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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Apr 22. 2020

온 힘 다해 피어난 '봄'에게 배운다

삶 공감하기 - "꽃들에게 물어봐"




코로나 19 바람에 봄 전령사 꽃 소식·축제까지 실종
 자발적 격리·사회적 거리 두기에 '마음의 감기' 걱정
 피고 또 지고, 계절 남기고 넘기는 과정 '삶'과 닮아



봄이다. 저절로 흥겨워지는 계절이지만 올해는 어쩐 일인지 안으로 움츠러든다. 울컥. 상쾌하게 이마를 쓸어주고, 포근하게 품어주는 것 같던 바람도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서슴없이 등을 떠미는 것처럼 '봄'이 아프다.

# "움직여 그럼 조금씩…"

 "봄봄봄…"하는, 그 흔한 봄노래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어김없이 꽃은 피었다. 주말마다 정신없이 밖에 나갈 이유가 됐던 축제도 모조리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우습다. 우리가 언제부터 꽃을 보러 축제를 갔던가. 아님 꽃 때문에 축제를 했던가.

코로나19 때문에 바깥 출입이 망설여지고,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지역 '확진자'소식에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꽃 때문에 먼 길을 나서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온 힘을 다해 피어난 꽃처럼, 지금 힘든 사정도 이겨낼 수 있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빚어진 '코로나 블루(Blue)'에 다른 색을 입힐 수도 있을 일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선을 따라 꽃을 읽어보면 안다. 학창 시절 달달 외웠던 '꽃'(김춘수 시)은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존재감을 자랑했다. 시인은 '꽃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하고 듣자고 한다.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제힘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자고 노래한다. 그리고 슬쩍 "말 없는 꽃들 앞에 네 발길을 멈추어라"고 가슴을 얹는다.

감염병 불안에 '마스크'피로감에 잊고 있던 것들이다. '오늘'이라는 단어에는 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얇은 껍질 하나 의지한 채 살 에이는 찬 바람과 꽁꽁 얼어붙은 땅이나 줄기에 몸을 기대 겨울을 난 것들의 외침이다. 그저 고운 게 아니라 그래서 더 곱다. 습관처럼 향과 색에 먼저 취하는 대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통해 벌써 겨울과 봄 사이 환절기를 잊은 일상에 속삭일 거리가 생긴다. "움직여, 그럼 조금씩 벗어나게 될 거야"

# 불편한 거리감 덜기 

이 시기면 흔했던 '기침'이 불편해졌다. 밤새 안녕하시냐는 기침도, 꽃가루나 미세먼지, 낮밤 다른 온도차를 견디다 못해 쏟아내는 기침, 하다 하다 꽃이 피었다는 신호까지 눈치가 보인다.

예전에는 "괜찮냐, 잘 챙겨야지"하는 위로와 관심이 돌아왔었는데 이제는 슬그머니 간격을 두고, 마스크를 챙기는 거리감만 생긴다. 다시 울컥.

며칠 전 잔잔한 입소문을 탔던 지하철 2호선 안내 방송에 기분을 추스려본다.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 영화의 대사처럼 오늘 좋았던 일만 생각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는 게 어떨까요. 지치고 아팠던 거 여기(지하철)에 두고 내리시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힘들었던 하루 끝에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선물 받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발끝까지 떨릴 때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은 감동이다. '힘든 것 다 안다, 괜찮다'는 위로 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 화사하게 피어야 꽃인가, 진한 여운을 남긴 그대가 '꽃'이다 싶어 코 끝이, 두 볼이 간지럽다. 누구나 그리고 모두가, '꽃' 필 때다.

# 보자기 매듭을 풀듯

 한동안 '코로나19'라는 제목으로 현황을 전하고, 예방법을 홍보하던 메시지에 공적 마스크 관련 정보가 보태졌고, 이제 '마음의 감기'를 이겨내자는 내용이 추가됐다.

불안감이 '병'이 되고 있다는 경고다. 마음이 부정적인 것에 지배되면 좋던 것도, 아니 평범하던 것도 성질이 바뀐다. 자발적 격리에 몸이 굳어가서 마음이 힘들어진 건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며 몸까지 삐걱거리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꽉 묶은 보자기 매듭처럼 단단해지기만 해서는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왜 싸뒀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가 족쇄가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확 풀어내는 지혜는 여기에 필요하다.

꽃들이 봄 햇살의 간지럼을 이기지 못해 앙다물었던 봉우리를 터트리 듯 풀어야 산다. 이 봄에는 꽃들에게 배우자. 삶이 늘 순탄하지 않아서 한 발 나아가면 두 세발 밀리기도 하고, 잠깐 쉰다는 틈도 내주지 않는 것처럼 꽃들도 어김없이 피고 다시 진다.

진다고 슬퍼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계절'을 넘기는 일이다. 남기는 일이다. 계절이 바뀌면 꽃은 다시 핀다. 기다리면 봄이 온다. 꽃 필 자리가 생긴다. '그러니 함께 이겨내자'는 말은 생각없이 던지는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이기도 하다. 때마침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플라워 챌린지도 한창이다. 나를 위해, 아니면 더 힘든 '너'를 위해 오늘에 꽃을 선물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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