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떤’ 성공을 추구할 것인가

스밥 6기, 에디터가 되다9-존재감의 크기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by 고미
이쯤 되면 여기 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올만 하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 성공한 기업들의 얘기 아닌가요”
다 이해한다. 스타트업이란 단어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지닌 중압감은 감히 아는 척 하기 힘들 만큼 무겁고 무서운 무엇이다.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주섬주섬 주워 모은 조각들을 보를 만들 듯 잇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것이 무엇이든 함께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다 말았던 '실패'의 쓴 맛


구독하고 있는 콘텐츠 중에 EBS의 EBR(EBS Business Review)+가 있다. 처음 흥미를 가진 포인트는 ‘디지털 혁신’이었다. 직업이 그렇다 보니 서비스 저널리즘이란 단어를 조금 일찍 만나기도 했고 디지털 구독 모델 전환이라는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1년여 꾸준히 살피며 구독이라는 장치보다는 마케팅 인사이트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뉴스라는 이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 만으로는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콘텐츠 운용에 적극적이냐면 소비자(독자)와 접점에 있어 일방적 접근을 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BR+를 통해 느낀 점, 정리하자면 중요한 것은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는가 보다는 어떤 서비스로 고객과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있다. 다른 비즈니스가 그렇듯 ‘누가 고객과 더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했다.

EBR+는 ‘비즈니스도 교육이다’를 내걸고, 당신을 진정한 리더로 만들어 줄 경영전략, 혁신, 마케팅, 리더십에 대한 최고의 인사이트. 감각있는 영상과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한 경제 경영 콘텐츠(EBS 홈페이지 참고)다.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망했어요’평가를 받았던 씁쓸한 기억은 순간 ‘EBS라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핑계를 돌아 차마 꺼내 보이지지 못한 로컬 미디어의 특성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멈춘다. 소주 한 잔이 간절해지는 체험담은 여기까지.


'작은'이 가진 큰 힘

지금까지 풀어낸 것들은 최근 관심 있게 봤던 브랜드 얘기를 꺼내기 위한 잡설(雜說)임을 밝혀둔다.

최근 봤던 콘텐츠 중에 유독 눈에 들어왔던 문구 하나가 있었다. “매출의 크기가 아니라 존재감의 크기로 성장하라”.

광고기획전문가인 이근상 케이에스아이디어대표의 '작지만 깊이 있는 가치로 큰 브랜드를 이길 작은 브랜드의 성공 비결’에 등장했다.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성공을 크기와 속도의 측면에서 정의하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하고 물음표 서너개는 붙였을 테지만 이미 브랜드의 성공을 정의하는 단어에는 ‘점유율 1위의’, ‘시장을 주도하는’, ‘1등을 위협하는’ 등의 순위를 나타내는 것 이외에도 ‘착한 소비를 위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등의 수식어가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어떤 성공을 추구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작은 브랜드가 성공의 영역으로 삼을 수 있는 형용사는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책을 주문하고 받아보기까지 평균 9개월이 걸리는 작은 출판사 ‘타라북스’, 수제 맥주의 한계를 경쟁력으로 바꾼 ‘제주맥주’, 기술력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브랜드 ‘헬리녹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변호사에서 글루텐 프리로 유명 빵집 사장이 된 헬렌 고딘 그리고 ‘두끼 떡볶이’, ‘구하우스 미술관’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특별하게 하는 것으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풀어낸다.

이들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범위를 넓히는 대신 한가지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기울이고 진정성 있는 기술에 깊이를 더해 영향력을 높이는 것으로 규모의 경제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라포(Rapport)를 통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거나 브랜드의 본질을 소비자가 사랑하게 하는 것으로 기다림이나 만족감에 비용을 지불 하게 한다는 특성도 겹친다.


라포를 형성한다는 것은 기존의 마케팅에서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방법과는 사뭇 다르다. 마케팅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더 많은 소비자와 연결될지 고민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광고 등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한다.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도 어떻게 포지셔닝하는가에 따라 판매 결과가 달라지고, 시장에서 고전하던 브랜드가 멋진 카피 한 줄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브랜드에서 소비자로의 일방통행이다. (...) 반면 라포는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다. 만든 이의 의도와 쓰는 이의 생각이 맞아떨어지면 형성되는 것이 라포다. 굳이 누구에게 맞추려고 애쓰거나 조사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옳다고 믿는 것을 만들면 된다. 생각이 같은 소비자와 연결되면 그 관계는 보다 강력해지고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만’, ‘잘’ 만드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크기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이 아무리 그 크기를 키워도 소비자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 크기는 숫자에 불과하다. 반대로 규모가 작아도 소비자 마음속에 그 의미와 존재감이 크다면 그 브랜드는 큰 브랜드가 된다. 기업의 크기가 브랜드의 위상을 보증해 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소비자의 생각이 브랜드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이미 책(「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으로 정리됐다. 그는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달라졌음에 주목한다. ‘나’에서 ‘우리’, ‘성장 지향성’에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놓치면 안된다고 충고한다. 그래서 꺼낸 작은 브랜드는 상징적 개념이다. 큰 브랜드는 ‘빠르게, 가능한 크게, 최대한 넓게’ 성장해온 브랜드나 기업을 통칭한다. 반대로 작은 브랜드는 ‘느리게, 적게, 좁게’ 시작하는 자영업자·소기업이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스타트업의 방향성과 맞물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가, 남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이 세 가지를 축약한 핵심 키워드로 ‘진정성’이 부각된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브랜드 역시 단순히 착한 브랜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게 기업의 목적이고, 소비자 역시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소비행위로 즐거움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경제 전반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력을 남겼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지속가능한 '생태계'에 대하여

그가 말하는 ‘지속가능한 숲’은 생태계다, 큰 나무들도 있어야 하지만 키 작은 관목도, 풀도, 이끼도 존재해야 건강한 숲이 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건강한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토양’,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머리나 가슴을 알겠는데 현실은…’이란 자문을 하게 하지만 그동안의 고민이 뜬금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 만큼은 확인해 준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의 창업주인 미나가와 아키라의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에서도 말줄임표에 담을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책에는 ‘어떻게 적성을 찾고 어떻게 계속해서 브랜드가 되고, 어떤 사람과 일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경험이 빼곡하다.

조급하지 않게, 낭비 없게. 기본을 알고 재료에 집중하는 것과 더불어 경험의 축적을 강조한다.

미나 페르호넨은 일단 옷을 만들기를 결정하면 직물부터 생산한다. 단기적인 대량 생산보다는 길게 보고 재료에 정성을 다하는 것에 집중한다. 숫자에 매달리면 옷을 입는 사람의 기분에 대한 상상력도 메말라갑니다. 트렌드와 이익 대신 소재를 디자인에 도입해서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필요한 만큼만 옷을 만들고, 남은 천으로 가방을 만든다든지 수예 키트 등으로 재가공을 하는 것으로 재고를 최소화한다. 낭비를 없애기 위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동일시 한다.

경험은 버릴 것이 없다는 점, 지금 제대로 일하면 다음에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 잘 못해도 ‘잘 맞는 일’ 찾아야 성장할 수 있고 물건보다 ‘어떤 좋은 기억 만들지’ 생각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점을 조언한다.

이쯤 되면 여기 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올만 하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 성공한 기업들의 얘기 아닌가요”

다 이해한다. 스타트업이란 단어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지닌 중압감은 감히 아는 척 하기 힘들 만큼 무겁고 무서운 무엇이다.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주섬주섬 주워 모은 조각들을 보를 만들 듯 잇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도 나무도 일정한 높이까지는 위로 성장한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높이는 더 이상 성장의 척도가 아닌 게 된다. 그 때까지는 속도가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하겠지만 그 다음은 질과 깊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고목은 하늘 높은 줄 만 알고 위로 자런 결과물이 아니다. 많은 세월 비에 베이고 눈에 쓸려상처 많아도 꼿꼿이 견뎌낸 고목일수록 그 뿌리가 깊고 넓게 뻗는다. 잔 줄기가 많은 강이 넓고 깊다. 성현이나 석학의 경험과 지식을 구할 때 그의 키나 재산의 정도가 기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어느 시점’은 소비자의 변화와 소비 경제의 다른 정의가 아닐까. 가치 소비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에 따라 달라진다. 다양성을 제공하는 무엇을 크기와 속도에 맞춘다면 소비자를 잡을 수 없다. 다양하게 세분화한 ‘원하는 것’에 부합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큰’보다 ‘작은’의 영역이다. 그것이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안에서 필요와 요구에 의한 영역이 꾸준히 만들어져야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살아야 뭐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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