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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Jan 17. 2020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삶, 공감하기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를 알았다

“이렇게 바다를 보는게 몇년만인지 모르겠네”

엄마의 혼잣말에 ‘덜컥’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래도 아주 천연덕스럽게 “봐, 딸밖에 없지. 같이 바다에도 오고…”

드니즈 살렘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자식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애정을 지닌 전형적 엄마와 독립적 삶을 추구하는 딸 그라시의 팽팽한 긴장감은 혼자 남겨진 엄마가 나이 50에 처음으로 바다를 찾아가 소중한 ‘자아’를 발견하면서 풀어지는 듯 한다. 하지만 복잡다난했던 일상 속에서 겨우 엄마를 생각해낸 딸이 돌와왔을 때,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딸은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와 시간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지 않은지, 몇권이나 되는 앨범을 뒤적거렸지만 함께 찍은 사진은 몇장 되지 않는다.


그렇게 매번 어긋나는게 엄마와 딸의 관계 속에서 엄마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데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사랑해”하는 말에 금새 얼굴을 붉히는 엄마는 아직 ‘소녀’다. 이세상을 사는 여자이자 딸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많이 다른 탓에 함께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엄마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은 아마도 ‘연민’인 듯 싶다. 사랑은 짧고 편협하지만 연민은 잔잔하게 오래도록 계속 된다.

엄마와의 여행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며칠을 고민해 장소를 정하고 지갑을 몇번이나 확인하고 혹시 ‘괜찮다’포기할까 몇번이나 다짐을 받는다.

‘딸’인 동시에 ‘엄마’에게 아직‘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잠깐의 추억을 같이하고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일.

세상 모든 엄마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따뜻함과 평화로움 그 자체의 바다를 찾아 길을 나선다.


가까이 있지만 ‘함께’가 서툰 만큼 가능한 ‘대화를 위한 여유’를 넉넉히 준비하고 여자라는 공통점을 살릴 수 있는 것들을 골랐다. 제주라 다행이다. 해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


“플라잉 낚시대 00원, 햇빛을 가릴 모자 00원, 여행용 가방 00원….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쓴 돈은 아깝지 않습니다”했던 모 CF 카피 처럼 ‘엄마와의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유가 넘친다.

엄마 의견은 ‘싹~’ 다 무시(?)하고  다른 가족들은 모르는 엄마와의 ‘비밀'을 만드느라 혼자 들떠 있는 사이 뉘엿뉘엿 해가 짐을 싼다.


‘다음에…’란 약속이 지켜질지는 모를 일이다. 한참이나 밝은 표정으로 신이 났던 엄마는 이제 슬쩍 “좀 빨리 갈수없냐”고 잔소리다.너무도 크고 높은 존재였던 엄마이지만 지금 엄마는 올해 ‘6학년’을 졸업했다. 7학년이란 단어는 아직 어색해 하신다. 나는 ‘4학년’. 조금씩 인생의 거리가 좁아지는 느낌이 온다. 

“재밌기는 하더라, 서울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자랑해야지”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귀를 즐겁게하는 ‘솔’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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