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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바꾸면 어디든 출발선이 된다

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17-유니콘,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묻다

by 고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사진=에이스토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드래곤 길들이기


자폐인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하나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논란이란 단어가 붙는 일도 있지만 나름 긍정과 부정의 의견이 건강하게 오가는 것이 ‘남 따라’가 아닌 개인적 관심을 자극한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앞으로도, 뒤로도 ‘우영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말 그대로 다양하다. 정신의학과 의사들은 주인공 우영우의 자폐 양상에 대해 분석하고, 법조인들은 극 중 로펌의 모습과 섬세하게 법률계 자문을 받은 흔적을 읽는다. 장애 당사자나 가족, 관련 활동가의 의견도 풍성해 지금껏 잘 몰랐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장애 인식에 있어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맞고, 사회적 기회에 있어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도 맞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런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한다는 점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적으로는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고, 한 고비 넘으면 다음 고비가 기다리는 고구마 같은 전개 대신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됐음을 인정할 줄 아는 드라마같은 상사와 ‘봄날의 햇살’같은 친구와 보호하려고 하기보다 당당한 한 사람으로 믿고 힘을 주는 아버지까지 ‘아직 살만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 끌린다.

어느 쪽이든 세상을 보는 눈이,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소통이란 단어는 이런 배경에서 단단해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사진=에이스토리

그것을 알 기회는 사실 여러 번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10년 이란 시간을 통해 방법을 일러준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드래곤 길들이기’다. 크레시다 코웰의 원작 소설 시리즈를 리메이크해 2010년 극장판을 개봉했고 인기가 상승하자 이후 tv판 애니가 제작됐다. 3편으로 극장판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적잖은 화제를 몰고 왔다.

주인공은 ‘딸꾹질’이라는 뜻의 ‘히컵’이란 이름을 가진 겁쟁이 소년이다. 바이킹 무리를 이끄는 아버지와 달리 소심하고 허약하기까지 한 소년은 동물들과 교감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우연히 전설 속의 드래곤인 나이트 퓨리를 붙잡게 된 히컵은 그 심장을 꺼내서 족장인 아버지에게 바쳐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자신과 닮은 모습을 보고 결국 풀어주게 된다.

300년 동안 적이라고 생각했던 드래곤이 자신을 공격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의문스러웠던 히컵은 이후 나이트 퓨리를 관찰하다 꼬리날개 한쪽이 찢어져 스스로 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드래곤에게 투슬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꼬리 날개 반쪽을 만들어 자신과 함께 날 수 있게 해준다. 드래곤에 대한 오해를 풀고 오랜 전쟁의 원인을 해결하지만 히캅은 한 쪽 다리를 잃는다. 그래서 주저앉았거나 누군가를 원망했는가 하면 아니다. 투슬리스와 서로 부축하며 다음을 약속한다.

2편에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히컵은 바이킹 족장의 자리 대신 버크섬 밖으로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길 원하다. 아버지와는 생김과 성격이 다른 자신의 정체성도 고민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과정에서 둘이 가진 장애는 어떤 장애도 되지 않는다.

바이킹 족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은 히캅은 3편에서 혼자 날 수 있게 된 투슬리스와 이별한다. 아름다운 이별이다. “모든 드래곤을 길들일 순 없어. 언젠가 품에서 놔줘야 돼. 투슬리스가 혼자 날 수 있도록”. 누구도 찾지 못했던 드래곤의 파라다이스 히든월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드래곤 헌터와 부딪히지만 그들의 우정과 사랑, 이별을 막지는 못한다.

드래곤 길들이기 1

△장애가 아닌 서로를 지탱할 힘, 그리고


누구든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간절히 바라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흔한 스토리지만 그 것을 끌어가는 다양한 장치는 남다른 감동을 준다.

투슬리스는 히캅의 어설픈 사냥으로 꼬리를 다친다. 위기에서 히캅을 구하려던 투슬리스의 행동은 의도치 않게 한 쪽 다리를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절망에 빠지는 대신 보조 장치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땅을 내딛는다. 그들의 모험에 장애는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의지할 수 있게 하는 소재로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낸다.

드래곤을 조종하며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고 하거나 드래곤의 특이한 습성을 이용해 강제 노동을 시키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거나 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한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드래곤길들이기2


히컵과 라이더 일행은 항상 드래곤을 인간에게 종속당하는 애완동물이나 도구로 보지 않고 하나의 생명체로써 존중하며,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드래곤도 동물이라 할지라도 자신들과 동등하게 친구로 대한다. 성장하며 더 단단하게 관계를 쌓는다. 우영우의 힐링 포인트와 어딘지 비슷하다.

전 편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는 ‘결핍’이나 ‘우정’보다는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속마음과 생리와 사연을 알지 못했던 인간과 드래곤 무리가 결국 서로를 알아가면서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운명공동체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심지어 투슬리스를 포함한 드래곤 무리들은, 그동안 여러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했던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로지 믿고 이해하고 알려고 하는 노력들이 소통으로 이어졌음이다.


△K-유니콘 사업 3년차 성적표


어쩌다 ‘우영우’에서 드래곤 길들이기까지 돌고 돌았을까. ‘유니콘’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꿈꾸는 목적지 유니콘 얘기다. 10억달러라는 엄청난 기업 가치에 닿았을 때 비로소 획득할 수 있는, 상상 속 동물처럼 희소성이 있다는 이유로 생겨난 용어다.

최근 언론에 이 유니콘에 대한 얘기가 꽤 많이 회자됐다.

벤처 4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2020년 시작된 정부의 유니콘 육성 프로젝트, 이른바 ‘K-유니콘’ 사업은 2022년까지 20개의 유니콘을 정부 차원에서 키워내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당시 정부는 유니콘 기업이 IT와 플랫폼 사업 부문에 국한돼 있는 것을 해소하고 바이오헬스·미래차·시스템반도체 등 ‘빅3’와 디지털·네트워크·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분야 위주로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를 보면 지난 3년간 해당 분야 스타트업 250개와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개를 발굴해 지원 중이다. 전문평가단과 국민평가단을 구성하고 선발된 기업들에게 최대 159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자금 지원을 위해 1조원 규모의 점프업 펀드가 조성됐고, 유니콘 등재 단계에서 모태펀드가 최대 200억원까지 매칭투자하는 K-유니콘 매칭펀드도 마련됐다.

규제 해소와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끔 하는 제도적 지원도 이뤄졌다.

K-유니콘 프로젝트는 크게 두 기업 가치 1000억원 이하 업력 7년 이내의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아기유니콘 200 육성사업’과 1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예비유니콘 특별보증’으로 나뉜다.

정부는 아기유니콘 200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혁신적 사업모델과 성장성을 보여준 스타트업 40개사를 아기유니콘으로 선정했다. 업력이 7년 이내이면서 누적투자액이 2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의 잠재력 충만한 기업들로, 최종 경쟁률은 6.3대 1이었다.

정부의 지극정성으로 지난해 12월까지를 기준으로 아기유니콘 100개사의 매출 총액은 9273억원, 고용 5371명, 후속 투자는 28건·3671억원을 기록했다. 예비유니콘 76개사의 경우 매출 3조1395억원, 고용 1만2883명, 후속 투자 31건 1조9191억원에 달했다.

성적표만 펼쳐보면 흡족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런데 말입니다’라고 침착할 것을 주문한다.

아기유니콘 기업 10개사 가운데 8개사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집중됐다. 아시아비즈니스동맹이 운영하는 통계뱅크가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아기유니콘기업 현황자료(2020~2022년)를 토대로 지역별로 소재지를 분석한 결과 총 160개 기업 가운데 무려 135개 업체가 서울과 경기도에 몰려 있었다. 대전에는 5개사, 부산과 대구에는 각 3개사가 소재하고 있었다. 인천과 경남에는 각 1개사가 있었으며, 울산·전남·강원·세종에는 아예 없었다. ‘제주 1개사’라는 숫자가 눈에 띌 정도다.

아기유니콘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일부 지역에는 전무하다는 건 지역 불균형 심화를 예고한 것이다. 우리나라 벤처 창업과 투자는 지금도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중기부가 집계한 지난해 벤처 투자 실적을 보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투자액은 전체의 75.1%(5조7672억원)을 차지한다. 반면 5개 광역시 비중은 9.3%(7100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광역시가 10%에 근접한 것도 대전이 있기 때문이다. 대전을 제외하면 4곳이 모두 1% 안팎에 머물렀고, 지방에서 비중 1%가 넘는 곳은 충남과 경북뿐이었다.

△“그것이 최선입니까”


‘유니콘’이라고는 하지만 정부의 관리로 큰 태생적 약점은 시장, 특히 글로벌 무대에서 제 평가를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시장 평가와 동시에 치열한 글로벌 무대에서의 생존력을 증명하는 데 한계성도 있다.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자생적으로 등장했던 유니콘들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는 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점도 우려를 사고 있다.

보다 솔직하게 지적한다면, 거창한 목표에 비해 내실이 부족한 지원에 대한 목소리도 들린다. 아기유니콘200 육성사업의 경우 기업 당 최대 169억원을 지원하는데 대부분 융자로 구성돼 있어 실제로 지원해주는 현금은 3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미 100억원 가량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대상인데, 여기에 3억원을 얹는다고 과연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날까 하는 반문이 나온다.

그러니 시선을 조금 바꾸고 히캅와 투슬리스가 그랬던 ‘소통’의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유니콘은 자신들의 힘으로 원하는 하늘 난다. 또 다른 유니콘이 원하는 무대는 시장이다. 정부는 그들의 행보에 방해물이나 걸림돌이 없도록 입체적인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역동성과 속도가 생명인 분야로, 정책이 스타트업 특유의 역동성과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이미 적잖은 스타트업들이 규제 샌드박스를 얘기한다. 업력을 기준으로 하는 일반 기업들과 달리 분야별 트랙으로 선택과 집중 효과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지 오래다.

유니콘이나 상장기업의 숫자 보다는 내실있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모두가 날 수도 없고, 당장 날지 못한다고 기회를 주지 않는 것도 옳지 않다는 얘기다. 하물며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 드래곤들도 각각의 개성에 맞게 역할을 맡기는 것으로, 큰 위험을 헤쳐나가는 기회가 되지 않던가.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배경 중에는 지역 균형 발전과 그 동력이 될 인구 유출을 막는다는 원대한 목적이 있었음도 복기한다.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미 오래됐다. 이를 위해서는 창업이 일어나야 하고,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창업도 투자도 수도권에 쏠린 상황이 계속되면 지방은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역 산업과 경제가 발전하지 않으면 인구 이탈로 지역 소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기반이 약해서러는 핑계도 이젠 언 통한다. 하나라도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벤처 투자부터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우영우’에게 달린 ‘이상한’이란 꼬리표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지닌 편협한 시선이다. 그가 보는 세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애써 찾아보지 않았던, 아니 굳이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현실이다.

빙빙 돌아왔지만 하고 싶은 얘기는 사실 단순하다. 유니콘 날개를 단 스타트업 육성으로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불리한’이란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힘들 것 같다’고 멈췄다면 누군가의 딸 우영우도, 의족을 한 바이킹 족장 히캅도 없었다. 역할과 위치를 이해하고 할 수 있음을 믿고 끌어주는 힘이 필요하다. 방향을 바꾸면 어디든 출발점이 되고, 비상을 꿈꾸는 스타트업에게 ‘하늘’은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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