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회 스밥-섬이어서 괜찮아, 섬이라도 괜찮아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에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제주도(道)를 제주도(島)로, 탐나(라)는 섬이라는 자부심을 깔고 ‘섬이라도 괜찮아, 섬이어서 괜찮아’판을 펼쳤습니다.
운영진 중에서도 혼자 제주에 있는, 섬이다 보니 기획부터 섭외 등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역시 섬이라 가능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수눌음이라 부르는 제주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있더라고요. 어려울 때면 손도 빌려주고, 그릇부터 공간까지 함께 마련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던 그 것이 적재적소에서 이미 준비된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질문도서관이 무대가 되고 제주 음식을 모티브로 도약을 꿈꾸는 입말음식에서 딱 좋은 ‘저녁 반’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각각의 방법으로 천금같은 금요일 저녁을 아낌없이 나눠주신 애월아빠들과 제주스퀘어, 플레이스캠프 제주까지 넘쳐도 좋을 에너지를 쏟아주셨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찬찬히, 꼼꼼히 살펴드립니다.
· 함께 한 날 : 2022년 7월 29일(금) 19:00
· 모인 곳 : 제주시소통협력센터 1층 질문도서관
· 밥 손님 : 제주라는 공통점으로 손을 든 4명 (김두원 대표님 김남철 대표님 김명은 대표님 김가은 대표님)
· 호스트 : 양경준 대표님 전정환 대표님 외 게스트 김나솔 대표님 이승재 대리님
· 행사 지원 : 제주시소통협력센터 애월아빠들 제주입말음식 아뮬렝 제주스퀘어 플레이스캠프제주
2001년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떠오를 줄이야.
세상에서 가장 바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간에 얽매여 살아가는 남자가 비행기 사고로 혼자 무인도에 떨어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과 사고를 하게 된다는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생존을 위해 이전의 모든 삶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던 주인공은 우연히 ‘동료’를 만나고 표류한지 4년 1500일만에 섬을 빠져나갈 방법을 고안해 실행에 옮깁니다. 바다에서 여러 일을 겪으면서 동료를 잃고, 천신만고 끝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만 모든 것은 예전과는 달라져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또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좌절하기 보다는 덤덤이 받아들이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의 무인도 생활에는 사실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슬쩍 인용부호로 동료라는 힌트를 던졌습니다만, ‘윌슨’은 배구공입니다. 그 것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했냐고요? 옆에 있었습니다. 헤어짐이란 과정까지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을 묵묵히(?) 일러줍니다.
‘지역’이라는 단어는 사실 힘이 약합니다. 수도권 중심의 구조 속에서 뭔가 모자라고, 부족한의 느낌을 벗지 못합니다. 스타트업들에게, 어쩌면 ‘윌슨’이 필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와 고민 같은 것을 듣고 나누자는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생각은, 네,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모인 대표님들에게서 처음 제주라는, 섬이라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지만 녹아있었습니다.
김남철 대표님은 감성 기념품과 캐릭터 콘텐츠를 활용한 제주애퐁당을 운영 중입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적극적인 공격 경영으로 매장을 내기도 했고 지금은 애니메이션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 중입니다.
김두원 대표님은 ‘설문대할망의 마음을 담은 집’이라는 뜻의 제주설심당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제주보리를 이용한 가공식품과 타 지역 차 전문가와 규래차 등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하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컬러랩제주 김명은 대표님은 포항에서 제주 이주를 감행한지 이제 5년차입니다. 색감을 이용한 체험 프로그램에서 시작한 작업은 고사리와 로즈마리 등 제주 청정환경을 모티브로 한 페브릭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제주살이 한 달 반차라는 소·도시 김가은 대표님은 골목길만큼 다양한 제주시 원도심의 성격을 이미 간파하고 그 안에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들을 엮고 있었습니다.
게스트로 손을 보태주신 제주스퀘어 김나솔 대표님까지 어쩌다 모두 김 대표님이라 어떻게 구분해 정리해야 하나가 가장 큰 고민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퐁당·설심당·고사리·소도시님이라고 이름표를 달아보았습니다.
입말음식(대표 하미현)의 한 상은 제주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현대식으로 해석한 것으로 차려진 순간부터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같이 먹는 대신 인증샷을 찍기 바빴다면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만하죠?
제주에는 ‘반(그릇)을 나눈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섬 환경에 잔치나 장례, 제사 같은 큰 일이 있을 때 넉넉하게 음식을 준비해 주변과 골고루 나눠 먹는 문화입니다. 괴깃(고기)반, 떡반 같은 것이 흔한 데 이날은 김태자 어르신으로부터 듣고 배운 빙떡과 옥돔과 제주 텃밭에서 얻은 식재료 튀김 꼬치 등 손으로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가 차롱으로 만든 반에 올랐습니다. 보리콜라도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남다른 비주얼에 놀란 것도 잠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망설이는 사이 하 대표님이 나서주셨습니다. 김을 두룬 빙떡은 원래 잔칫상에 올랐었다는 것이며, 7월이 제철인 꽃멜로 만든 소스와 청귤 간장 소스 조합까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 스밥이 처음이라 긴장한 분위기를 푸느라 양경준 대표님이 2015년 7월 시작한 ‘밥 사주세요’의 전설(?)을 설명해 주셨고, 이래서 잘 됐다는 멋진 얘기 말고 평소 알고 싶었거나 외로웠던 일들을 편하게 얘기해 보자고 자리를 펴 주셨습니다.
섬 이야기라고 우리끼리는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대표님들이 꺼낸 것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웠습니다.
고사리님은 제주 양치식물에서 해풍에 잘 자라는 로즈마리를 지나 100살이 넘은 농가 주택을 개조한 얘기, 색으로 관계를 만들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과정들을 제주에서 배웠다고 귀띔했습니다. 처음 정착하기 힘들었던 사정도, 살면서 배우는 것들도 모두 제주 어르신들에게 배웠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퐁당님은 제주 대표 캐릭터 작업을 위해 로비 같은 방식 대신 계속해 신제품 개발을 하고 다양한 콜라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라봉, 양퐁당, 고르방 등 대표 캐릭터와 이중 한라봉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는 배경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해녀와 돌하르방 콘텐츠가 남발되는 바람에 매력이 떨어지는 점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설심당님은 농협에서 9년 정도 일을 하다 가족들을 위한 마음에 창업을 한 이력을 공개하고 제주산 농산물을 이용한 디저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보리를 고른 이유와 그렇게 만든 ‘보리개역’이라는 제품을 알려주셨습니다. 잘 말린 작은 귤 껍질을 티백 대용으로 활용한 차를 만든 얘기도 했습니다.
소도시님은 자신이 탐색하고 있는 소도시의 이미지와 밖에 나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 ‘서울 사람’의 느낌을 꺼냈습니다. 사진과 텍스트로 모든 것들을 책이나 전시, 영상 등 문화 콘텐츠로 풀어내는 영역이 제주와 어울린다는 말도 보탰습니다. 서울에도 있는 익숙한 무엇 보다는 낯설고 새로운 것에 끌릴 수밖에 없는 사정, 특히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지도 작업의 기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각각의 얘기는 에피타이저에 불과했습니다. 손을 보태주러 오셨던 게스트 두 분이 감초 역할을 하며 분위기는 보다 화기애애해졌습니다. 투명한 밤하늘 아래 모닥불을 피워놓고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님이 던진 ‘갈증’이란 단어가 던진 파문은 컸습니다. 창업하고 4년 반 동안 하고 싶은 것에 목말라 있었다는 담백한 고백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대한 흥미, 고민을 풀어가는 방법을 정리하고 조언하는 서비스를 상품화하는 작업들을 꺼냈습니다. 실패하거나 잘못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보다는 서둘러 답답한 것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에 대한 설명 뒤로 스밥 2기 운영진으로 제주에서 재창업을 한 건어물연구소 어물랭 김주호 대표님의 선물, 시원한 캔 맥주를 꺼냈습니다.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저절로 그렇게 되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거쳐 핵심을 빠르게 캐치하고 각자가 가진 장점을 찾는 것에 대한 갈증, 큰 조직 안에서 일을 하면서 미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한계에 부딪히며 느낀 갈증, 사업 확장 고민과 네트워킹에 대한 갈증까지 차례로 테이블 위에 올라왔습니다.
‘갈증이 뭐가 대수라고’할 수도 있지만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갈증은 가장 본능적인 욕구와 연결됩니다. 용천수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물길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말라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간절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나 할까요.
여기에 코로나19가 위기였지만 시야를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는 경험도 나눴습니다. 외부 환경에 취약한 섬이다 보니 각자 선택한 분야는 달라도 같이 힘들었습니다.
코로나19 2년 동안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 사정도 각별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상황에 금융 투자를 받아 매장을 내는 모험을 감행한 퐁당님은 캐릭터 사업 재투자로, 설심당님은 지역과 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협업 모델로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으로 시장에 틈을 냈습니다. 늦게 스타트업 관련 과정이나 지원 사업을 알고 도전하고 있는 과정도 공유했습니다.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조직 관리로 이어집니다.
지역이라면 갖는 고민 중 하나인 인재 확보와 관리 문제가 제주라고 피해가지는 않았습니다. 창업 때부터 호흡을 맞춘 중간 조직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안정적이었지만 사업 운영에 필요한 경력자를 확보하는 일은 계속해 힘들어진다는 사정과 조직의 위기를 부르는 ‘30명’법칙이 공감을 샀습니다.
인건비 지원 사업을 활용해도 사람 구하는 일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사정은 정상적인 스타트업 대표들이 갖는 일반적인 고민이었습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대표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구체적인 언제를 지목할 수는 없었지만 토할 만큼 엄청난 시행착오와 경험, 연륜을 쌓아야 하는 일인 것 만큼은 분명했습니다. “동료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뽑지 말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양경준 대표님의 말이 엄청 부러웠지만 그 만큼 많은 고난과 실패가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세대교체가 이뤄질수록 성향이나 성격으로 인한 갈등이 늘어나는 점도 걱정을 샀습니다. MZ세대인 플레이스 캠프 제주 이승재 대리가 등판했습니다. 이승재 대리가 가진 고민은 밥상을 위해 모인 대표님들과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승재 대리는 동기 부여와 방향성을 얘기했습니다. 물론 처음과 달라진 부분, 간혹 자신의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실망, 비전이 무엇인지 모를 때의 막연함 같은 것은 있지만 일에 대한 이해도와 ‘내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오늘을 있게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대표님들의 궁금증이 폭발했지만 아쉽게도 마무리할 시간을 넘긴 상황으로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참석자들의 눈을 유독 반짝이게 했던 것은 전정환 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님의 경험담이었습니다. “타 지역에 강연을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지역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생기나요’다. 제주에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습니다. ‘그게 말이 돼’. 그랬습니다. 전 전센터장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제주에서는 지역민이면 지역민으로, 이주민이면 이주민으로 각각의 영역을 만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물들거나 스며들며 결이 비슷해지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어우러지는 특성을 가집니다. 물론 사정에 의해 서울에 지사를 내기도 하고 하지만 제주보다 훨씬 창업가들도 많고, 기회도 많은 지역들에서 ‘서울로 떠난다’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생기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고 소도시님께 여쭤봤습니다. 소도시님이 만난 원도심 사람들 중에는 지역 토박이도 있지만 가능성을 찾아 제주에 온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외지에 와서 이런 건 힘들텐데, 이렇게 하는 게 좋을 텐데 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연결도 느꼈습니다. 원도심을 알리고 싶다는 미션이 있으니까 지역의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고 잘 전달해주고 한다는 것을 알면 특별히 배척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양경준 대표님은 그것이 어쩌면 개방적인 창업 생태계 특성 때문일지 모른다고 정리했습니다. 그 얘기는 생태계는 형누나가 만드는, ‘끌어주고 밀어주는’환경과 연결됩니다. 진정성을 가진 핵이 단단하게 지탱할 필요도 있지만 명품 숲을 만들 듯 적당히 거리를 두고 물과 양분, 햇볕, 바람을 나눌 줄 아는 것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한다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조금은 폐쇄적인 지역 분위기도 그 안에서 연결을 희망하고 연대의 힘을 믿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필요에 따라 촉매 역할을 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잘 만들어진 성장 영화처럼 펼쳐졌습니다.
뒷정리를 나눠 하면서 하나같이 숨을 쉬는 것 만큼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바람의 섬 아니랄까봐 ‘다시 모였으면…’하는 바람도 솔솔 나왔습니다. 처음 얘기했지만 제주 스밥은 이제야 시작됐습니다. 아직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허기를 느낄 일이 많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 다음에 또 밥 먹어요.
8월 173회 스밥은 과연 어떤 맛이 나올지 이미 군침부터 돕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밥심은 진리라고 믿는, 6기 에디터 그레이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