것으로 완성도를 높인다.

'파친코'가 가진 힘은 포맷이나 트렌드가 아니라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근원적인 정체성과 보편적인 주제의식이다. ‘선자’로 대변되는 강인한 생명력과 가족애를 그리는 동시에 한국과 자이니치의 아픈 역사를 그렸다. 원작에는 자세히 등장하지 않은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사건, 강제 징용도 등장한다. 제작진은 한국, 일본, 미국 등의 20여명의 역사학자에게 자문을 구했고, 각본 단계부터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우리 말 대사가 60%를 넘다 보니 당연히 쉽지 않았을 번역 작업에 집중할 만도 한데 한국어 특유의 표현 방식이나 제주 사투리를 대사로 녹여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자이니치들이 쓰는 특유의 한국어투 같은 것들까지도 복원해 냈다.


넷. 그래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디지털 전환 시대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벤처 투자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유망 스타트업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엑시트(자금회수)에 성공하거나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선 사례도 늘어는 추세다. 인재들이 몰리면서 각종 스타트업 창업 지원 제도와 경진대회 등의 경쟁률은 더 큰 숫자를 향한 질주를 한다. 마냥 핑크빛 무드이지만, 그런데도 묻고 싶다. “그래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애플은 왜 '파친코'에 거액을 쏟아부었을까. 한국적 이야기가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는 게 업계와 학계의 공통된 목소리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 일까. 한때 일요일 명화극장을 장악했던 서부극은 박물관에 들어갈 지경이 됐고, 할리우드를 넘볼 만큼의 인기를 구가했던 홍콩 르와르도 시대물 취급을 피하지 못했다. ‘K-콘텐츠’ 역시 어느 순간 한 때를 풍미했던 장르로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잡아 봤으면 한다.

20211003507486.jpg 오징어게임 중 ⓒ넷플릭스

다섯. 움직이게 하는 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파친코’를 기점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대중적 승인이 연쇄반응처럼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다. 잡지 ‘배니티페어’는 “어떤 이들은 애플TV+의 선택을 ‘도박’이라 말하지만, 이야기 자체에 대한 확신을 안고 프로젝트에 뛰어든 창작자들에겐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라 평했다.

‘이야기에 대한 확신’은 ‘리스크’가 아니다. 좋은 이야기와 드라마에는 시청자도 반응하겠지만 제작자와 투자자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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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자주 들었던 얘기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은 이제 국가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일반인에게 낯선 영역이다. 정부 정책이나 스타트업 육성에 기치를 내건 학교에서조차 아직 스타트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지원책이 수두룩하다.

일반 창업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인 ‘벤처 투자’역시 눈에는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다. 대형 모험 자본을 통한 급성장, 즉 ‘스케일업’을 위해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 않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브랜딩’이다. ‘있으면 좋지만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으로 분류하거나 ‘투자받으면 할’ 후순위로 미뤄둔 영역이다.

간혹 필요하지 않겠냐고 운을 뗐다가 쇼잉(Showing)과의 경계에서 엄한 핀잔을 듣거나 “얼굴도 못생긴게 잘난 척 하기는~”하는 옥동자류의 ‘무시’ 공격을 받는 구역이기도 하다.

지금의 브랜딩은 ‘만나고 싶은 고객’을 정의하는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을 지칭한다. 단순히 치장을 하고 부풀리고 잠깐 현혹시키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서비스 및 제품이 지니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 철학을 통해 정량화할 수 있는 정교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철학만 있고 분석이 없는 경우 만나고 싶은 고객은 있으나 만나러 갈 방법을 알 길 없고, 분석만 있고 철학이 없을 경우 만나고 싶은 고객과 엇갈리게 된다.

단순히 광고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든다거나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입소문만 제대로 타면 성공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 좋은 콘텐츠보다는 ‘만나고 싶은 고객’의 정서에 어필할 수 있는 요소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퍼포먼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고객을 단순히 ROAS(return on ad spend, 광고비 대비 매출액) 관점에서만 본다면 불필요한 과정으로 치부돼 성장의 발판이 될 설득과 교감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생존이 급한 상황에 늘 ‘~ing’인 브랜딩까지 어떻게 할까 싶지만 ‘파친코’가 귀띔해주지 않았는가. 스토리와 콘텐츠로 움직일 수 있다고. 그냥은 없다. 공(功)을 거꾸로 하면 운(運)이 된다. 하고자 하는 일에 공을 들여야, 운도 따른다.

1946년 시작된 문샷(Moonshot)은 본래 달 탐사선을 뜻한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것은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자체가 많은 파급효과를 줄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 결과는 예측한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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