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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15-시도하지 않으면 확률은 0

by 고미

몇 년 전 일이다. 청년 예술가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자리에 초대받았다. 오래 몸담았던 영역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나’를 알릴 것인가. 잘 팔아야 한다는 말에 몇몇 참가자가 ‘불편함’을 꺼냈다. “예술을 선택했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가 이유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세상과 공감하고, 철학을 공유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예술인을 선택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물론 선택은 자유다. 예술에 투신하지 않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입장이라 공연이나 전시를 알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작가의 조금은 화려해진 포트폴리오가 첨부된 보도자료를 본다.


# 예술가와 스타트업


예술가라서 그런 것 아닌가 하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예술’ 영역은 스타트업과 닮은 부분이 많다. 탁월한 사업가, 혁신가 혹은 마케팅 전략의 귀재. 세계적인, 아니면 굴지의 사업가에게 어울릴만한 수식어가 예술가와도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아트테크나 NFT의 등장이 예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혁신과 가치를 창출할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기도 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도 연관성이 많다.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다.

1914년 3월 파리 오텔 드루오에서는 ‘곰의 가죽’이라는 미술품투자자 집단이 주최한 미술품 경매가 진행됐다. 사업가 앙드레 르벨이 주도한 이 집단은 10년 전인 1904년부터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한 전위예술가들의 작품을 사들였고 마침내 그동안 모은 작품을 경매에 부쳤다. 이 경매로 투자자들은 큰돈을 벌었다. 1908년에 1000프랑을 주고 구입했던 피카소의 ‘곡예사 가족’은 1만2650프랑에 낙찰됐고, 이 경매를 거치면서 피카소는 전위예술의 대표주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렇다면 역서 누가 성공한 것일까. 그림을 그린 피카소인가, 아니면 그 가치를 키워내 경제적 이익을 얻어낸 사업가 르벨인가.

예술가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이 예술가의 성공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힘든 것과 같다. 좋은 예술과 성공한 예술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행과 감성과 명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최소 단위로 규정하자면 스스로의 만족이나 즐거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 "여기 피카소 작품 있어요?"


이왕 피카소를 소환했으니 그의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

1901년 6월 24일,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정착한 스무살 청년 피카소는 화상 볼라르의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스페인에서 먼저 화가의 길을 걷었던 아버지의 붓을 꺾게 했던 ‘천재’였지만 예술의 도시 파리는 만만치 않았다. 자신감 넘쳤던 피카소의 거친 터치와 분방한 색채는 첫 개인전치고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파리에서 피카소는 뜰 기회에 목마른 여느 예술가 지망생과 마찬가지였다. 생존하면서 고가의 작품가를 받은 몇 안 되는 화가로 꼽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살펴보면 일단 픽 하고 웃은 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피카소는 무명 시절 파리 화랑을 돌며 부지런히 자신을 찾았다. "여기 피카소 작품 없소?". 처음 화랑들의 반응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몇 번이고 피카소의 이름을 듣고 난 다음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가 도대체 누구길래 하는 호기심은 피카소의 작품을 찾을 이유가 됐고 작품 가격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그림과 화가를 단지 경제적 도구로만 보지 않고 인간적 끈 맺기로 자신과 화가의 성공을 이끌어 화상(畫商) 앙브루아 볼라르의 역할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의 화랑에는 화가와 수집가들이 끊이지 않아 생산적 토론과 사교의 장으로 활용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피카소는 자주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모순되는 듯한 말이지만 한마디로 그의 희망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피카소에게 영감을 준 화가 중 한 명인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작품의 가치를 말해 주는 지표는 단 하나뿐이다. 작품이 판매되는 현장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다. 르누아르는 작가로서 명성을 쌓기 위해 시장 개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가 시장 개척과 작가로서 명성을 획득하고 성공하는 것을 보며 피카소도 같은 길을 추구했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피카소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는 전시회 때 좋은 평을 써준 평론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물했고, 종종 집으로 초대했다. 화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화랑주가 제시한 구체적인 주제를 수용해서 그에 따른 연작도 그렸다.

아비뇽의 처녀들 (캔버스에 유화, 1907)

독창적 화풍인 큐비즘Cubism, 입체주의가 그의 가치를 끌어올렸지만 시작은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잘 모방하는 가능성 있는 청년 예술가였다. 그러다 빈센트 반 고흐의 표현주의를, 툴루즈 로트레크의 주제를, 에드가 드가의 대범한 윤곽 표현을, 폴 고갱의 채색 방식을 모방했다. 무엇보다 복수 시점으로 하나의 사물을 보는 폴 세잔의 아이디어를 가장 크게 훔쳤다. 이 모든 것을 버무리고 발전시켜 입체파 양식을 탄생시켰고, 그 후엔 피카소가 되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이런 피카소의 아이디어를 훔쳐 더 크게 성공했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슬로건과 함께 피카소 정신을 전면에 내세웠던 그는 결국 세상을 바꾼 아이폰을 탄생시켰다.

# 우리에게는 '아이디어'가 있어, 그리고


‘어쩌다 피카소’가 되기는 했지만 그럴 이유는 충분하다. 스타트업 하면 한 몸처럼 따라붙던 ‘도전’이란 단어가 조심스러워진 때문이다.

벤처기업협회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등의 자료를 보면 6월 스타트업 신규 투자는 총 163건으로, 투자 금액은 1조755억 원으로 집계됐다. 5월 보다 투자액은 늘었지만 투자 건수는 줄었다. 스타트업 투자가 최고를 찍었던 지난해 7월(123건·2조9544억 원)과 비교하면 63.6%가 줄어든 규모다. 올 상반기 최대 투자 금액인 7800억 원 가량의 투자를 받은 가상자산 핀테크 전문 스타트업 ‘델리오’의 몫을 더한 6월 신규 투자는 1조8555억 원이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천정을 찍었다’는 얘기는 그 이후 하락세라는 얘기다. 2021년 상반기까지 뭉칫돈이 몰렸던 국내 스타트업 투자가 빠르게 줄어들며 정체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매달 1조원 이상 규모를 이어오던 시리즈 투자까지 흔들리며 스케일업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투자 위축은 성과 요구 압박과 자금 회수 움직임 등 스타트업의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모양새다.

초기 스타트업은 가진 것이 아이디어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한 번은 생각해봤던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잘 되고 있는 스타트업의 행보를 보면서 “아 나도”했던 경험은 감출 수 없을 정도다. 포인트는 누가 더 잘, 빠르게 실행했는가, 어떤 경쟁력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다.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비슷해 보이는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가치 사슬의 위 아래에 있는 수많은 차별화 기회를 살펴야 한다. 경쟁 전략 수립의 시작은 시장 분석이다. 내가 들어가고자 하는 산업 분야를 정확히 분석하고 해당 시장의 이해 관계에 얽힌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객을 더욱 세분화하고 내가 찾은 니즈 시장을 독점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회를 찾는 것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는 새로운 생각을 경계한다. 혁신적일수록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신박한 전략, 시도와 실패, 다른 관점과 새로운 감각, 용기, 끝없는 고찰 등 수많은 예술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나 터득한 창조성의 열쇠는 스타트업 무대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하다.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려도 되겠느냐고, 글을 써도 되겠느냐고, 연기나 노래를 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그냥 한다.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창조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성이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집중할 대상을 찾았다는 것이다. 상상력을 활짝 펼치고 내재된 재능을 발산하는 통로가 되어줄 어떤 영역을 찾았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


# 무엇을 보고,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영혼의 화가, 빛의 화가, 해바라기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는 선명한 색채와 거칠지만 독특한 표현으로 오늘날 가장 유명한 화가지만 살아서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만큼 무명이었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보헤미안으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남동생 테오와 끈끈한 우애를 이어갔던 배경은 단순히 형제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 작업의 상업적 측면을 잘 이해하고 있는 그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생활 보호 대상자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하고 투자을 아끼지 않았던 미술상(남동생 테오)과 협력 관계를 맺은 벤처 사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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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럴싸한 얘기는 윌 곰퍼츠가 쓴 <발칙한 예술가들>들에서 옮겨왔다.

좀 더 덧붙이자면, 피카소가 낯선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작품 가격을 올렸던 방식은 많은 수의 스타트업에 주문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꼭 짚어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언론을 이용할 줄 알았다는 부분이다.

유니콘기업 정도가 아니라면 미디어에서는 ‘누구?’ ‘어디?’에 불과하다. 인지도는 낮지만 대신 창업자를 통해 기업이 가진 철학과 성장의 성과, 비전을 살피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창업자가 곧 기업 그 자체이자 메신저가 되야 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스타트업 대표가 해야 할 세 가지로 PR(public relations)과 HR(human resources), IR(investor relations)를 꼽는다. 어색하기도 하고 당장 하는 일과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초심을 다잡고, 방향을 설정하며,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고객, 시장과 커뮤니케이션하는 통로 하나를 더 내는 일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너무 빨리 그만 두고, 두려움 때문에 애초에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기도 한다. 성공의 확률은 어차피 희박한 것이란 생각으로 시도한다는 게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면 그 확률은 아예 0이 된다.

우리가 이름과 대표작으로 기억하고 있는, 피카소 이외의 예술가들도 그랬다.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보면, 실험하고 평가하고 수정하는 순환과정을 지속해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바라던 대로 풀릴 가능성이 높다.


시도한 일이 실패하더라도 나의 길은 이어진다.
실패는 포기해야 한다는 신호가 아니다.
모네, 마네, 세잔이 공개적으로 퇴짜를 맞았을 때
그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오만하거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컸기 때문이다.
<발칙한 예술가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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