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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겠다는 다짐, '정치적'이라도 괜찮아

스밥6기 에디터가 되다 18-모든 스타트업이 똑같을 수는 없잖아

by 고미

△ 팽나무, 유명세를 타다

문화재청의 여름이 부산하다. 인기 드라마에 등장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 팽나무(보호수)에 대한 실제 문화재적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조사단을 현장에 파견, 천연기념물 지정조사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행복로를 만들기 위해 잘릴 위기에 처한 ‘소덕동 팽나무’로 드라마에 출연한 효과는 이미 상당하다. 수령은 약 500년 정도, 수고(나무 높이)는 16m, 가슴둘레 6.8m, 수관폭(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최대 폭)이 27m 정도로, 팽나무 중 비교적 크고 오래된 나무에 속한다는 사전적 정보는 물론이고, 어른 4~5명이 안아야 할 만큼 크고, 입지 환경과 생육 상태도 좋아 지난 2015년 7월 마을 보호수로 지정된 사정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사실 유명세를 타면서 이미 불법 주정차 문제에 함부로 버린 쓰레기까지 주변이 시끄러워졌다는 말도 나온다. 씁쓸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소덕동 팽나무’로 나오는 창원 북부리 팽나무. 창원시 제공


팽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한다. 중남부 지방에서는 마을의 대표적인 당산나무 중 하나이자 장수목으로 관리를 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노거수로 지정된 팽나무는 예천 금남리 황목근(팽나무)과 고창 수동리 팽나무 등 아직까지 2그루 뿐인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재청은 조만간 천연기념물분과 문화재위원 등과 함께 이 나무의 역사와 생육상태 등 문화재적 가치를 현장 조사하고, 마을 주민과 지자체와 함께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좋은 일이다. 제주에도 마을마다 폭낭이라 부르는 팽나무가 있다. 드라마 속 소덕동 사람들이 그러했듯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폭낭과 관련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가깝다. 제주 섬의 역사가 모질고 굴곡진 만큼 그 사정을 견디며 단단히 뿌리 내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 역시 폭낭이다. 그 존재를 알면서도 개발 광풍에 밀려 기억이라는 이름의‘영정’으로만 남은 것도 있다.

잠깐 옆길로 새기는 했지만 드라마 인기 덕에 천연기념물 심사를 받게 된 팽나무를 보다 스타트업계 내부의 조용한 이슈를 생각하게 됐다.

취업박람회 자료 사진

△스타트업에 취업하고 싶어요?!


얼마 되지 않은 조사결과다.

한 취업 플랫폼에서 구직자와 직장인 1063명을 대상으로 '스타트업 취업 의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72.3%가 '스타트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10명 중 7명이 스타트업 취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채용시장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특성이 이 같은 현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이들 세대는 금전적인 보상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벨'과 '개인의 발전 가능성'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 구직자가 스타트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유로 '기업의 높은 성장 가능성'이 52.9%(복수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일하면서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서'(35.0%), '직원 복지제도가 우수해서'(29.5%),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을 것 같아서(27.2%)' 등의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구직자들은 스타트업 취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기업의 높은 성장 가능성'(43.7%)을 꼽았다. 이어 △수평적인 조직문화(38.0%) △자율적인 기업문화(30.1%) △다양한 직원 복지제도(26.6%) △직원 개인 역량의 발전 가능성(24.6%) 순으로 호감을 표시했다.

같은 조사에서 직장인·구직자들이 ‘가장 혜택을 받고 싶은 복지제도’(복수 응답)로 △주4일근무제(29.0%) △유연근무제(26.8%) △재택근무제(20.8%) △교통·유류비 지원(17.7%) △본인·자녀 교육비 지원(15.9%) △스톡옵션 제도(14.3%)를 꼽은 것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현실은 조금 다른 얘기를 한다.

인력 채용을 위해 고액의 연봉과 스톡옵션, 무제한 휴가제 같은 유인책을 꺼내 들지만 불안정한 직업 안전성으로 취업 준비생과 경력자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는 사정이 그렇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사를 보면 국내 벤처 기업 10곳 중 6곳은 소프트웨어(SW)분야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조사 대상 기업의 51%는 채용한 SW분야 인력의 이직과 퇴사가 ‘타 직군 대비 많다’고 느꼈다. 전공자를 채용한다고 하더라도 기업 요구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3개월 정도의 교육 시간이 소요되는 등 구직자와 일자리 간의 간극은 한참 벌어진 상태다. 뭐가 어디서부터 엇갈린 것일까.

창원 북부리 팽나무 드론 사진

다시 ‘정치적’이 된 팽나무를 살펴보자.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정치적’이란 말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올해만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르느라 ‘정치’라는 단어에 불편한 반응이 먼저 나와서 그렇지 원래 ‘정치’는 크게 나라를 다스리는 일, 풀어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활동을 말한다. 더 나아지게 조율하고, 중재하는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정치적 접근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는 ‘정치적’이란 단어에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한다는 의도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이 대치하고 갈등이 커지면서 끝내 마을이 두 동강이 나는 것을 눈뜨고 지켜봐야 할지 모를 상황에 팽나무 카드가 등장한다. 천연기념물이 되면 마을 발전에 지장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마을을 지키는 의미로 바뀌는 모든 것들이 사실 ‘정치적’이다.

어느 사정에 어떤 입장이나 조건을 내밀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상식적으로 현실을 보라


세상은 복잡하기 짝이 없고 인간은 늘 그렇듯 불완전한 존재다. 누구도 편견과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종종 내가 옳다거나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휘둘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이미 잘 알고, 익숙했던 어떤 것들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고 겪어 본 후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기자 바로 사과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직장상사나 늘 손해 본다는 생각과 경쟁심, 차별에 둔감했던 자신을 인정하고 행동하는 친구이자 동료는, 안타깝지만 흔치 않다. 드라마에 등장한 정치적이라는 말은 알고 보면 ‘상식적’이란 메시지를 안고 있는 지 모른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스타트업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어느 것이 펙트일까. 아니 굳이 펙트를 찾아야 하는지부터 물어본다. 현재 상황을 보면 정부의 정책부터 스타트업 창업에 집중돼 있다. 시작할 때는 모르지만 동네 식당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식재료의 안정적 확보와 음식 맛 유지와 접객 서비스 제고, 디지털 시스템 접목 등 영역별로 ‘손’이 필요해진다. 경제적 사정 등을 감안하면 이 중에서 당연히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고 환경 변화에 따라 손을 늘리거나 줄이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이라는 현상을 보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보니 취업 희망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다만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면서 시작도 힘들고, 막상 발을 들여놓고도 이내 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정치적’을 외칠 수밖에 없어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상식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라는 ‘꼰대’소환이다. 지금의 속도감을 보면, 아마도 드라마 속 팽나무는 운이 좋아 천연기념물이 되면 사람 좀 끌면서 반짝 호황을 누리다가 이내 주변에서 쏟아지는‘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는’불편함에 홍역을 치르고 싸이월드의 추억처럼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아니면 비슷한 수령이나 카리스마를 지닌 노거수의 천연기념물 인증 러시를 유발할는지 모른다.

만약 천연기념물 지정이 되지 않으면 이내 주변에 하루가 멀다다고 뭐가 생겨나고, SNS 인증 바람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세미나나 학술대회 같은 것이 한동안 꼬리를 무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스타트업 사정도 비슷하다. 스타기업이 되고 유니콘이 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 좌절 같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어느날 느닷 없이 운 좋게 같은 공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늘 다음을 생각하고, 다시 스타트 선상에 서야 한다는 숙명 같은 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팀’이 될 수 있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는 그 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한 트렌드 조사기관의 모니터링(전국 만 15~59세 직장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기 퇴사’ 및 ‘정년’ 관련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7명(71.9%)이 평소에도 종종 퇴사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해볼 만한 대목은 20대 응답자의 경우 직무에 대한 비전(20대 31.3%, 30대 26.5%, 40대 28.8%, 50대 26.6%), 미래 지향성 부족(20대 28.6%, 30대 16.8%, 40대 20.1%, 50대 25.9%) 등 자신의 ‘성장 가능성’과 연결해 퇴사를 고민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 점이었다.

MZ세대라고 하더라도 워라벨에 대한 생각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 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일자리’(66.5%)를 희망했지만 사실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실제로는‘워라벨은 성장이라는 목표에 도달한 이후에나’라는 답변도 있었고, 연봉이라는 보상을 워라벨로 대체하는 사례도 있었다.

스타트업 차원에서 인재확보를 위해 자율적인 문화와 복지 등을 내세우며 신경쓰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뉴스에 등장할 정도로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도 한정적이다.

고 이응노 화백 '군상'(1988)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도 하나같이 워케이션을 활성화하고, 상장기업 유치 등으로 성장동력을 키우겠다고 하지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드라마식 정치적’접근 아닐까. 필요한 것을 찾고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설득과 이해, 배려의 과정을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 지금 나온 말도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새어나온 목소리에 귀를 제대로 기울이라는 얘기다.

팽나무는 천연기념물이 아니어도 그 자리를 지킨다. 눈에 보이는 가지보다는 깊고 넓게 뻗은 뿌리로 지탱하는 것들을 이길 재간이 었다. 그 뿌리를 흔드는 것은 오가는 바람이 아니라 짧은 생각과 이익, 성과에 치우친 조바심과 성급함, 다들 알다시피 사람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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