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에 대한 해석
용역 회사에서 일하는 선후배 둘이 찾아와 식사를 함께 했다. 밥벌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요즘의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갈수록 갑질이 늘어나고 갈수록 갑질의 양상이 많아집니다.”
“큰일이군요.”
나름 위로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큰일은 아니에요. 그럴수록 좋은 일도 늘어나거든요.”
갸우뚱. 그럴수록 수익률도 좋아진다는 얘기인가, 어려울수록 해결의 기쁨이 크다는 얘기인가,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는데 후배 되는 사람이 선배 되는 사람에게 들은 답을 알려주었다.
“갑질이 커질 때마다 도움을 주는 이들도 생기니까요. 팀장님한테는 늘 그런 일이 일어났답니다. 견디기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위대한 도우미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때껏 재미있게 일하고 있는 거라구요.”
멋진 해석이었다. 좋은 팀장을 만나 멋지게 일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으니,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그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일 리는 없다. 다만 그가 그렇게 해석하고 일하니 믿음대로 그런 이들이 나타나는 것이리라.
독특한 추석 시즌이 지나갔다. 갑자기 뿔뿔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뿔은 글자처럼 머리에 솟아난 단단한 무기로 느껴지는데, 뿔뿔 두 자를 합쳐 놓으니 어딘지 모르게 외계어 같다. 뿔뿔이 하고 이 자를 붙여놓으니 겨우 단어 구실을 한다. 그러고 나니 굳이 ‘흩어지다’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의미가 살았다. 뿔뿔이에 이미 흩어진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모든 단어에는 어원이 있는데 그것을 찾을 수가 없다. 왜 하필 뿔뿔이가 되었을까.
그런 선입견 탓인가, 뿔뿔이는 고독해 보인다. 흩어져야 사는 시대는 고독을 감내하는 시대다. 뿔뿔이를 만든 뿔은 힘이 있어 보이지만 거센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빨이나 발톱처럼 날카롭지 않아서 그렇고, 뿔을 달고 있는 동물이 대개 초식동물이어서 그렇고, 그들에게 그다지 위협을 받은 경험이 없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초식동물의 뿔은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 호신용이 아닌가.
사실 흩어지는 것은 모이는 것 이상으로 멋진 일이다. 가족, 마을, 학교는 모두 떠나 보내는 역할을 한다. 뿔뿔이 흩어져 떠날 수 있는 것은 독립적 힘이 있다는 증거다. 처음 겪어본 뿔뿔 추석도 그런 점에서 보면 제각각 독립적 힘의 신뢰 때문에 가능하다. 고독한 추석을 보낸 분들도, 흥미로운 추석을 보낸 분들도, 뿔뿔이 힘내길 바란다.