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금 필요한 건, 빨리가 아니라 계속 뛰는 힘

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16-‘스텝’의 시대, 결핍과 잉여를 위하여

by 고미

며칠째 ‘스텝’을 밟았다. 누가 들으면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이후 후끈했던 춤바람이 났는가 싶을 수도 있겠다. 땀 좀 흘리는 상황까지는 비슷하다 우길 수 있겠지만 실컷 몸을 움직이고 난 뒤 개운한 느낌의 그것과 다른 찜찜함이 성한 곳 찾기가 더 힘든 낡은 집처럼 내려앉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인용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3일 통화정책방향결정 회의를 열고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연 2.25%로 올렸다. 통상적인 인상 폭(0.25%포인트)의 두 배인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에 나선 건 우리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결정 역사상 처음이다. 앞서 4월, 5월 두 회의에서 0.25%포인트씩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이번까지 세 차례 연속 인상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빅스텝의 사전적 의미는 ‘큰 발전’이다.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0% 인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0.50%인가’라는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면 ‘베이비스텝’이 나온다. 베이비스텝은 금리 변동에 따른 시장의 충격을 방지하고자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때 한 번에 0.25%포인트씩 점진적 변동 폭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도 왜 빅스텝을 밟아야 하는가로 시선을 조금 돌리면 고물가 상황 고착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한국은행은 1만원권 한 장으로는 혼자 밥 먹는 것 이상은 어려워진 현실에 임박한 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 등 현실적 이유를 나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오는 27일(현지시각) 통화정책결정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에 나서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금리 상단 기준으로 우리보다 높아지게 된다.

1%포인트 이상 올리는 울트라 스텝 가능성도 나온다.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015년 3월(1.75%) 이후 지금까지 1%대 아래로 저금리 기조를 지속해왔다. 8년만에 저금리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이자 부담 취약집단은 물론 전체 가계·기업·정부까지 경제주체마다 ‘고통의 적응시간’을 겪어야 하는 사정이 됐다. 겨우 코로나19 팬데믹을 넘었을 뿐인 데, 가혹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단체 등에서 앞다퉈 한계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도 급격하게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원화 약세 탓에 같은 제품이라도 더 많은 우리 돈을 주고 수입해야 하는 만큼 수입물가 상승이 국내 물가 급등세를 더 부추길 수도 있다.

국민 1인당 가계대출 이자 부담이 연 112만7000원에서 161만원으로 늘어난다.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로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어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답이 안 나오는 이런 상황은 스타트업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벤처투자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여기저기 몸살이 시작됐다. 많은 성장기 스타트업들이 매출보다는 투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기업 운영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이미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에 손을 대거나 인력 조정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하필 이럴 때 중소벤처기업부가 벤처캐피탈(VC)이 활용할 수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벤처 투자 표준 가이드 라인’을 내놨다. 흐름상 필요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당장 두 팔 벌려 환영하기 힘든 것만큼은 분명하다.

영화 탑건 : 매버릭 중 한 장면
영화 탑건 : 매버릭 중 한 장면

힘들다는 얘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하는 만큼 답답할 뿐이지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있다. 결핍과 잉여다. 바로 옆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도 있다. 영화 ‘탑건 : 매버릭’이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 그리고 다시 조종간을 잡은 톰 크루즈의 호흡만으로는 마하 10급 입소문과 극장가 존재감을 설명하기 어렵다.

어느 연령대 이상부터는 지난 1987년 전 세계 영화팬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탑건’의 향수를 얘기한다. 기다림에 부응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스코리, 히어로의 귀환만으로는 뭔가 모자라다.

도대체 더 뭐가 있었을까. 영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극장 스크린이 존재감과 과거와 현재의 교감, 톰 쿠르즈의 한국 사랑을 꼽는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톰 크루즈는 영화 개봉을 연기했다.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이닝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스크린에서 OTT로, 리얼이 아닌 CG로 세상은 변화를 수용했지만 그 안에는 외부 환경 변화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있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는 스펙타클한 항공 액션은 방구석 1열에서 맛보는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런 교훈을 남기고 말겠다’는 의지 따위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훈련부터 실전까지 자신은 물론 서로의 목숨을 거는 소통과 성장 과정에 대리만족을 한다.

자신의 에티튜드와 영화를 사랑하는 진심으로 벌써 10번째 방한을 즐기고 있는 톰 크루즈의 충성도가 '탑친자('탑건: 매버릭'에 중독된 관객들)'라는 팬덤을 만들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명대사 및 명장면 패러디 밈이 입소문을 부채질 했다. 결과는, 알고 있는 그대로다. 팬데믹 이전 '알라딘'(19, 가이 리치 감독), '보헤미안 랩소디'(18,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잇는 예매 역주행 및 개싸라기 흥행이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혹은 ‘그러니 어쩌자고’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그 안에 깔려 있는 결핍과 잉여 코드를 한 번 더 살펴보자고 운을 떼 보는 정도다.

스타트업 영역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 기관 교육은 물론이고 육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사업 초반 필요한 사업개발비나 공간, 인건비를 지원해 주거나 창업자 대상 바우처를 활용해 비용을 일부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럿이다. 업계 트렌드나 정보, 소식 등을 알 수 있는 뉴스레터 같은 장치도 활발하다.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게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일이라는 말도 있다.

그 사이에서 오히려 결핍이 발생한다. 전문 또는 필요인력의 부족은 사람을 찾는 것을 넘어 키우는 단계로 넘어섰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트렌드의 결핍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실행 단계 역시 손이 부족한 현실을 피하기 어렵다.

당장의 위기에 집중해 최소한의 필요자원만으로 운영할 경우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잉여를 찾아야 할 영역 역시 사람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잉여자원을 투입해 잉여가치를 만들고 잉여금을 만드는 구조를 통해 건강해진다. 결과물의 잉여가 다시 자원 잉여로 연결되고 혁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통해 동력을 키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이 도전의 아이콘이 된 배경에는 과감한 정책과 투자의 잉여가 있었음을 간과하기 어렵다. 힘든 시기가 당분간 이어질 거란 전망에 맞서 혼자 싸워보겠다는 객기는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 외부 투자를 통해 운영비를 조달하고 통장에 남은 투자금이 소진되기 전에 다음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생존 사이클은 짧으면 2~3개월, 길어도 1~3년 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 무슨 잉여가 있을까 싶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조직 차원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쉼표를 달 수 있는 여유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혼자 다 할 수 없으니 다같이 잘하자는 말이 있다. Teaming이 스타트업 성공의 모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개발방법론 중 하나인 애자일(Agile)은 특별한 무엇이 아닌 작업의 단위를 작게 쪼개는 것으로 중간에 프로젝트가 변경이 되더라도 실수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일종의 여유 만들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모두 '예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