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 기르기 프로젝트

남 눈치 안보고 나답게, 자연스럽게 살기로 했습니다

by Dohyemi

흰 머리를 기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지 현재로써 4개월째.

아니다. 처음엔 흰 머리를 기르기로 한 게 아니었다. 마지막 염색을 하고 난 후, 두 달 뒤가 생일이었는데 이 시기의 나에게 가장 큰 화두는 ‘어떻게 잘 늙어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나이를 먹어갈 것인가’ 였고 최근엔 '중년, 노년이 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 를 자주 그려보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맞이한 30대 중반의 생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무해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리하여(?) 이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흰 머리를 기르자’


그 전부터 문숙 선생님이나 밀라논나 선생님의 은발이 너무 멋있기도 하고, 언젠가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면 그 때는 백발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하기로 결심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대체 언제부터 할머니인가. 손자가 생기면 할머니인가. 60대? 70대? 스무 살 즈음에는 서른도 엄청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느껴졌었다. 사람마다 새치가 나기 시작하는 때도 다를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유전의 영향으로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한두가닥씩 새치가 보였었다.

20대 내내 염색머리였고, 더구나 작년에는 탈색와 염색을 여러 번 반복했던 터라 지금은 아래쪽엔 탈색머리가 남아있고 위쪽으로는 새 머리카락이 자라는 중이다. 굉장히 애매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계속 염색하며 길러내며 아래쪽을 잘라낼 수밖에 없는데, 갑자기 굉장히 피곤해졌다. 그렇게 결심.

이제 나의 머리카락과 두피에 자유를 허하노라. 이제부터는 너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리라.

그렇게 나의 흰머리 기르기는 시작되었고, 그 시점으로부터 또 두 달이 흘러 현재가 되었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겨우 겨우 찾았다!! 한 블로거님이 흰머리를 기르고 계셨고 그 기록을 포스트로 남기신 것이며, 이미 은발을 유지 중이셨다. 오- 한 줄기 빛. 찾았다 동지여.. 아니 선배님. 저도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불끈!

그 사이 나의 흰 머리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처음 흰 머리들이 올라올 때는 너무 보기 싫어 여러 번 미용실로 달려갈 뻔했다. 그래도 여름이라 모자를 늘 쓰고 다녔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젠 정수리 쪽이 제법 하얗게 빛난다. 계속 기르면 어떤 느낌일까. 내 얼굴을 가만히 거울로 바라본다. 음.. 어울린다. 너무 보기 싫었던 흰머리들을 인정하자 신기하게도 내 얼굴과 조화로워 보인다.

쫌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만 느끼는 swag)

이게 나의 본래 머리색깔이었구나. 그동안 색색깔들로 덮여 보지 못했던 나의 진짜 머리카락. 1cm 이상만 자라도 꼴보기 싫다며 미용실로 향했던 나의 진짜 머리카락의 색깔을 이제야 제대로 본 것이다.

나이를 먹는 동안 내 얼굴도 성숙(?)해졌고, 나의 머리카락도 조금씩 희끗해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변화되고 있다. 나이듦과 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미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관점을 조금 바꿔본 것이다. 젊은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주름과, 흰 머리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가꾸고 싶어졌다. 노화를 굳이 미화할 생각도 없다. 그래도 이미 젊어 봤기에 굳이 미련을 갖고 싶지는 않다.. 랄까.

이렇게 말하면 또 내 친구들은 세상 통달한 스님이냐고 하겠지만, 현재의 내 마음은 그렇습니다.

더 이상 젊게 보이기 위한, 혹은 타인의 눈에 예쁘게 보이기 위한 꾸밈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물론 꾸미는 건 자기 만족이고 나도 즉흥적인 성격이라 어느 순간 확 꽂히는 스타일이 생기면 또 염색을 할 수도 있다.그러나 더 이상 강박적인 뿌염의 세계에는 이별을 고한다.

이렇게 글로 남겼으니 더더욱 쉽게 철회할 수 없겠지..

나답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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